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가구 천만 시대, 동물들은 안녕하지 않다
글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최근 몇 년 동안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늘면서 동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미디어에는 동물이 나오는 콘텐츠가 넘쳐나고 관련 산업 규모도 증가했다. 이전에는 낯설게 들리던 동물복지, 동물권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쓰인다. 그러나 과연 동물의 처우가 그만큼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길에 버려진 동물의 숫자는 지난 해 13만 마리를 넘었고 이중 절반이 보호소에서 병들어 죽거나 안락사 당했다. 아직도 조금만 도심 밖으로 나가면 남은 음식으로 연명하면서 평생을 몸길이만한 줄에 묶여 한 자리에서 살다 죽는 것이 보통 개들의 삶이다.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동물학대 사건은 몇 주가 멀다 하고 발생한다. 반려동물뿐 아니다.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동물들은 무더기로 살처분되고, 신기한 야생동물을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만지고 싶어 하는 수요가 늘면서 각종 ‘체험’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 오락시설이 난무한다. 이러한 현상은 동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늘어났지만 동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나 사회적 인식은 비례해서 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동물보호법 제정 30년, 동물들의 삶은 나아졌나
올해로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지 거의 30년이 되었다. 1991년 제정된 동물보호법에는 고작 12개의 조문이 있었다. 조문 수만 비교하면 현행 동물보호법의 4분의 1 수준이다. 내용도 극히 간단해, “잔인한 방법에 의한 도살이나 혐오감을 주는 방법에 의한 도살,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물을 유기하는 행위 등에 대해 2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었다. 타 법에 비해 처벌 규정이 너무 미약하다 보니 실제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2007년 동물보호법 전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동물학대 처벌 규정이 20만 원에서 5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화되었다. 당시 동물에 대한 금지행위가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로 일부 학대 유형을 명시했다. 반려동물 등록제를 도입하고, 동물실험을 하려면 각 실험기관에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전에 승인을 받도록 하는 제도도 이때 도입됐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었다고 해서 동물학대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2010년 서울 송파구에서 여덟 마리 이상의 강아지들에게 눈에 라이터로 화상을 입히고, 발톱을 뽑고, 칼로 자상을 입히고 면도칼 조각을 삼키게 하는 연쇄 동물학대 사건들을 계기로 동물학대에 대해 1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게 되었고, 2년 뒤 처벌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두 배가 되었다. 2020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는 3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다시 개정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학대 죄만으로 실형이 선고되는 일은 아직까지 매우 드물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동물학대 등으로 검찰 처분을 받은 3,398명 중 절반 이상인 1,741명(51.2%)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1,081명(31.8%)은 약식명령청구 처분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사람은 단 2명(0.1%)이었다. 사법부가 학대행위임은 인정하면서도 대부분 고의성이 없었다거나, 생계가 어렵다는 등 정상참작요소가 있으면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동물학대 인정하지 않는 동물보호법
“개를 엄동설한에 집도 없이 기르면서 물도, 밥도 주지 않는데 동물학대 아닌가요?”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곳에 가둬두고 동물을 기르는데 신고할 곳이 없나요?”
이런 질문이 올 때마다 ‘법적으로는 동물학대가 아니다’라고 대답하기가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나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ㆍ신체ㆍ재산의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하며, 시행령 역시 동물을 혹서·혹한에 방치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음식이나 물을 강제로 먹여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등 몇 가지 행위만 제한적으로 열거하고, 여기에 해당해야만 동물학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법이 없어’ 구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대부분 현장에서는 동물에 상해나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만 학대로 인정하고 있어 동물이 피해를 입기 전에 조치를 취하거나 학대를 예방하기 어렵다. 2018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반려목적으로 기르는 동물의 경우 사육공간과 위생, 건강관리 등 소유자의 기본적인 사육관리 의무가 생겼지만, 대상 동물을 ‘반려동물’로 한정한데다, 역시 동물이 신체적 피해를 입었을 때만 조치를 취할 수 있어 실제로 동물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기능은 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이나 스위스, 독일, 미국 등은 동물에게 부당하게 해를 끼치거나 적정한 관리를 제공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을 동물학대로 규정하며, 또한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불필요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하는 행위 역시 학대로 여겨진다. 단순히 죽음이나 상해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겪지 않고, 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최소한의 동물복지 기준으로 정하고 있는 것이다.
학대범에게 피학대 동물 되돌려주는 현실
해외 주요국가의 법과 비교해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의 가장 큰 맹점 중 하나는 ‘동물 학대자의 소유권 제한’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을 학대한 것이 인정되어 처벌을 받은 사람이라도 다시 동물을 기르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아동대상 범죄자가 아동 근처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학대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동물과 관련된 영업을 하거나 종사하는데 제한을 두어야 하지만 관련 제도 역시 마련되어 있지 않다. 문제가 된 수의사들의 수의사 면허가 취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수의사법은 동물보호법, 축산물위생관리법, 의료법 등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지 않았거나 면제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만 수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동물병원 뿐 아니라 반려동물 훈련소, 미용실, 호텔(위탁업체) 등에서도 동물학대 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대부분 동물학대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피학대 동물의 압수는 물론 일정 기간 동안 어떤 동물도 소유하지 못하도록 금지할 수 있다. 또한 동물관련 시설에서 동물학대가 발생한 경우 동물을 소유, 거래하거나 직업적으로 다루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동물학대 행위로 벌금형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는 5년 동안 생산업 등의 허가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동물을 학대한 사람이 동물 관련 시설에 취업을 하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부터 동물학대자의 동물 소유권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시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되었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지자체장이 법원에 동물학대자의 동물 소유권을 제한할 것을 청구하고 지자체가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도록 했다. 이에 대한 검토보고서에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 재산권 제한의 소지가 없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최근 법무부는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명시하고 동물에게 제3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동물을 잔혹한 학대에서 보호하는 것은 사회 공공의 가치이며 동물학대자의 재산권보다 우선시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과 동물이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점검하고 제도를 보완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