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들이 만들어가는 감동 가득한 무대
소리극단 도채비
글 김하람 기자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짓궂은 장난을 즐겨하며 술과 춤, 씨름을 좋아하고 때로는 인간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전해지는 도깨비. 민초들의 삶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그 익살스러운 존재와 같이 요술 방망이를 두드려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초대하는 도깨비들이 있다. 바로 실력 있는 젊은 소리꾼들이 모여 만든 ‘소리극단 도채비’다. 그 도채비들을 모은 대표 이정원 씨를 도채비 연습실에서 만났다.
도채비들의 소리
2020년 2월 전라북도 전주에서 활동하는 젊은 프리랜서 소리꾼들이 모여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지고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기 위해 소리극단 도채비를 탄생시켰다. 도채비는 도깨비의 전라도 방언이다. ‘소리’는 판소리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적 콘텐츠를 포함한다. 맏형이자 멤버들을 모은 대표 이정원 씨를 비롯해 극작을 담당하는 오민혁 씨, 무대 세트 등 미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김원곤 씨, 연기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이건일 씨, 넷이서 비전을 공유하며 해보고 싶었던 콘텐츠들을 구상하고 만들어내고 있다.
극단을 꾸리고 처음 무대에 올린 작품은 아동극 ‘도깨비꽃’이다.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소리와 전통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면 우리 전통 소리 본래의 멋과 재미를 자연스럽게 알아가고,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해 만들게 됐다. 다만, 첫 작품인 만큼 부족함이 많아 다시 다듬고 개발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 가인무용예술원 등과 함께 댄스컬 ‘할매와 비빔밥’, ‘ 내 마음 들리나요’를 작업해 올리기도 했다. 뮤지컬 ‘패널티’는 전통창극적 요소보다는 연극적, 뮤지컬적 요소를 살려 작업했다. ‘흥flex’는 판소리와 오페라로 배틀을 하는 무대로 꾸몄다.
최근 작업은 ‘도채비썰’ 시리즈다. 판소리이지만 관객들과 편하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공연 시리즈다. 청춘마이크와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프론티어 시즌2에 선정된 ‘풍각쟁이’와 적벽가를 바탕으로 만든 ‘삼국지’가 있다. 쉽게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무대로 우선 만들었지만, 앞으로 잔잔한 로맨스나, 큰 메타포를 가진 공연도 만들어보고 싶다.
위트있는 풍자와 해학으로 비비다
춘향가의 ‘사랑가’, 흥보가의 ‘화초장 타령’, ‘박타는 대목’, 수궁가의 ‘토끼 용왕 속이는 대목’, 심청가 ‘뱃노래’ 등 판소리 다섯바탕에서 잘 알려진 대목들을 가지고 하나의 이야기를 엮어낸 것이 풍각쟁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청년 사업가 흥부는 각고의 노력과 고생 끝에 사업아이템 ‘화초장’을 개발하지만 권력자 놀부에게 아이템을 빼앗기고 만다. 연애도 실패, 사업도 실패하며 벼랑 끝에 선 흥부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고 마는데, 그때 용궁 캐피탈에서 온 자라가 솔깃한 대출을 제안한다. 그렇게 자라와 함께 용궁으로 간 흥부는 불법 장기매매로 인해 간이 빼앗길 위험에 처하고 마는데!
도채비는 좀 더 젊은 감성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지금 시대에 맞는 풍자와 해학을 더했다. 돈이 없으면 연애도 취업도 못하는 현실, 갑을 관계 등 청년 세대의 고민거리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권선징악의 통쾌한 결말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판소리 하는 사람들은 풍자와 해학을 가지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뉴스나 기사를 챙겨보면서 사회의 문제나, 예술계의 부조리 등을 느끼면서 평등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상황은 무거운 상황이지만, 위트있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아이디어를 멤버들이 각자 냈던 것 같습니다.”
이 공연의 장르는 ‘판소리 코믹 버라이어티 뮤지컬’. ‘마당 창극’이라는 단어 자체에 거리감을 느낄 수 있는 관객들에게 익숙함을 더하기 위해 익숙한 단어로 공연의 장르를 표현했다. 판소리 뮤지컬인 만큼 전통 판소리에 대중들에게 익숙한 곡을 가미했다. 극에서 내내 판소리의 대목이 흘러나왔지만 흥부가 용궁으로 내려가는 장면에서 자라는 느닷없이 디즈니 인어공주의 ost로 유명한 ‘Under the Sea’를 구수하게 부른다. 도채비썰의 다른 작품인 ‘삼국지’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게 하는 장면에서 대중가요 ‘바람 바람 바람’을 주문처럼 부른다. 한자로 이뤄진 단어도 이해하기 쉽게 바꾸고, 내용도 현대의 우리에게 익숙한 내용으로 바꿔 공감하기 쉽게 만들었다. 익숙함을 꼬집어 함께 즐기는 콘텐츠를 만드는 도채비의 무대는 전통 마당 창극과는 다르지만, 마당창극의 본질인 재미 속에서 현실을 꼬집는 풍자와 해학이 살아있다.
“20-30년 전에 고 박동진 선생님께서 전주에서 대사습놀이를 하셨을 때 마당에 관객이 가득 찼었어요. 박동진 선생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만큼 모인 것이에요. 선생님의 소리에 감동이 있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죠. 예술가들은 관객에게 그런 감동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시선에 맞춰서 무대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감동을 주는 무대를 꿈꾸다
이 씨만 해도 적벽가 이수자이며, 열두 살부터 소리를 시작해 20여 년간 소리 활동을 해온 그야말로 정통파 소리꾼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실력 있는 소리꾼들이다. 그렇지만 선배들이 먼저 닦아 놓은 길 말고도 가보고 싶은 길이, 해보고 싶은 무대가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어요. 그동안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으게 됐어요. 저희들을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일단 하고 싶은 것에 대해서는 가감없이, 눈치보지 않고 하려고 합니다.”
창단부터 약 2년간 활발히 팀 활동과 개인 활동을 이어온 도채비는 아직도 해보고 싶은 무대가 많다. 그 무대 속에 가장 담고 싶은 것은 ‘감동’이다.
“감동이라고 할 때 뭉클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말해요. 전통 창극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만큼 공감을 잘 못할 수도 있는데, 소리극단 도채비가 그것을 공감시켜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희의 콘텐츠를 만났을 때 호기심을 자극하면 그 관심이 전통 창극으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소리를 하는 사람답게 한국적인 미장센과 소리 예술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관객 여러분들께 선보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