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의 위기 앞에서 소리와 예술의 가치를 전하다
김하람 기자
올해로 스무 살을 맞이한 전주세계소리축제의 막이 올랐다.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펼쳐진 소리축제는 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 새롭고 참신한 창작을 지향하고, 예술의 가치와 본질에 천착하여 위축된 문화예술시장을 돌파하겠다는 정면승부의 의지를 내보였다.
소리축제의 본질, 판소리를 재조명하다
전주세계소리축제 20주년을 기념하는 개막공연 ‘RE:Origin’은 기존의 공연 형식과 장르를 파괴하는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동안 소리축제의 무대를 다채롭게 빛낸 예술인과, 축제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가진 평론가, 축제를 만들어온 사람들, 그리고 ‘무조건 소리축제’를 외치는 ‘찐 팬’에 이르기까지 축제와 얽힌 다양한 사연을 품은 스무 명의 패널들의 이야기와 ‘판소리 확장형 공연’들이 교차하여 소리로 이어온 스무 해를 돌아보고, 소리로 이어갈 스무 해를 기대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소리축제는 20년의 시간을 반추하며 지난 20년간 소리축제의 중심축을 담당해온 ‘판소리’에 주목했다. 20년 소리축제의 중심 기획인 ‘판소리다섯바탕’에서는 판소리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해 색다른 전통의 미학과 가치를 만나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정통 판소리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동시에 배치했다. ‘판소리다섯바탕’은 9월 30일부터 축제의 마지막 날인 10월 3일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과 연지홀에서 펼쳐졌다. 세 명의 중견 여성 명창(방수미, 박애리, 정상희)이 펼쳐내는 <춘향가>, 새로운 소리의 길을 여는 젊은 남성 소리꾼 3인(김준수, 유태평양, 정보권)이 선보이는 <흥보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 송재영, 장문희의 <심청가>, 3시간 넘는 완창 무대를 선보이는 김세미 명창 <수궁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윤진철 명창의 <적벽가> 등 각각의 바탕마다 소리축제표 판소리 무대만의 매력으로 관객들을 찾아갔다.
‘젊은판소리다섯바탕’에서는 2021년 가장 주목할 만한 젊은 소리꾼을 소개했다. 올해는 판소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흥미를 더할 수 있도록 해설을 가미해 운영했다. 출연 아티스트 중 코로나19 밀접 접촉자 발생으로 수궁가를 제외, 박자희(흥보가), 김주리(적벽가), 김정훈(심청가), 한아름(춘향가) 등 젊은 소리꾼 4인이 각각의 개성을 더해 자유롭게 구성한 판소리 눈대목의 매력을 선보였으며, 4인이 함께 여는 합동 무대로 무대의 백미를 장식했다.
지난 10여 년간 소리축제 대표 경쟁프로그램으로 이른바 ‘한국형 월드뮤직’팀을 발굴하고 해외진출을 모색해 온 ‘소리프론티어’도 새롭게 변화했다. 올해 새롭게 출발하는 소리프론티어 시즌 2는 판소리 중심의 창작 작품을 발굴하고 지원하는데 집중했다.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창작 공연 팀들의 초연 및 재연작 일곱 작품을 선보였다. (출연팀 :‘TALE'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풍각쟁이' 소리극단 도채비/‘햄릿 혼잣말’플레이위드 /‘심청:꽃을 든 여인’민속악회 맴돌/‘여기 잠시 머물다, 다시 돌아갑니다’한사코/‘이름’비로소 판소리/‘놀부 FLEX’휠러스)
전통의 미학과 가치
올해 소리축제 기획공연은 우리 소리와 가락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했다. 광대의 노래 ‘사금(四金)’은 대한민국 최고의 농악 상쇠 명인 4인(임광식, 류명철, 유지화, 손영만)과 그 제자들이 함께하는 무대로, 지역 농악에 독특하게 전승되어 온 꽹과리 가락 중심의 작품을 선보였다. 산조의밤 ‘지순자, 강정숙’의 무대에서는 가장 산조다운 산조를 통해 산조의 정수를 선보였다. 바람처럼 흐르고 물처럼 빠져드는 산조의 가락에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해설이 더해져 풍성한 무대를 선사했다. 또한 전통음악의 맥을 잇는 정읍수제천보존회를 초청해 전통음악의 멋과 가치를 선보였다. 수제천보존회는 매년 정기연주회와 국제민족음악 교류제, 학술세미나를 주관하여 국내외 석학들의 수제천에 관한 논문발표와 교류를 확대하고, 국내외 연주자들과의 협연을 통해 우리 전통음악을 국외까지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올해 소리축제에서는 해설을 통해 보다 쉽게 관객들에가 다가갔다.
