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시장 청년몰, 10년의 시간을 쌓다
글 김하람 기자
본래 시장이란 많은 사람이 오가며 물건을 사고파는 가장 활기찬 공간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시장은 대형마트, 온라인 쇼핑의 등장으로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인 채 겨우 명맥만 이어가고 있다. 전주 남부시장 역시 조선 중기때 전주성 남문 바깥에 섰던 남문장의 역사를 이은 오래된 시장이나, 시대의 흐름은 피하지 못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연령층이 올라가면서 새롭게 시장을 찾는 사람은 줄고, 쇠락의 길을 걷는 전통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만남. 그 특별한 시작으로 출발한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이 10주년을 맞이했다.
청년몰의 시작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쇠락해가는 전통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문화를 통한 전통 시장 활성화 시범 사업(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당시 남부시장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을 펼친 사단법인 이음은 상인과의 공연, 시장 이야기 발굴 등 활동을 7-8년 동안 이어갔지만 시장 안에서 나올 수 있는 내적 동력의 한계를 느끼고 청년 상인을 육성하고자 했다. 그때 만난 것이 문전성시 프로젝트. 이음은 문전성시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 상인을 육성하는 청년 장사꾼 프로젝트를 시작, 청년 창업 아카데미 수료생중 시범 점포를 선정해 지원했다. 바로 ‘카페 나비’와 ‘공방 이응’이다. 2012년, 시범점포로 오픈한 ‘카페나비’를 포함해 최종 선발된 11팀이 상인들이 창고로 사용하던 공간인 남부시장 2층 새마을 시장에서 청년몰을 시작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시장 내에서 공연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청년몰 조성을 지원하는 사업이 아니었다. 3년에 6억이라는 적은 예산을 가지고 버려진 공간을 상업공간으로 가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청년 상인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들은 열정과 꿈을 가지고 청년몰을 일궈냈다.
상생을 목적으로 중복되는 아이템 없이 선정된 12팀은 가게마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야시장과 여름축제를 기획하며 지역에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색다른 공간의 탄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공간을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입점 문의도 증가했다. 2013년에는 남부시장의 협조로 2층 공간을 전체 청년 상인들이 사용하게 되었으며, 청년몰을 찾는 사람들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성한 청년회관 포함, 34개의 점포가 공실률 없이 운영됐다.
지원사업 종료이후 자립과 정체기
문전성시 사업이 종료된 2014년부터는 사업단의 역할을 청년 상인들이 나누어 진행했다. 청년몰 반장을 중심으로 반상회와 공연 기획팀, 홍보팀, 환경팀으로 나눠 운영하며 본격적인 자립이 시작됐다. 청년 상인들은 자체적인 콘서트, 소식지 발간, 프리마켓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했으며, 많은 지자체와 전통시장이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을 벤치마킹했다. 전주남부시장 청년몰은 전통시장에 자리잡은 청년몰 1호이며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우뚝 섰다.
성장세를 이어가던 청년몰에도 정체기가 찾아왔다. 18년 이후부터는 처음 청년몰을 조성했던 1,2세대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영업을 종료하면서 빠지게 되고, 지원사업도 종료되는 가운데 새로운 청년 상인들이 들어오며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충돌하며 청년몰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고민하게 됐다.
사단법인 이음 소속으로 청년몰을 조성하고 2018년까지 청년몰 메니저를 맡으며 청년몰을 지켜본 양소영 씨는 “그동안의 10년에서 추진력 있는 상인회 회장님, 전주시의 정책적 도움, 이음이라는 기획력을 가진 팀들이 일궈왔지만, 앞으로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며 앞으로의 청년몰은 그동안의 모습과는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나가야 함을 말했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의 저력
남부시장을 벤치마킹한 다른 지역의 청년몰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10년의 시간을 이어온 남부시장 청년몰의 저력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앞에서 더욱 빛났다. 한옥마을 관광객 감소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히려 관광객에 의존했던 가게보다 자신만의 색깔과 정체성을 가지고 꾸준히 운영한 가게들이 살아남았다.
여전히 공간은 노후화 문제를 안고 있다. 협소한 공간에,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물이 새고, 겨울에는 수도가 언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날이면 갑자기 누전되기도 한다. 건물의 노후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낮은 임대료라는 장점이 되기도 했다. 초기 자본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청년몰은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10년 동안 80명의 상인을 품은 청년몰은 여전히 기회의 공간이며 삶의 터전으로서 이어지고 있다.
청년몰의 상인들
<드로잉파티> 정다이 씨 “청년몰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공간"
2021년 7월, 비교적 최근 청년몰에 입주한 드로잉 파티의 정다이 씨. 회사를 다니다 오래 이어진 직장생활에 지쳐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중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것을 시도해보기 위해 청년몰에 들어왔다.
“손으로 만들고 꾸미는 일을 좋아해요. 피크닉 컨셉으로 컵과일과 착즙주스, 샌드위치를 팔고 있습니다.”
처음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가 예산. 이곳저곳 알아보던 중 청년몰이 떠올랐다.
