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1.11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박형진, 이현배(2021-11-09 15:37:43)

손내 선생님!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가 내일입니다. 추석과 추분이 지나고 이어지는 절기에도 한낮의 온도는 30도를 조금 밑돌아 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하지만 일교차는 심해서 밤에는 제법 한기가 느껴지는 탓에 자다가 이불을 끌어당기고 옆의 아내를 돌아보게 됩니다. 한두 , 밖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여름의 별자리들은 너머로 숨고, 성근 가을의 별들이 외롭게 반짝입니다. 그대와 나의 거리가 조금은 멀어야 외로움이 싹터 오르는 법이지만 다시 방에 들어와 아내 옆에 누우면 저는 잠을 청하게 뿐입니다. 그러는 사이 별들은 조금씩 자리를 옮겨 어디로 가는 걸까요? 풀섶의 이슬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는 걸로 보아 아마도 아주 조금은 풀잎에 내려앉는가 봅니다.


저는 요즈음 술을 멀리하고 있습니다. 끊었다고 손사래 치는 저의 의지를 시험이라도 하려는 무슨 의리니 배신이니 하는 말들을 앞세워 건네지는 친구들의 술잔은 차마 거절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예 외출을 삼가는데 상태가 일주일쯤 지나가니 술을 그리는 안의 욕망도 친구들의 성화도 덤덤하게 무디어졌습니다. 술을 멀리 하냐구요? 어느 해부턴가 1년에 달씩은 건강을 위한답시고 술을 끊었는데 이유는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어느 달에서 어느 달까지 끊는다고 정해놓고 시행하는 것이 아니란 문제인듯합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먹고 술이 술을 먹다가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는다는 말처럼 의지대로 술이 통제되지 않을 아차 싶은 뼈아픈 자각이 생겨서야 술을 멀리하니 그때까지 건강은 이미 망쳐져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번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듯이 DMZ 평화누리길을 열흘 가량 도보로 다녀온 뒤부터였어요. 집에 돌아오자 스스로에게 내준 숙제를 없이 해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평소보다 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안도감을 힘을 빌려 많이 느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어서 였을 텐데 그걸 뒤집어 보면 여행 도중 번의 조난 위기를 겪었던 것에 대한 반동이지 않나 싶어요. 그래 하루에 정도를 먹다가 양이 점점 늘어서 가까이 먹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비록 가까운 거리라고는 하나 차를 몰고 밖에 나갔다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술이 깨면이러다 언젠가는 무서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생각에 몸을 떨곤 했는데 후회와 다짐도 잠깐, 하루가 지나지 않아서 그리고 자기혐오! 결국 몸과 마음이 심각하게 망가지고 있다는 어느 순간의 뼈아픈 자각 끄트머리를 안간힘을 다해 붙들고 놓지 않은 덕분에 이제 술에서는 놓여나지 않았나 조심스레 생각합니다. 이런 것도 사는 일에 있어 필요한, 긴장이랄 수도 있겠지만벼릴수록 날은 보이지 않는다 중도의 경지와는 너무도 간극이 것이어서 새삼 자세를 바로 해봅니다.


