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도시, 나무의 생명 잇는 악기장인들
전주는 예로부터 넓은 곡창 지대를 바탕으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도시였다. 대사습놀이의 고장이며, 수많은 명인 명창이 전주에서 탄생했다. 그 명인, 명창들을 위한 악기를 만드는 장인들 역시 전주에서 대를 이어 오고 있다.
가야금의 청아한 음색을 만들어내는 악기장 고수환
지금도 제작 과정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가야금을 만들고 있는 악기장 고수환은 지금도 수만 번의 대패질로 울림통을 만든다. 분업이나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악기 만드는 전 과정을 자신의 손 안에서 해낸다. 좋은 음색과 쉽게 변하지 않는 생명력을 가졌다. 그는 악기 제조 분야의 첫 무형문화재인 김광주 명장을 시작으로 조정환-조정삼·남갑진-고수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악기 제작의 정통성을 지켜가고 있다.
쟁쟁한 명인들이 그의 악기를 안았다, 악기장 최동식
백악지장(百樂之丈), 여러 음악 중 으뜸으로 뽑히는 거문고는 연주하기도, 악기를 제작하기도 까다롭다. 악기장 최동식은 좋은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재료가 가장 중요하며 그 다음으로는 공력(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통 기법으로 악기를 제작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지만, 전통의 맥이 끊이지 않도록 기술을 보존하고 전수하고 있다. 신쾌동, 김소희, 전재환, 한갑득, 박귀희, 강동일 등 쟁쟁한 명인들이 그의 실력을 알아보았고, 오늘에도 김무길, 심재형, 변성금 등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거문고 연주자들이 그의 악기를 고집한다.
손맛이 특히 좋은 그의 대금, 악기장 최종순
악기장 최종순은 우연히 이생강 명인의 연주를 듣고 감동해 죽관악기 연주와 제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금을 만들어온 장인은 산조대금을 비롯해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정악대금, 중금, 소금, 단소 등 모든 죽관악기를 제작해오고 있다. 모양은 물론 부는 느낌과 손맛이 좋다는 그의 대금은 이생강 명인을 비롯해 수많은 대금 연주자들이 찾고 있다.
사물 악기로 소리의 본질을 찾다, 방짜유기장 이종덕
‘유기전길’. 전주는 마을 이름, 도로명에 ‘유기’가 들어갈 정도로 유기로 유명한 도시였다. 소리의 고장인 만큼 꽹과리, 징 등 소리 악기를 만드는 유기 공방이 많을 수밖에.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방짜유기장 이종덕은 전주의 방짜유기를 되살려보고자 전주에 자리 잡았다. 방짜는 충청도 방언으로 ‘최고’를 뜻한다. 구리 78%, 주석 22% 섞어 녹인 다음, 손으로 두드려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정확한 비율과 두드려 만드는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는 사람은 적지만, 장인은 전통방식을 그대로 재현해 만들고 있다. 그가 만드는 징과 꽹과리는 국립국악원,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 우리나라 최고의 연주자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
아름다운 생활공예, 그 비밀을 지켜가는 장인들
세월과 함께 깊이를 더해가다, 옻칠장 이의식
자연의 것 그대로를 가공해 세간살이를 삼았던 공예. 지금에 와서야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폐해를 알고 자연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천연의 것을 높이 사지만, 당시에는 병충해와 습기에 약한 가구, 종이, 건축물 등에 고민이 많았다. 선조들은 그 답을 다시 자연에서 찾았다. 천연 도료 옻이다. 옻을 정제해 만들어낸 옻칠은 내열성, 방부성, 방수성, 방충성, 절연성이 뛰어나 천년을 간다는 말이 있다. 약 1400년 전 유물인 무령왕릉 속 목재들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이 76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바로 옻칠에 있다. 옻칠장 이의식의 옻칠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 깊고 풍부한 색을 낸다. 특히 그의 옻칠은 정제 수준을 알 수 있는 광택과 강도, 뛰어난 붓 작업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화려한 아름다움의 진수, 전주나전장 최대규
옻칠과 늘 함께 따라오는 공예가 있다. 오색 빛의 향연, 화려한 장식의 극치, 나전이다. 나전은 옻칠한 기물의 바탕에 전복 껍질 등에서 가공한 자개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 붙여 장식하는 일이다. ‘나전칠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옻칠과 나전을 때려야 땔 수 없는 관계다. 우리에게 나전은 전통 가구에 활용돼 고풍스럽고 예스럽지만 요즘과는 동떨어진 디자인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렇지만 전주나전장 최대규의 작품에는 여백의 미가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다. 그는 검게 옻칠한 바탕에 자개를 붙여 회화 그림처럼 액자에 넣어 조금 더 대중적으로 나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손 솜씨 좋은 전주의 장인들
