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발걸음
글 김하람 기자
완주 상관면에 위치한 정신재활시설, 그곳의 회원으로 등록된 장애인과 종사자들 25명이 모여 문화공동체를 이뤘다. 정신재활시설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40대를 넘었다. 발병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며 인생의 절반을 병원에서 보낸 사람들이 치료를 마친 이후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평생을 병원에서 보냈을 회원들에게 더 다양한 문화의 기회를 주고 싶어 시작한 문화공동체 아리아리. 문화 활동을 통해 시설 밖 지역 주민들과 소통을 하다 보면 편견이 조금씩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만든 공동체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만들어 나가자’는 뜻을 담은 순우리말. 이들은 이름처럼 편견과 부정적인 시선을 걷어내며 한 걸음씩 걸어 나가고 있다.
나는 악이 아닙니다
정신재활시설의 정신건강간호사이자 ‘아리아리’의 대표 김언경 씨는 완주문화도시추진단의 ‘완주 컬처 메이커스 스쿨’을 통해 공동체 활동에 대해 접하게 됐다. 정신장애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던 그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김 대표는 컬쳐메이커스 활동을 바탕으로 2018년 아리아리(옛 아이리스)를 만들고 2019년 공동체로 단체등록 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문화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가 부족한 시절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장근범 사진작가로부터 사진을 배우며 상관 마을을 관찰하고 마을 사람들의 모습, 자신의 모습, 아리아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어찌 됐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야 했다. 그동안 서로가 서로를 멀리 대하던 것에서 한 발짝 다가선 첫걸음이었다.
2019년 11월 완주군 누에커뮤니티홀에서 그동안의 작업 결과물을 처음 선보였다.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상관은 어떤 마을인지, 마을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자신이 자신과 주변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사진과 함께 글을 전시했다. 사진 촬영을 허락해준 주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남기기도 했다. 적힌 글을 보며 마을 주민은 그들을 이해하게 됐다. 된장찌개를 좋아해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 싶다는 소소한 자기소개도 있었고, ‘나는 악이 아닙니다’라는 가슴 아픈 소개도 있었다. 처음 시설이 상관에 들어설 때 강력한 반대를 했었던 주민들이었지만, 정신장애인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는 계기가 됐다.
정신장애는 흔히 매체에서 알려진 조현병(사고의 장애, 망상 · 환각, 현실과의 괴리감, 기이한 행동 등의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 아리아리 구성원 중 40%가 조현병 환자다.)뿐만 아니라 지적장애(지능을 포함한 지적 및 인지 능력과 심리적, 사회적 적응 능력이 부족)와 조증, 우울증 같은 양극성 장애 등을 포함한다. 정신장애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어감이 생긴 것에는 조현병 환자의 케이스가 매체에 보도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환각과 환청 속에서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례를 보면서 비장애인은 이들이 항상 그러한 증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만나보면 아시겠지만, 이 사람들이 1년 365일 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한 번씩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하루 종일 유지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매체에서 어떤 범죄가 생기면 범죄자의 과거력을 살피는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을 지나치게 부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이 정신장애를 가진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약을 먹지도 않고, 치료를 받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이면 몰라도, 꾸준히 관리를 잘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김 대표는 오히려 사기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시설의 회원들을 보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안타까워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에서 시작하는 변화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전시를 보며 자기가 오해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는 주민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 대표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여전히 시설이 없어져야 한다고 민원을 넣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준단다. 전시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회원들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가까워지게 되었다. 지금은 지나가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변화의 날갯짓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시 소식을 듣고 다른 정신재활시설에서도 전시를 보러 찾아왔다. 전시를 본 다른 정신장애인들은 ‘아리아리’의 활동에 관심을 가졌다. ‘아리아리’를 통해 본인도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아리아리’ 활동을 하는 회원들에게 일어났다.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계속 받다 보니 자기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낙인을 찍어버렸던 이들의 변화는 놀라웠다.
반평생 낮은 자아존중감을 가지고 그저 ‘장애인’으로 불리며 살아온 그들에게 ‘작가’라는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그 덕분에 자기 낙인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사랑하게 됐으며, 새로운 일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게 됐다. 사진으로 시작한 ‘아리아리’는 작년부터 천연염색을 배우기 시작했다. 관련 자격증을 따고, 올해는 가방이나 커튼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다만 천연염색이 회원들에게는 예상보다 어려운 과정이어서 최근에는 캘리그라피나 그림, 프리저드 등을 하나로 접목한 토탈공예 쪽으로 분야를 바꿔볼 생각이다. 김 대표는 단순히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을 통한 수익 창출로 회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가 아닌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인식개선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 목적을 가지고 계속 활동을 이어나갈수록 두려움이 생겼다. 과연 우리가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건지, 우리의 활동이 정말 인식 개선 효과가 있는지, 공동체 활동이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 그럴 즈음 누군가가 공동체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즐겁게 즐기고 있는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 아니겠느냐고 조언했다.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우리의 활동으로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실망하기보다는 우리끼리 즐겁게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고, 전시하고, 이런 것들이 우리의 즐거움이면 된 것 아닌지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회원들이 스트레스받지 않고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즐겁게 활동하다 보면 지역에서도 변화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생겼다. ‘아리아리’가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나가다보면 또다른 새로운 목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문화’라는 것은 결국 즐겁고 풍요로운 삶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아리아리 회원들은 이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