“금액적으로 예산상 부담이 적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렇지만 임대료가 낮은 만큼 공간이 협소하고 시설이 노후됐어요. 공간이 협소하다보니 손님들도 들어와서 드시기를 부담스러워 하셨죠. 그 점이 초반에 많이 걱정이 됐었어요. 그렇지만 먼저 청년몰에서 계시던 분들이 조언해주시고 같이 고민해주셨어요. 그렇게 조금씩 바꿔가며 최적의 배치를 찾았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가 청년몰에서 느낀 큰 장점이다. 장사는 물론 공간을 운영해본 적 없는 청년들에게 그보다 든든한 것이 있을까.
“청년몰은 밝은 마을 같아요. 아무래도 회사와는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이다보니 트러블 없이 잘 지낼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지만, 괜한 걱정이었어요. 저에게 청년몰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기회의 공간인 것 같습니다.”
<감성민작화실> 박성민 씨 “화려하지는 않지만 묵묵히 나아가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전주의 풍경이 곳곳에 걸려있다. 세심하게 전주를 그림에 담아낸 박성민 작가의 감성민작화실이다. 박성민 작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선보이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고 한옥마을과 인접한 청년몰을 택했다. 2018년 1월. 청년몰이 가장 활성화 됐을 때 이곳에 자리잡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관광객 감소와 코로나로 인해 청년몰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청년몰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청년몰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남부시장 청년몰은 정부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래서 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끈한 커뮤니티가 있는 것 같아요. 20여 개가 넘는 가게들이 함께 있지만 경쟁을 하기보다는 서로 응원해줘요. 그런 인간적인 면이 청년몰의 매력인 것 같아요.”
공간을 준비하면서 다른 지역의 청년몰을 답사해봤지만 어디서도 남부시장 청년몰 같은 곳은 발견하지 못했다. 오롯이 장사를 위해 들어와 서로 경쟁하고 다툼이 생기는, 푸드코트같은 느낌을 받았다.
“남부시장 매니저님이 중간다리 역할을 잘 해주시고, 상인들도 돈을 버는 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다보니 다들 자기만의 낭만을 품고 오셔요. 그러다보니 다 긍정적이고 낭만적인 분들이 많이 오시죠.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밑바닥부터 시작해 많은 풍파를 겪어온 청년몰이기에 코로나19라는 유래 없는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며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책방 토닥토닥> 문주현, 김선경 씨 “청년몰은 전주 안에서 제일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
우주를 담은 책방. 독립출판물, 사회과학서적, 에세이, 비소설 등 장르를 망라해 사회 문제에 대한 다양한 쟁점을 다루는 책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책방 토닥토닥은 2017년 4월 청년몰에 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이 공간에서 상인들과 함께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렇지만 결국 이 공간은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하는 사람대로 에너지를 써야 하고, 기획자나 문화예술을 하시는 분, 다양한 실험활동을 할 수 있는 분들이 들어와서 이 공간을 운영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시즌2가 필요해요. 이 공간을 우연히 찾아오기는 힘들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변주돼야 지속가능하게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 역시 건물 노후화 문제를 언급했다. 청년몰의 위치가 남부시장 상인 개개인의 소유 공간이다보니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상황. 상인회와 시장 상인과의 협의가 필요하다보니 쉽지 않다.
“노후화됐으니 모든 것을 다 뒤엎고 떠나라고 하기에는 그동안 청년몰에 쌓인 역사와 에너지와 시간들이 너무나 이 공간에 잘 응축되어 있어요. 이 공간을 전주의 문화유산으로 계속 발전시키고 발굴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 차가운 새벽> 강나위 씨 “시장 안에 젊은 피를 받아들이며 실패하지 않은 드문 케이스”
안전하게 술을 마실 수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지향하는 칵테일 바 차가운 새벽은 2012년 처음 청년몰에서 오픈한 열 두 가게 중 하나이며, 그중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게다. 차가운 새벽의 사장이자 바텐더인 강나위 씨는 청년몰의 초창기 멤버로서 당시 청년몰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 조성됐는지를 기억하고 있다. 바닥이 패이고 배수가 좋지 않았으며, 유해 생물도 자주 보이고, 화장실도 전부 화변기였다. 지금도 여전히 쾌적한 공간은 아니지만, 계단도 보수하고 와이파이까지 설치하면서 환경이 어느 정도 개선됐다.
“낙후된 시설, 제도의 미비가 가장 대표적 단점이고, 대표적 장점은 낮은 임대료입니다. 청년몰의 많은 장점과 단점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청년몰이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망하지 않고 시간을 쌓아 온 가게들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공간에 대한 신뢰가 있을 테고, 이 공간을 애정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임대료가 급상승하지 않은 덕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방향으로 실행할 수 있는 곳, 실험과 시도에 항상 열려있는 곳, 시장 안에 젊은 피를 받아들이고도 실패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청년몰은 10년을 이어올 수 있었으며, 차가운 새벽 역시 그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
“청년몰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적인 발판을 만들 수 있는 곳이기를, 그 안에서 좋은 관계들이 형성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