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재즈의 미감, 

그 목소리에 오로지 녹여내다 

글 김하람 기자

계속되던 가을비가 멎고 깨끗한 하늘과 반짝거리는 햇빛이 비취는 어느 날, 삼천동의 한 골목에서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말 분위기 물씬 풍기는 더바인홀에서 올해로 데뷔 10주년을 맞는 재즈 보컬리스트 김주환 씨를 만났다.

재즈에 빠지다

2011년 싱글 1집 [sophisticated]을 발매하고 10년. 그 시간 동안 그는 꾸준히 작업해 9개의 정규앨범, 4개의 싱글을 발매했다. 내년 4-5월 10집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거의 일 년에 한 번꼴로 앨범을 낸다는 엄청난 일을 10년간 이어온 그는 자신이 홀린 것처럼 음악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재즈가 비주류다 보니 앨범 제작이나 공연활동에 경제적인 투자를 하는 것에 비해 피드백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힘이 빠질 법도 하지만, 저는 현실적인 타협보다 저의 명분이나 예술성이 항상 앞섰던 것 같아요.”

스무 살. 스팅, 마이클 부블레, 제이미 컬럼, 조지 마이클 등 재즈 대가의 음악을 듣는 순간 그는 재즈야말로 평생 해도 질리지 않을 음악임을 깨닫게 되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재즈를 파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 영향을 받고,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을까. 음반을 들어보고 찾아보며 재즈를 더욱 깊이 알게 되고 그만큼 재즈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원래 드럼을 전공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드럼을 치다가 노래도 많이 불렀는데, 미래를 위해서는 악기를 배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 때문에 드럼을 선택했어요. 당시에는 가수가 된다는 것이 막연했거든요. 그런데 드럼을 하면서도 드럼보다는 노래를 더 많이 부르고 노래 부를 때가 더 행복한 거예요. 그걸 느끼고 그때부터 미친 척하고 노래만 불렀어요. 하루에 10시간도 더 불렀죠.”

그러다 보니 정규 보컬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1년 정도 보컬 레슨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음악과는 큰 관계가 없었다. 그런 그에게 수많은 재즈 대가들이 스승이 되어주었다. 

“발성에 관련된 책이란 책은 다 사서 봤어요. 밤새도록 보고 연구했죠. 그리고 음반을 엄청 들었어요. 음반을 들으면서 음악적인 레슨을 받은 거예요.”

스윙시대로의 르네상스

그가 추구하는 재즈는 트래디셔널 팝, 스탠더드 넘버들을 재해석하는 재즈 보컬이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전역을 강타했던 전설적인 작곡가들의 뮤지컬 쇼 음악 넘버들을 후대 뮤지션들이 재해석하면서 지금의 재즈 스탠더드를 이루게 됐다. 대가들의 곡을 재해석하며 500-600곡을 부르며 살아온 것이 트래디셔널 팝 보컬리스트들의 전형적인 행보다. 

“프랭크 시나트라, 토니 베넷, 다이애나 크롤, 줄리 런든 등 수없이 많은 재즈 싱어들도 자신만의 오리지널 곡이 거의 없어요. 세계적인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이 자작곡을 쓰지 않는 듯이 말이에요. 위대한 곡들을 부르는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거든요. 누군가는 작곡가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보컬리스트로 살아가는 거죠.”

그 역시 트래디셔널 팝 보컬리스트의 계보를 잇는 사람답게 기존 재즈곡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레퍼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재즈 대가들의 명곡을 자신만의 버전으로 해석하는 것, 그는 그 재미에 푹 빠졌다. 

“좋은 음악을 더 좋게 만들고 싶은 도전의식도 생겨요. 예전에 유행했던 음악의 오리지널 미감을 잃지 않으면서 어떻게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것인지, 저만의 음악적인 미감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는 것이 정말 즐거워요. 또 음악을 하는 순간에는 제가 머릿속에 그렸던 음악적 해석이 연주자들과 딱 맞아떨어질 때, 그 희열이 정말 엄청나요. 그래서 그 순간을 향해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1900년대 초반, 재즈는 대중음악으로 사랑받았다. 그 멜로디와 감정선에 모두가 공감했다. 그렇지만 최근 재즈는 주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만 듣는 매니악한 음악, 카페 등에서 분위기를 위해 틀어놓는 배경음악 정도로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재즈의 힘을 믿는 그는 다시 그 스윙시대의 로망을 재현하고 싶다.