이러는 중에 가지 괴로운 것을 고백하자면 시가 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주일 이주일 달이 가고 달이 지나가도록 시가 내게로 오지 않습니다. 강렬하거나 희미하거나 길거나 짧은 대로, 때나 일할 때나 깨어있거나 취해있거나 아니면 꿈속에서라도 시가 줘야 저는 제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을 붙잡아 씨름을 하거나 희롱을 하거나 경배를 드리거나 상상의 날개를 펼치거나 몽롱하게 빠져있거나 면도날같이 날카로와져있거나 정신 놓고 길을 헤매거나 화장실에 있거나 권력자나 온갖 부와 명예 앞에 서거나 시와 함께 저는 아무 부러울 것이 없는 무한한 자유를 느낍니다. 자유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쉬는 공기와 같은 것이겠는데 공기 없는 세상이 상상되지 않듯이 뭐라고 표현할 없는 답답함은 저에게 시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궁금합니다. 선생님도 그릇이 빚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까? 조용한 밤에 작업실에서 혼자 물레를 차고 있으면 시가 떠오릅니까? 같은 그릇이 빚어지나요? 마음은 그릇에 어떻게 깃들게 되는지요, 달항아리를 빚은 도공은, 이도다완을 만든 도공은 대체 무슨 삶을 살아낸 것일까요. 궁금합니다, 기교와 마음은 하나로 통일되어 그릇에 투사되게 마련일 텐데 마음의 눈이 깊지 못한 저는 남이 빌어놓은 그릇들을 이윽히 들여다보고 느끼려는 끈기마저 부족합니다. 여염의 그릇들에도 그러할진대 청자나 백자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곳 부안에는 청자 도요지가 있고 옛것들이 오래전에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수렴되어 있지만 가서 둘러본 것은 기껏 두세 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그릇이든지 간에 안에 무엇을 담는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듯합니다. 유형의 물질이든 무형의 정신이든 담아내는 것이 그릇이라고 거기에는 이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통일적으로 구현되어 있을 같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친한 시인에게 항아리 하나를 받았답니다. 분은 막걸리 학교에서 담그는 법을 배운 분의 동문과 함께 항아리를 구해서는 집에서 술을 빚었다는군요. 그런데 아파트라 그런지 공부가 부족해서인지 술이 되지 않는다며 저에게 자문을 구하다가는 포기하고 항아리를 제게 주신 겁니다. 가실이 끝나면 거기에 술을 담가보고 싶습니다. 그러했듯이 익는 골방의 항아리 옆에 누워서 코끝에 감겨오는 달콤한 향을 밤새 맡아볼 작전입니다. 아니 그러기 전에 가을을 마음껏 즐기고 싶습니다. 가을의 색깔을 보고 가을의 냄새를 맡고 가을의 햇볕과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농사짓는답시고 피는 봄과 단풍 드는 가을을 부러 무심한 보냈는데 올가을엔 일도 천천히 하면서 몸과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디메쯤에서 해찰하고 있는 시를, 저의 본래 면목을 찾을 같습니다. 


가을에 저도 아마 단풍처럼 색이 변하고 있나 봅니다. 

선생님도 내내 건강하소서, 이만 줄입니다.


