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선택한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지난한 투쟁
글 김경태 영화평론가
세 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온 ‘안토니오(저스틴 전)’는 한때 범죄조직 활동을 했으나, ‘캐시(알리시아 비칸데르)’와 결혼 후로는 문신 가게를 운영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캐시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제시(시드니 코왈스키)’를 친딸처럼 돌보며 자신이 선택한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과거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던 계부와 그것을 방관했던 계모와 달리, 안토니오는 제시에게 자상한 아빠가 되고자 애쓴다. 제시 역시 자신에게 소원했던 친아빠보다 그를 더 믿고 따른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안토니오는 자신에게 시민권이 없음을 알게 되고 한국으로 강제 추방될 위기에 놓인다. 30년을 넘게 살아왔고 미국 여성과 결혼해 가정도 꾸렸으며, 심지어 그녀의 뱃속에는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지만, 미국의 법은 그가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족 곁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를 향해 자신이 그들에게 왜 필요한지를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 그러나 양부모와 절연한 채 살며 범죄 전과까지 있는 가난한 그가 그 인정투쟁에서 승리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가 자신의 부인과 자식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하는지는 그들의 가치평가 항목에 없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증언해줄 몇 안 되는 친구를 수소문하고,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던 계모를 찾아간다.
미국으로의 입양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났다. 그는 생모에게서 버림받았고 계부에게 학대 받았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굴레에 불과했다. 비로소 처음으로 자신의 적극적인 선택으로 만든 가족들과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어두운 과거가 자꾸만 그의 발목을 잡는다. 그의 앞에 자신과 닮은 베트남계 미국인 여성 ‘파커’가 나타난다. 그녀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녀에게는 그보다 더 큰 상처가 있다. 보트를 타고 베트남을 탈출하다가 어머니와 오빠를 잃고, 아버지와 둘이서 난민으로 미국에 정착했다. 이를 통해 안토니오는 가족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에 대해 고민한다. 그들은 아시아계 이주민으로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국으로 건너온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유대감을 쌓는다.
안토니오는 끝내 한국으로의 추방이 결정된다. 좌절한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호수에 뛰어든다. 그 옛날, 그의 생모가 아기였던 그를 물에 빠트려 죽이려 했던 순간, 평생 그를 사로잡아왔던 그 원초적 기억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삶을 익사의 행위로 재상연해 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처럼 이번에도 생모가 회환의 눈물을 쏟으며 자신을 힘껏 들어 울려 줄 것을 기대한다. 때마침, 생모의 환영이 등장해서 물에 빠진 그를 안아준 뒤, 손을 내밀어 밖으로 끌어낸다. 생모가 그를 구해 준 것이다. 뒤늦게, 안토니오는 그녀의 진심을 깨닫는다. 그를 버린 것이 아니라 그를 구하기 위해서 입양을 보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토니오는 어릴 때처럼 공항에서 가족과 생이별을 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한국어조차 못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야 한다. 또 다시 전혀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과거와 현재는 데칼코마니처럼 대칭되어 닮아 있다. 과거에는 어린 아이를 해외 입양으로 내몬 한국의 가난과 편견이 있었다면, 현재는 서류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는 미국의 불합리한 이민법이 있다. 이처럼 내가 선택한 가족과 함께 살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마저 이룰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과거와 현재는 깊이 공명한다. <푸른 호수>는 시대를 초월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족의 가슴 시린 이별을 방관하고 있는 사회를 직시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