“예술성과 고급스러움을 지조 있게 지키면서 일반 관객들이 재즈 음악에 빠져들게끔 만들고 싶어요. 저와 대중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는 거죠. 자유로움만 있으면 그 접점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또 자유로움 없이 대중들에게만 맞추면 음악적 예술성을 잃어버리기 쉽죠. 제가 하는 음악과 대중이 같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포인트를 찾아가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은 참 편안하고 따뜻하다. 자연스러운 멜로디의 흐름, 강약의 조절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윙 재즈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든다. MMjazz 김희준 편집장은 “보컬리스트 김주환에겐 예스런 미감과 풍미가 있다. 옛 스윙시대의 고전 음악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진심어린 애정이 담겨 있으며, 더불어 선대 명가수들에 대한 존경심까지도 곡마다 뚜렷이 느껴진다. 이를 자신의 목소리로 풀어내기 위해 결코 가식적이고 억지스런 태도를 취하지 않고 이완된 호흡으로 노래한다”고 평했다.

10년, 그리고 평생

그는 지난 3월 관객과 연주자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삼천동에 위치한 ‘더바인홀’이다. 더바인홀은 재즈뿐만 아니라 클래식, 팝, 인디 등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고품격 소규모 라이브홀을 지향한다.

“세종문화회관 같은 대형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는 고급지고 세련된 감성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런 공간에 대한 멋스러움을 지향해서 내부 인테리어도 제가 하고, 소품도 다 제가 골랐어요. 그리고 연주자의 입장에서 연주자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내가 노래할 때 기분 좋을 공간에서 노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야 그 에너지가 관객들에게도 전달이 되거든요.”

접근성 좋은 1층에 자리 잡은 더바인홀은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레 탄성이 흘러나오는 멋스러움을 지닌 공간이다. 좌석도 색다르다. 가운데 단을 설치해 뒷좌석에 앉는 관객도 앞사람에 가리지 않고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또 고급스럽고 두꺼운 방석을 깔아 편안한 관람 환경을 제공한다. 가변형 좌석으로 좌석을 다 빼면 150명 정도 수용 가능하며, 좌석을 배치하면 74석이 나온다. 대관 공연뿐만 아니라, 7월부터는 매월 자체 기획한 공연 프로그램 ‘더바인홀뮤직프로젝트 ; In A Sentimental Mood’를 진행하고 있다. 재즈, 클래식, 어쿠스틱, 인디뮤직이 갖는 세련되고 감성적인 무드를 지향하는 무대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돈이 많이 나가기는 하더라고요. 그래도 보람이 있어요. 제가 공연장을 많이 돌아다녀 봤지만, 전국에 이런 공간이 없다고 자부해요. 그래서 조금만 잘 버티면 전주, 전라북도의 명소가 되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내년에는 더바인홀 공연을 중심으로 재즈 페스티벌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호남권에 유명한 재즈 페스티벌이 없어서 늘 아쉬웠거든요. 야외 공간과 저희 홀 무대, 이렇게 두 개 스테이지로 콤팩트하게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어요. 공연만 쭉 이어지는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일반 관객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유희열의 스케치북처럼 공연도 소개하고, 연주자 인터뷰도 공연 중간에 진행하는 콘셉트로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더바인홀은 코로나 상황이 한창인 작년부터 만든 공간이다. 현실적인 타협보다는 명분이 늘 앞섰던 김주환 대표를 잘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10년.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그가 12월 17일 서울 JCC 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데뷔 10주년 기념 공연을 갖는다. 한국을 대표할 재즈 보컬리스트의 자리에 올랐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그의 목표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이 아니다. 

“죽기 전까지 600곡 이상 녹음하고 죽는 것이 꿈이에요. 지금은 100곡 넘게 녹음한 것 같아요. 평생 600곡 이상 녹음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이미 12, 13, 14집까지 다 계획을 해놓은 상태. 그의 음악에 대한 욕구와 열망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