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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 | 칼럼·시평 [문화시평]
<時評>엄격한 묘사와 탄탄한 구조적 구상의 진실성
-황재형의 「쥘흙과 뉠땅」
유휴열 ·서양화가 (2003-12-18 11:10:47)


 그림들마다 석탄가루를 털어 내야 전시가 가능했다는 미술관 관장의 말로도 그가 어느 곳에서 생활을 하며 작업을 해왔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타이티」로 떠난「고갱」이 아니고서도 우리 주변엔 문학이나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도시를 홀연히 떠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황재형도 태백의 황지로 내려가 세간살이를 붙였으며 생활을 위해, 그림을 위하여 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캐야 했었고 닥치는 대로 일을 가리지 않고 했었단다.

 황재형 자신이 작품의 모델이며 생활 그 자체가 테마였다. 또한 검은 석탄더미 사이로 무심히 떠가는 구름, 광촌 길거리를 구르는 돌 ·자갈에 이르기까지 그는 애정으로 감싸고 어루만지며 어느것 하나 어느한 구석도 놓치지 않고 있다. 마치 황지의 혼을 몽땅 캔버스에 뽑아 담으려는 의욕으로 제작 열 또한 뜨겁다.


 내가 처음 그의 작품을 대하게 된 것은82년쯤으로 기억되는 중앙미술 대상 전에서이다. 광부의 낡은 제복을 예리한 시각으로 묘사한, 이른바 극사실적 계열의 작품이었으며 한동안 같은 계열의 작업올해 온 것으로 안다. 그후 몇 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일은 쉽지 않은 일 일터이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철저한 묘사를 바탕으로 탄탄한 구도의 소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광산촌의 생활을 생생하게 살아나게 하면서 무한한 공상 속으로 몰입하게 한다. 일련의 삶의 리얼리티라고나 할까. 광부들의 정겨운 얼굴에서 분노하는 눈빛에 이르기까지의 모습들을 다양한 재료로 시도하고 있으며 종이를 짓이겨 제작한 부조에서는 외로운 이들의 힘든 삶을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더 가까이 접근해 보려는 참된 애정이 서려 있음 을 볼 수가 있다.

 몇몇 큰 작품에서 부분적으로 복제된 물질(신문, 무늬가 있는 옷감 둥)을 사용하고 있다. 너무 작위적인 것이 아닌가하는 반문을 일으키는 것은, 평면 위에 가져간 또다른 재료와 형상이 거부감 없이 웅어려져 효과를 더 하지 못할 때인 듯 싶다. 다양한 표현의 방법을 서슴지 않음에서 기대를 모으게 하며 업체의 작업 또한 같은 맥에서 볼 수밖에 없음은 평면 작품이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한 탓이 아닐까.

 

 이른바 80년대 우리 나라 미술에서 황재형 또한 기여한 바가 큼은 말할 나위가 없다. 주로 큰 작품에서 유감없이 느끼게되며, 간혹 소리 높은 그림에 비하여 표현방법이나 흔히 일컫는 조형의 기본마저 무시되어지는 작가들 속에서도, 황재형의 작업은 엄격한 묘사와 탄탄한 구조적 구상을 바탕으로 생활의 체험을 진실하게 표현함으로써, 진한 맛을 느끼게 하는 작업이 아닌가 싶다. 황재형의 그림이 주는 가장 짙은 감동은 작품에 대한 낭만적인 감상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점이다. 그 이유는 갱내에서의 광부들의 작업모습, 막장사고 직후 출갱한 광부와 아내와의 뜨거운 포용, 뿌연 먼지가루를 날리며 고개길을 오르는 출근 버스와 퇴근버스, 햇빛이 내려앉은 마당에서 놀고있는 광산촌 아이의 모습까지의 모든 이야기들이 지극히 어둡게 표출되어 있다는 때문만은 아니며 그것은 곧 그의 작품이 지니는 노동의 참의미 때문이다. 그만큼 황재형은 자신이 체험한 노동의 진실함을 더 이상의 수식이 없이도 관객들이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성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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