우리는


혼자 옛길을 걸었다

추석을 코앞에

할아버지 벌초

어느덧 같이 늙어가는 조카가

함께 가자했지만

왠지 호젓한 산길을 오롯이

혼자 느끼고 싶었다

사는 번잡한 날들이야

숲에서 만나는 소나기처럼

피할 없는 것이라 해도

그친 먼저 드러나는 푸른 하늘은

예서 가까웁다

산굽이를 톱아 오를수록

길은 좁아지고 희미해진다

작은 관목들과 산죽들이

허리아래에 잠겨

파아란 구름바다 위를 걷는 듯한데

외려 아래 마을들은

잡힐 가까이 보이는 구나

멀어질수록 사랑하는 것들은 그립다는 것을

듬성듬성 박혀있는 묵묘 들은 아는지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는

토끼 고라니게나마 곁을 내주고 있었다

굳이

길을 두고도 산허리 허물어

길을 내고 있는 모습들

훗날 산길이 꿈처럼 잊혔을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2021.10.07

박형진드림





모항 박형진 시인께


두고 쓰는 말로 /여름/가을/겨울 사는 거라고 해왔습니다. 살아야 한다고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한다 싶습니다. 가을이다 싶었는데 바로 겨울이 다가온 듯하여 몸도 마음도 급합니다. 지금 편지도 그렇습니다. 가마에 그릇을 넣고 불을 지피며 쓰고 있었는데 가늘어진 땔감이 불을 키워 갑자기 커졌습니다. 그래 불이 급하게 되었고 펜을 놔야 했습니다. 가마불은 어떻게 어떻게 마쳤지만 이후 여러 일들이 휘모리로 다가와 이렇게 때늦게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며칠은 바깥쪽 가마를 헐고 있습니다. 고려도기가마를 지어야 하는데 자리가 없어 기존 가마 하나를 헐고 있습니다. 자리에다 뒤로 물려 짓기로 하였습니다. 흙이 얼면 허사라 가마를 앉힐 자리부터 헐고 있는데 스스로 헛웃음이 나옵니다. 벌교 이웃집 봉천댁이 저의 작은 선생을 두고제비처럼 툭하면 집을 지어싼다 흉을 봤는데 제가 제비의 새끼가 되어 툭하면 지었다 부쉈다 합니다. 분명 제가 지은 것인데 말이 우스운데 대충 지은 보면서 허물면서도 솜씨가 아까워 웃음이 나옵니다. 기존 가마는 벽돌로 지었고 옹관을 구웠더랬습니다. 새로 지을 가마는 땅을 파고 들어가 반지하로 가마몸을 세우고 위로 이긴 흙덩이로 뚜껑을 얹는 살가마를 작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달빛이 좋더군요. 달빛에 마령고등학교 1학년들과 달빛걷기를 다녀왔습니다. 계남마을에서 갈마, 음수동을 지나 중평마을 초기청자가마터(국가지정문화재 사적 551)까지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저희는 분명 풍수지리에서 이야기하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갈마음수형국을 몸으로 마음 어딘가에 새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보름달이라고는 하지만 밤길을 나서는 것이라 초콜릿을 빚었습니다. 트러플로 정하고 팥죽에 들어가는 새알처럼 동그랗게 빚는 일이 비비고 비비면서 달님께 비손을 하게 되어 좋았습니다. 일을 거든 딸애가 직업으로 빚었던 거냐고 묻더군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때는 재료가 다양했으니 다양한 맛을 보였지만 이건 가지를 빚는 일이라 복합화하였습니다. 내용물은 화이트를 기본으로 하여 식감을 부드럽게 하고 코팅을 다크로 하여 초콜릿답게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맛에도 일가견이 있으시니 봐주셨으면 합니다. 


어제는 영암구림도기박물관으로 그릇들을 보냈습니다. 전시전라도옹기전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가 부모님을 위해 만들었던 옹관 중에 어머니용을 나락과 함께 보냈습니다.  주옹과 부옹 하나씩을 빚어 반으로 나눠서 한쪽은 아버지, 다른 한쪽은 어머니용으로 만든 것입니다. 분을 합장을 하게 되어 어머니용이 남았더랬습니다. 옹관에다 당신들의 후손들, 가계도를 새겼기에 제목을 나주임씨순옥지가(羅州林氏順玉之家) 하였습니다. 나락들과 함께 마한의 새모양토기들을 해석한 것들로 같이 구성을 하고자 하기에씨알이라고 해도 좋겠다 싶습니다. 올초에 부모님을 연안이씨(延安李氏) 종중산으로 모시면서 아버지용이 쓰였습니다. 어머니는 영산강문화권의 중심지였던 나주임씨(羅州林氏)인데 같은 문화권인 영암으로 간다는 것이 묘했습니다. 구성이 모계로 꾸려지는 것에서도 어머니의 삶에 다소나마 자식의 도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지난 월요일에 교육을 받으러 갔던 아내와 딸이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떠날 때는 오랜만에 호젓하게 되어 계획이 많았더랬습니다. 선생님께 못다 편지를 있겠구나, 얼마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두툼한 정역본 [돈키호테] 읽을 있겠구나, 서부영화를 주구장창 있겠구나... 하지만 혼자 먹는 밥이 분명 호젓하고 좋았지만 저녁밥만 먹으면 고단하여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들곤 했습니다. 자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에 자는 깨는 그렇게 좋은 날들을 보내다가 아내의 귀가로 번쩍 깼습니다. 


이제 

차라리 첫눈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어디 깊은 동굴을 찾아 겨울잠을 꿈꿉니다. 

꿈에서 뵙겠습니다.


2021.10.22 

옹기장이 이현배드림


 


맛있어

초콜릿 맛이야

만화에 나옴직하게 손이 초콜릿으로 만들어져서가 아냐

손이 맛있는 초콜릿을 만든다는 얘기야


이뻐 

꽃처럼 이뻐 

동화에 나옴직하게 손이 꽃이래서가 아냐

손이 꽃처럼 이쁜 초콜릿을 만든다는 얘기야


그러나 나는

박남수의 손없는 손이 악수를 청하는데

박노해의 손없는 손이 악수를 청하는데

손을 내밀지 못했네


어디로 간거야

                                                                   (1985, 09)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