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됐던 마을의 빈집, 주민들이 찾아오는 까닭
오민정 편집위원
마을회관도, 경로당도 없었던 작은 시골마을
완주군 화산면 수락마을, 한때 주민들의 골칫거리였던 ‘빈집’이 있었다. 2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집집마다 멀리 떨어져 있고 시골마을의 구심점인 그 흔한 마을회관 같은 시설도 없어 주민들이 모이기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도 이전에는 동네 빨래터가 있던 집이 있어 아낙네들이 애용하는 커뮤니티 장소로도 쓰였지만, 이제는 빨래터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빨래터가 있던 집도 오랫동안 비어 있게 됐다. 인구가 줄어가는 시골마을에서 빈집이 있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 집이 마을 어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어귀에 집이 방치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주민들은 마치 숙원사업처럼 이 집에 새로운 쓰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고 2018년, 드디어 이 빈집에 주민들이 다시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문화아지트 빨래터’의 시작이었다.
아이들과 엄마, 할머니가 함께 문화를 나누는 공간
“이곳을 활용해 주민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은 생각이고, 막상 그것을 실현하는 건 또 완전히 다른 일이더라고요. 제가 가진 공간을 활용해 동네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였지만, 운영 초기에는 오히려 개인 사유지라는 점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주민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갖다 보니 점차 마음을 열고 참여해 주시더라고요.” (‘문화아지트 빨래터’ 최미경 대표)
실제로 2018년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수락마을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아이들의 할로윈 파티부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예술가들의 레지던시 공간이자 레지던시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마을 주민들의 수업이 이뤄졌다. 특히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아지트 빨래터’에 찾아온 ‘여은희’ 작가와의 만남은 ‘문화아지트 빨래터’가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신하는 데 많은 영향을 줬다.
“첫 시작은 한지를 통한 수업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수업을 해보는 게 도시에서야 쉬웠겠지만, 화산 같은 면 단위의 작은 마을에서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신이 나서 모였던 거 같아요. 정확하게 ‘이게 하고 싶어’라는 확실한 무언가보다 이곳이 문화향유가 부족한 지역이어서 솔직히 뭔가를 배우는 즐거움으로 시작하셨던 주민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시작된 ‘문화아지트 빨래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은 문화로 꿈을 꾸고, 어른들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더라고요. 문화를 통해서 주민들이 행복하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나올 뻔했어요. 이런 게 바로 문화로 삶이 바뀌는 거구나, 하고 느꼈죠.”
‘문화아지트 빨래터’는 한지공예 체험에서 출발해 예술가 레지던시, 주민들의 문화수업(그림·제빵·칼림바 등)부터 최근에는 화산 청년들의 문화적 모임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농사를 지으면서도 매주 금요일마다 모여 그림을 배우고 고민을 나누던 주민모임은 어느새 ‘문화공동체’로 발전했다. 50대~60대로 구성된 주민문화공동체의 이름은 ‘물푸레’. 문화를 통해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주민들의 잔잔하면서도 벅찬 감동을 담아낸 이름이었다. 문화공동체 ‘물푸레’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 올해 8월, 용진읍 갤러리 카페에서 주민들의 그림으로 ‘내 마음의 풍경’이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속가능한 마을의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
하지만 ‘문화아지트 빨래터’가 지금처럼 마을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처음에는 주민들도 그렇고 오해 아닌 오해도 있었어요. 개인 공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지속가능성 문제도 있었어요. 저는 ’문화아지트 빨래터‘가 단지 한 두 번 문화적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이 아니라 진짜 마을에서 주민들이 문화로 모이는 장소가 됐으면 했거든요. 그런데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데다가, 언제까지 공모사업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문제였어요. 그래서 공간의 자립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죠. 특히 작년이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문화아지트 빨래터가 주목을 받게 되면서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하셨어요. 대체 이 공간을 어떻게 유지할 거냐, 하고요. 사실 그때마다 대답하기 참 어려웠고 나름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제가 잘 하는 활동-제빵을 통해 답을 찾게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함께 뜻을 모은 사람들과 만든 <사업하는 농민 농업회사법인주식회사>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문화아지트 빨래터는 법인이 운영하는 문화공간으로 전환됐고, 동시에 점차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문화아지트 빨래터는 이 과정에서 그간 예술가 레지던시로 운영했던 공간을 공간운영의 자립을 위한 빵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바꾸고, 예술가 레지던시 전용 공간을 신축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올해에는 지난해까지 운영하던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과 운영하는 마을학교 프로그램이나 마을 주민들의 그림 동아리 활동, 청년들의 문화실험 모임의 거점공간으로 활발하게 운영되어 왔다.
“화산은 완주에서도 아직도 상대적으로 문화적 인프라가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 할 일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빨래터는 자생적 운영을 통해 이름처럼 주민들의 문화아지트로서 앞으로도 계속 활동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는 느릴 수도 있지만, 마을의 골칫덩어리였던 빈집에서 이제는 주민들이 모이고 문화로 삶이 바뀌는 경험을 함께 했잖아요. 이제는 그 힘을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