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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 특집 [특별기고]
2021년, 누군가에는 쓸쓸했던
전성진 전 MBC PD(2021-12-09 13:42:55)




그대,



바람 되어 오시라



    글 전성진 MBC PD              

사진 안봉주 전북일보 사진기자


낮은 층에서 거주하다 보니 창밖 나무들의 변화가 일상으로 다가온다. 은행잎은 노랗게 변해가고, 창가에 바짝 붙은 단풍나무 잎새들은 찬바람에 파르르 온몸을 떨며 겨울을 준비한다. 나뭇잎의 겨울 준비는 여름내 무성했던 가지로부터 몸을 떨구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지난 봄여름 가을 자기를 버텨준 나뭇가지의 힘든 겨울나기를 도우려는 나뭇잎의 깊은 마음이 담겨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련하고 쓸쓸하다.


한해 나는 가까웠던 사람과 이별하였다. 명은 후배이고 명은 선배이다. 후배는 보다 다섯 어린 광주에 사는 아우였고, 선배는 고등학교 대학 선배에다 같은 직장에서 이십년 넘게 함께 지낸 형이었다.


, 강건한 마음으로 투병 중이던 후배가 근황을 전해 왔다. ‘보름 지나면 항암치료도 끝나 무간지옥에서 탈출합니다. 영혼은 이제 비로소 자유로움을 구가하게 되었네요. 삶과 죽음의 경계와 가벼움을 알았으니 이제 득도한 셈이지요. 추스르고 봅시다.’


반가움과 얼마간 적조했음이 떠올라 바로 전화하여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안부와 건강을 묻고 사이 그러했듯 실없는 농담 끝에너는 애가 모자라서 병도 요놈 없네 하고 이제 떨어져 나갈 거다.” 하였더니, “내가 모자라기로 형보다 모자라겄소. 요즘 용기도 나고 힘도 나니 회복할 터이니 한잔합시다.” 


그것이 같은 계열회사 선후배로 2004 처음 만나 2021 봄까지 거침없이 터놓고 지내던 후배와의 마지막 통화가 되고 말았다. , 그렇게 활달하고, 강인하고, 참으로 멋진 남자 그가 이렇게 속절없이 떠날 줄이야...


어느 늦은 , 아니 그와 어우러졌던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늦은 시간도 아닌 10 즈음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틀림없이 어디서 기울이다 흥이 돋아 나오라 하는 거려니 하는 생각에, 다음에 봅시다뇌까리며 읽던 책장을 넘기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잊고 지낸 사이 얼마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어느 아침 일찍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 누구 00이에요.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아저씨께 먼저 알려야 같아서 아침 일찍 전화하게 되었어요.” “누구? 뭐라고??” 그리고 나는 한참 동안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냥 쇠뭉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같았다.         


이게 뭐지라며 한달음에 뛰어간 장례식장에는 아직 국화꽃 송이 장식되지 못한 가운데 환히 웃고 있는 선배의 사진을 곁하고 형수와 선배의 딸이 망연히 앉아있었다.


가다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저기서 호형이랑 마셨던 덴데, 저기가 호형 농땡이 피던덴데...

호형이 생각보다 깊이 각인되어있는 같다.

아스라이 내가 스물여덟아홉이던 ,

김승희의 수필집 빨간색 표지의 "서른셋의 팡세" 들고 있을 ,

호형이 내게 한마디 던졌다.

"야이, 존망구야, 언제 서른셋 되냐 흐흐흐"

아마 그때 형은 서른셋이었으니 세상을 알았고, 

맨날 사사건건 대드는 덜떨어진 후배는 구상유취 젖비린내 흘렀으리라.


우리는 나이를 먹어도 어른들처럼 의젓하지 못하고, 나이답지 않게 철이 들지 않냐라며 웃고 떠들고 부대끼던 선배와 후배를 떠나보낸 이번 가을 끝이 쓸쓸하다. 은행잎, 단풍잎은 지고도 겨울을 지나 새봄이 지나면 싹을 틔우고 새잎을 내보일 텐데... 


그리운 후배 용백이의 호탕한 웃음과 따뜻한 선배 호형의 잔잔한 웃음이 서리되어 그립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싶은 내마음이

찾아간 알아라


정호승 - 풍경달다



호형! 용백아!

바람 되어 오시라, 

그대들 다녀간 알리라..


·진호 (1954~2021): 전주mbc에서 PD, 프로그램진행자, 편성제작국장으로 일한 그는 전주고, 한양대 신문 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전주 토박이로 살았다. PD 일하는 내내 지역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 으로 꾸준히 지역문 화운동에 참여하였고, 1987 [문화저널] 창간을 발의하고, 초대 편집인으로 일하였다.


·박용백 (1963~2021): 광주mbc에서 기자, 뉴스앵커, 보도국장으로 일한 그는 광주숭일고, 전남대 신문 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광주 토박이로 광주를 지켰다. 기자로 일하는 내내 초집중 수도 편향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지역의 문제를 천착하며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깊은 사고와 인식이 담긴 수많은 리포트와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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