담금질의 진수로 만드는 연장들, 야장 김한일
넓은 곡창지대로 인한 풍요로움은 음식의 발달로도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전주에서는 음식 만들 때 꼭 필요한 칼, 농사 지을 때 꼭 필요한 쇠스랑, 호미, 삽 같은 농기구들까지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도구들을 만들어내는 솜씨 좋은 대장장이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 맥을 잇는 사람, 불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쇠를 두들기는 야장 김한일이다.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금속 제품들이 공장에서 생산되어 대장장이들의 입지가 줄어들었지만, 그는 도내에서 유일하게 전통방식을 지키며 대장간의 맥을 잇고 있다. 직접 담금질하여 쇠를 달구고 두드려 만든 연장은 기계로 만든 연장과 품질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그가 만든 연장은 쉽게 망가지지 않아 오래 사용이 가능해 한 번 사용하면 그가 만든 연장을 계속 찾게 된다고. 매일이 고된 노동의 현장이지만, 품질을 알아봐주고 찾아와주는 단골들 덕분에 지금도 대장간을 이어가고 있다.
목조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단청장 신우순
조선 태조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은 전주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 중 하나다. 경기전을 중심으로 한옥마을이 이뤄져 있어 고즈넉한 풍취를 느낄 수 있다. 전주 경기전, 오목대, 향교, 풍남문 등 고풍스러운 옛 목조건물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장식이 있다. 바로 단청이다. 단청은 목조 건물의 단점인 내구성을 보완하여 비바람과 병충해로부터 보호하는 칠공사이며, 건물을 장식하는 역할을 한다. 궁궐이나 사찰, 오래된 목조 건축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어 익숙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된다. 단청에는 황, 청, 백, 적, 흑의 오방색을 중심으로 15가지 색이 주로 사용된다. 단청의 도안은 따로 정해진 것이 없다. 단청이 그려지는 부재에 어울리는 도안을 생각해내는 것 역시 단청장의 역할이다. 단청장 신우순은 단청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단청 문양을 정확하게 구사하고 비례감 있게 그려낸다는 평을 받는다. 한옥마을 경기전 정문의 단청, 경주 불국사 선원, 일본 고려사 대웅전, 사우디아라비아 코리아 가든 단청 등 유명 사찰과 목조 건축물에 그의 손길이 닿아있다.
나무에 옛 시간을 새기다, 민속목조각장 김종연
조각은 그야말로 원재료에 새 숨을 불어 넣는 공예다. 민속목조각장 김종연의 작품은 세부적인 묘사나 정교함이 일품이다. 그는 특히 ‘목침’ 작업에 공을 들인다. 우연한 계기로 목침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그는 고증을 바탕으로 각종 한약재나 허브 등 체질과 효능에 따라 넣을 수 있는 서랍을 목침에 도입하기도 했다. 무령왕릉 출토 목침을 재현했으며, 2018년에는 7세기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보살상 ‘백제금동관음보살입상’을 본떠 재현했다.
서화의 명맥을 지키고 이어가는 배첩장 변경환
단청을 통해 건축물의 내구성을 더하며 조형미를 높였듯, 서화를 보존하며 갖춤을 더해 예술성을 높이는 기법이 있다. 바로 배첩이다. 서화에 종이나 비단을 붙여 꾸미는 서화처리기법을 배첩이라 한다. 표구는 일제 강점기 때 들어온 말로 조선시대에는 궁중의 각종 서화를 처리한다 하여 장황(粧䌙)이라고 했다. 전주배첩장 변경환은 지류, 섬유, 전적의 모든 배첩 분야와 궁중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장황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유산 제대로 보기, 제대로 잇기
장인의 도시를 빛내자
공예의 출발은 일상생활에서의 필요와, 심미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예술성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에 이르러 공예는 예술성만 남고 값싼 공산품과 플라스틱이 그 필요성을 대체하고 있다. 전통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은 줄어드는 환경에서 공예는 살아남기 위해 고급화를 추구해나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공예가 고급화 될수록 찾는 사람은 한정적이고, 대중들에게는 그저 오래된 전통과 유물로만 남게 되는 현실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공예의 생명력인 쓰임을 상실되어 간다는 것이다.