소리축제, 가장 세계적인 무대를 담다
올해 소리축제에서는 해외 공연이 한 팀 뿐이었지만,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국내팀들의 무대를 통해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구성했다. 예술의전당 초연 공연을 마친 국립현대무용단의 최신작 ‘힙합(HIP合)’이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찾았다. 무버 예술감독 김설진,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예술감독 김보람, 리케이댄스 예술감독 이경은의 신작으로 질서에 반하며 끊임없이 새로워진 현대무용과 수많은 방법론을 낳으며 영역을 확장해온 스트리트 댄스, 여기에 국악을 바탕으로 한 사운드디자인이 관객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전통적인 품바의 선율을 현대적인 사운드 매체와 힘 있는 무브먼트와 연계해 신명나게 풀어내는 ‘다크니스 품바’의 무대도 이어졌다. 한국 무용계의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해온 젊은 안무가 김재덕이 독창적인 표현방식으로 연출한 작품으로 전원 남성으로 이루어진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곡선미와 강력한 움직임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미스터리 퍼포먼스 스냅(SNAP)은 동화적인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미디어아트, 그림자놀이, 마임 등과 결합한 무한한 마술의 세계를 무대 위에 창조하는 팀으로 올해 소리축제 무대에서는 우리 소리와의 만남을 시도, 오묘하고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했다. 탱고 음악의 역사를 바꾼 혁명가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탱고 정신을 이어받아 창단된 아스트로 피아졸라 퀸텟은 혁신적인 사운드와 멜로디, 한 번 경험하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탱고의 힘과 에너지로 풍성한 무대를 선보였다. 특별히 소리축제에서는 아쟁 김영길 명인과 합동 무대를 통해 전무후무한 탱고와 아쟁의 치열한 만남을 시도해 새로운 충격을 선사했다.
대중과 함께하는 소리축제
매해 소리축제를 통해 대중음악 아티스트의 무대를 선보이는 ‘별빛콘서트’에서는 9년 만에 완전체로 돌아온 최고의 보컬 그룹 ‘빅마마’, 깊이 있는 목소리와 울림 가득한 창법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하동균, 스카이캐슬 OST ‘We all lie’로 큰 관심과 사랑을 받은 아티스트 하진의 무대가 펼쳐졌다. 다양한 음악의 장르를 넘나드는 ‘선우정아’, 블루스보다 더 블루지한 목소리의 ‘강허달림’, 음악과 이야기를 통해 세렝게티의 초원을 재현하는 ‘하림의 아프리카 오버랜드’ 무대가 관객들을 맞았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하는 축제의 장
2021년 소리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폐막공연 ‘Fever Time(전북청년열전)’에서는 장르를 막론하고 전북 예술가들을 하나로 엮은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무대로 소리축제만의 독자적인 상징과 역할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지난해 폐막공연 ‘전북청년음악열전’에서는 61명의 지역 예술가들이 40분 동안 쉼 없이 즉흥 시나위를 펼쳤다면, 올해는 국악, 재즈, 클래식 등 여러 장르의 음악 단체와, 전통, 현대, 비보잉 등 지역 무용인들이 연합해 무대를 꾸몄다. 라스트포원과 타악 그룹 동남풍의 ‘뱃노래’, 프로젝트 담다와 가악프로젝트의 ‘석양’, 지무단과 타악연희원 아퀴의 ‘군악’, 두(頭)Do댄스와 안태상프로젝트, 드럼 신동진의 ‘영인(伶人) Blues’, 널마루무용단과 주스프로젝트의 ‘해야’가 그것. 역동적이고 신명나는 무대로 코로나로 지친 도민과 지역 예술가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힘을 더했다.
지난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소리축제는 비대면 온라인 진행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새로운 시도와 더불어 다양한 관객의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지만, 예술인과 관객이 함께 즐기고 숨 쉬며 만들어가는 축제의 현장감이 빠져 아쉬움이 큰 축제로 남았다. 올해 역시 코로나19의 영향 가운데 있지만, 1년간 대처 경험을 쌓고 방안을 마련하며 안전하고 즐겁게 축제를 진행하는 길을 찾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에 따라 객석은 전체의 30%만 운영했지만, 관객과 아티스트가 예술로 하나 되는 축제의 열기가 가득했다. 팬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위기 앞에서 예술의 힘과 가치를 보여준 소리축제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