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넘어 필연으로 맺어진
모녀 관계가 건네는 따뜻한 위안
글 김경태 영화평론가
막 할머니를 하늘로 떠나보낸 8살 소녀 ‘넬리(조세핀 산스)’는 부모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유품을 정리하고 있다. 그곳은 엄마가 할머니와 단둘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이기도 하다. 넬리는 아직 상실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에게 그곳에서 보냈던 날들을 궁금해 하며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엄마는 너무 어릴 때 일이라며 말을 아낀다. 넬리는 우울해하는 엄마를 위로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어른들은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자신에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날, 엄마는 인사도 없이 혼자 먼저 할머니 집을 떠나버린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어른과 아이라는 각자의 규범적 위치와 역할은 서로의 진심에 가닿는데 있어 장벽처럼 보일 뿐이다. 어른의 언어를 모르는 넬리와 아이의 언어를 잊어버린 엄마는 서로를 겉돌 뿐이다.
넬리의 간절함이 통한 탓일까. 넬리는 집 근처 숲속에서 오두막을 짓기 위해 긴 나뭇가지를 힘겹게 옮기는 ‘마리옹(가브리엘 산스)’을 만난다. 그 아이는 넬리와 동갑내기의 모습을 한 엄마였다. 그들은 금세 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서로의 집을 오간다. 즉, 그들은 함께 자유롭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선형적 시간성으로부터 이탈한다. 이제 시간은 넬리와 마리옹의 관계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마침내 넬리는 자신이 마리옹의 아이라고 고백한다. 마리옹은 담담하게 그 말을 믿으며 그에게 미래에서 왔냐고 묻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더 깊은 호기심으로 다가간다.
<쁘띠마망>은 엄마와 딸의 대안적 관계 맺기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다. 딸은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의 눈높이에서 엄마를 위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때로는 쌍둥이 자매처럼(실제로 쌍둥이 배우가 그 둘을 연기했다) 유치한 장난을 치고, 때로는 연극을 통해 연인 사이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다양한 관계의 놀이를 통해 서로를 투명하게 마주한다. 딱히 진지하게 속내를 털어놓지 않더라도, 그저 또래 친구처럼 어울리며 장난치는 것만으로도 소통이 되고 위안이 될 수 있다. 이 시간여행의 궁극적 목적은 거울 이미지로 마주한 딸과 엄마의 정서적 교감이다. 그것은 각자에게 부여된 관습적 역할을 내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언어적이고 논리적인 이해의 층위까지 넘어선 무한한 친밀함을 향한다. 어느 순간, 누가 넬리/딸이고 누가 마리옹/엄마인지를 분간하는 것은 무의미해진다.
넬리는 마리옹과의 대화를 통해 엄마가 자신의 엄마, 그러니까 넬리의 할머니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기원이 꽤 오래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 두려움은 또한 넬리가 지금 엄마에게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넬리에게 과거로의 여행은 엄마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막연한 상실감을 치유 받는 기회이기도 하다. 마리옹과 함께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밤, 넬리는 침대에서 창틈으로 새어든 그림자의 움직임을 가만히 응시한다. 엄마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근원적 공포를 비로소 엄마의 입장에서 체험한다. 자식에게 나약한 속내를 들킬까 애써 태연한 척 미소짓는 부모의 진심을 깨닫는다.
마리옹은 넬리에게 ‘이미 내 마음속에 네가 있거든’이라고 말하면서 미래에 자신이 원해서 넬리를 낳았을 거라고 단언한다. 이것은 훗날 성인이 되어 넬리와 모녀 관계로 재회하게 될 미래를 우연에서 필연으로 만든다. 모녀 관계를 규정 짓는 아름다운 운명론이다. 영화의 마지막. 넬리는 수술이 예정된 마리옹을 병원으로 보내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넨다. 텅 빈 할머니 집에는 다시 돌아온 엄마가 넬리를 기다리고 있다. 넬리는 엄마를 ‘마리옹’이라고 부른다. 엄마는 웃으며 화답한다. 앞으로 넬리와 엄마는 서로에게 더없이 가까운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