공예품이 사라지면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들의 기반이 사라지며, 그들의 기능 역시 사라진다. 기능이 사라지면 다시는 예전과 같은 공예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공산품과 공예품과의 차이점이다. 수공예, 다시 말하자면 손으로 만드는 공예품은 공산품처럼 일정한 매뉴얼이 있어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해진 제작 순서는 있지만, 오랜 시간 속에서 축적해온 경험과 손길에서 오는 섬세한 차이는 그 작품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기능이 기록이 아닌 사람을 통해서 전수되는 이유다.
전주에는 전국에서도 유일한 장인이 있다. 한지발과 지우산을 만드는 장인이다. 이들의 기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전통 한지는 만들 수도 없고, 지우산 역시 일본의 문화로 여겨지게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기능의 소실은 역사의 일부가 소실되는 것과 같다.
더 안타까운 일은 기능의 전수가 그만큼 중요한데도 정작 기술을 전수받을 전수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생계를 위해 기능을 익힌 장인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생계를 이어가는데 장애가 된다.
한지발 전수자 유창호 씨 역시 아버지 유배근 명장으로부터 기능을 이어 받았다. 그는 “일도 많이 줄었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있다”며 “앞으로 이 기능이 나한테서끝날 것인가 걱정이 크지만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날까지 끊어지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절실한 바람을 갖고 있다 (전주 전통의 맥 아카이브 구축 스토리북 ‘전통 한지의 맥, 한지발’ 중에서)”고 말한다.
개인의 기능이 도시의 유산이기도 한 장인들의 기능을 잇기 위해 자치단체의 적절한 지원과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전주시의 무형문화재보유자 지원금은 백삼십만 원.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공예가 예전과 동일한 쓰임을 갖지 못한 만큼 생계 걱정으로 기능을 포기하는 일이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화다. 대중에게 소비되지 않는다면 모든 지원은 무의미해진다. 전주시는 무형문화재 공개행사를 통해 전주시의 무형문화재와 시민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예능은 공연으로, 기능은 전시로 행사를 진행하는데, 올해 기능보유자 전시는 지난해 복원된 전라감영에서 진행해 전주 시민과 관광객에게 전주의 무형문화재와 전라감영의 가치를 알릴 예정이다.
사실 전주에는 기능을 전수할 공간과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국립무형유산원, 한국전통문화전당, 부채문화관 등 전통 문화와 관련된 시설들이 있어 다양한 경험이 가능하다. 한국전통문화전당은 2019년부터 ‘장인학교’를 통해 일반인도 무형문화재의 기술을 배워 전수자가 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으며, 한옥마을에 공예품전시관을 마련해 공예인의 활동을 지원하며, 공예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장인들의 기능을 전수하고 공예품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절실하다. 장인들의 공방을 개방하는 것도 대중화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장인들의 작업 공간을 찾아 장인을 만나고, 작품을 만날 수 있다면 공예와 기술을 이해하고 소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건은 녹록치 않다. 이미 공방을 갖추고 있는 장인도 있지만, 자택의 비좁은 공간을 작업실 삼아 일을 하는 장인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공예가 동력이 된 다른 나라의 도시들의 경우는 장인들의 공방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다. 다행히 전주시는 전수교육관을 건립해 한 자리에서 전주의 장인과 공예품들을 만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대중들과 장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장인들이 오랜 시간 기능을 지켜온 공간을 개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매우 절실한 과제다.
공예의 쓰임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할 때다. 값비싼 재료, 기술력과 공력을 들여 만든 작품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공예품이 필요하다. 쓰임새에 있어서도,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발전이 필요하다. 문화저널이 지난호 기획에서 소개한 썰지 연구소 대표 설지희 씨는 ‘기술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 기술을 보존하면서도 발전시킬 때 오늘날의 공예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전주시와 전주시민이 전주의 유산의 가치를 알아보고 사랑할 때 전주는 더욱 문화로 풍성한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