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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 기획 [도시의 유산]
도시를 지키고 이어가는 빛나는 힘
김하람 기자, 김정경 문예진흥팀장(2021-11-09 15:11:16)



도시를
 지키고 이어가는 빛나는 


유산(遺産)’  세대가 물려준 것을 의미한다세대와 세대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유산은 대부분  자체로 의미와 가치를 갖고 있기 마련이지만  유산을 물려받은 뒷세대는 자신이 이룬 것이 아닌  유산들의 가치를 읽어내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다소중한 유산들이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거나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때문이다. 


도시의 유산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수많은 유산들이 그것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기도 전에 사라지고 있다. 도시의 유산은  도시를 지키고 이어온 보이지 않는 힘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의 도시는 보이는 것들에 의해서만 지켜지고 성장한다도시와 도시가 ‘다움 잃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문화저널이 창간 34주년을 맞아 새롭게 기획한 <도시의 유산> ‘ 도시를 빛나게 하는 진정한 유산은 무엇인가 물음으로 시작하는 성찰의 리포트다그들 유산은 너무 익숙해져서 잊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고 알고 있지만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도시의 유산  번째는 전주의 공예 장인들이다장인들이 대를 이어 지켜온 손의 가치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 전주의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 확인시켜준다 

도시 속에 살아  쉬고 있는 유산의 빛이 바래기 전에  가치를 찾아내고자하는  기획이 도시의 새로운 힘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손의 도시 전주와 손으로 시간을 벼린 솜씨의 장인


골드버그 장치라는 것이 있다미국의 만화가 루브 골드버그(Rube Goldberg, 1883~1970) 고안한 연쇄 반응에 기반한 기계를 말하는데그의 만화에는 단순한 결과를 얻기 위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온갖 장치가 나온다욕조신발새장바퀴핸들 등을 사용해  열기와 같은 매우 간단한 일에 놀랍도록 복잡하고 거창한 작동법이 동원돼 보고 있으면 엉뚱하고 황당해서 웃음이 난다 기계들은 만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효율성보다는 재미와 기발한 아이디어로 호평받았다. ‘골드버그 장치  모양이나 작동법은 아주 복잡하고 거창한  비해서 하는 일은 어이없이 단순한 기계를 일컫는 말이자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공을 들이는 거의 불가능한  등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첨단의 시대에  필요한 사람이 자기만의 골드버그 장치를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고는 한다아니한술  떠서 그런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  세계를 점령하는 순간을 상상하기도 한다 순간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짜릿하다.


목적지 혹은 목표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일부러 지연시킴으로써  여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리하여 마침내 손에 넣게  ‘무엇 가치를 제대로 가늠하게 하는 이는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것을 만들어낼  있으며코로나19 인하여 어느 때보다 빠른 변화와  빠른 대응이 요구되고 있는 요즘에도 필요한 방식이며여전히 유효한 문화와 예술의 책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내가 사는 전주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한지를 고르게 뜨기 위해 실처럼 가늘게 깎은 대나무 촉을 촘촘하게 엮어내는 한지발 장인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한지 우산인 지우산의 명맥을 잇는 우산장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한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수만 번의 대패질로 전통 악기의 울림통을 완성하는 악기장  단단한 손끝으로 전통 공예품을 빚어온 장인들이 있다전주는 이런 무형문화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장인들의 도시다. 2019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전주에 거주하고 있는 무형문화재는 모두 44전국 기초지자체의 무형문화재 인원이 평균 1.8명인 것에 비하면 무려 24.4배나 많다. 


손이 하는 손으로 하는 숭고한 

단순히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사람이 많이 산다는 것이 대단한 자랑거리가  수는 없으리라하지만 옻칠장단청장전주나전장그리고 이강주와 전주비빔밥  전통 음식과 향토  담그기  식품 분야의 명인들까지 분야별로 다양한 무형문화재들이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도시의 내세울 만한 점이   있지 않을까대를 이어온 무형의 전통이 지금 순간에도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자랑삼을 만하지 않을까그런 의미에서  도시는 위대한 유산이 전승되는 현장이다손에서 손으로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느리지만 함부로 흉내  수도 없고쉽게 베낄 수도 없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전승이 이루어진다.


물론아무런 부침(浮沈)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다면 그것은 지나친 과장이거나 가당찮은 미화일  있다무형문화재 보유자에게 지급되는 전주시 지원금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많은 편이라고는 하지만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재주와 기술을 이어받을 전수자가 선뜻 나서지 않고장인들 역시도 생계를 이어가는 일이 녹록하지 않다일상에서 무형유산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고생활과 향유 사이의 괴리 역시 존재한다그러나 무형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공감하며함께하려는 움직임이  도시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지난 2014년에 국립무형유산원과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가 전주에 들어서게  이유도 바로  때문이다또한, 2017년부터 전주시는 ‘손의 도시 표방하고 있다전주라는 도시를 설명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로 예술의 가치가 살아 있는 도시원형을 간직한 도시라는 점을 앞세운 것이다. 


번거롭고복잡한 수작업의 과정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전통 공예품이  소중한 것일까거기에는 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전통 공예의 진정한 가치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속에 담긴 시간과 지혜그리고 아름다움에 있다기계로 찍어낸 것들언제든 대량으로 만들  있는 것들에게는 좀처럼 깃들지 않는 손의 온기와 영혼의 무늬 같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주처럼 웅숭깊은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장인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현재와 미래가 연결되는 것이다. 


무형의 유산이사람이 과연  도시의 정체성이   있는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서슴없이 그이의 손을 이끌고 가서 지고지순한 시간을 단정하게 벼린 장인들의 손을 맞잡게 해주고 싶다그러고는 말하리라. “이보다  명확하고 또렷하게 도시가 품은 내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있느냐. 



·김정경

2013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검은 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자칭산책중독자’. 오래된 골목을 유람하며 채집한 이야기로 시도 쓰고, 산문도 쓰며 살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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