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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 연재 [보는영화 읽는영화 | 너에게 가는 길]
연민이 연대가 될 때까지 너에게로
김경태 영화평론가(2021-12-09 13:27:34)



연민이 연대가 때까지 너에게로

김경태 영화평론가


012년에 최초의커밍아웃다큐멘터리인 <종로의 기적> 선보였던연분홍치마 <너에게 가는 > 통해성소수자부모모임에서 활동하는 어머니들의커밍아웃 주목한다. 트랜스젠더 남성인한결 어머니나비 게이인예준 어머니비비안 주인공들이다. 번도 자신의 자식이 소수자일 거라 상상해 적이 없었던 그들은 자식의 커밍아웃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왔다. 자신이 낳아준 같아 자책하며 수없이 울기도 했고, 자식이 힘겹게 견뎌왔을 시간들이 떠올라 감히 눈물을 흘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은 성소수자부모모임을 통해 같은 아픔을 공유한 부모들을 만나 위로받고 나아가 자식을 위한 소수자 인권 운동에 동참한다. 


커밍아웃은 정체성의 자각과 긍지를 넘어 관계적 사건이다. 커밍아웃에는 대상이 필요하고 화답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커밍아웃은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사유하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식의 커밍아웃은 부모를 벽장에 가둬버린다. 자식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던 것만큼 부모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견뎌낸 인고의 시간을 고스란히 반복해야 한다. 자식이 힘겹게 건너온 고통과 수치의 경험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부모와 자식의 거리는 한없이 좁혀진다. 


<너에게 가는 > 커밍아웃을 계기로 어머니와 자식이 관성화된 위계적 관계를 넘어 인생의 진정한 동반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어머니들은 소수자 자식들을 이해하는 데에 만족하거나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식들의 삶을 경유해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비로소 세상의 모순에 눈을 뜬다. 소수자들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편견 가득한 세상과 맞서 싸우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혐오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면서 두려워하기보다는 더욱더 전의를 불태울 만큼 단단해진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이 자식에 대한 연민을 넘어 자식과의 연대로, 서로를 위로하는 자조모임에서 세상을 바꾸는 인권단체로 전회하는 것은 필연적 수순이다.



한편, 나비와 한결은 트랜스젠더 여성이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는 뉴스를 접한다. 나비는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사회 분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우울증 약의 복용을 늘려가는 한결을 보며 괴로워한다. 한결이 정말로 사는 것이 힘들어 죽고 싶다면,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 함께 가서라도 외롭지 않게 죽도록 해주겠다고 담담히 말한다. 자식의자살 방관하고 지지하는 , 사회가 부모에게 부여한 돌봄의 의무와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돌봄은 언제나 삶을 독려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자식에 대한 불필요한 돌봄, 필요 이상의 돌봄 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의무적 돌봄을 초월한 윤리적 돌봄이다. 나비는 이미 자식의 삶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렸다. 그것은 연대의 궁극적 이상향이다. 타인의 불가해한 세계 속에 기꺼이 뛰어들어 여행하고자 하는 결연한 다짐 속에서 기원한 관계의 힘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소수자 부모들의커밍아웃 릴레이로 펼쳐진다. 자식의 커밍아웃에 뒤이은 부모의 화답으로 비로소 커밍아웃은 관계적 사건으로 완성되고 견고해진다. 그들은 아직 커밍아웃하지 못한 이들을 대신 안아주고, 자신들처럼 소수자 자녀를 부모들의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에게 부모로서 사회로부터 부당하게 차별받는 자식의 삶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연대한다는 것의 의미를, 나아가 부모와 자식의 근원적 관계성에 대한 진중한 물음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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