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힘'을 주는 '한 끼'
글 차경희 사진가
서른을 코앞에 두고 미래를 내다보며 고민을 거듭하다가 어쩌면 좋아하는 것을 지금 아니면 평생 선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물아홉에 사진학과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처음 접한 카메라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사진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청소년기와 청년시절에도 늘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진로 방향을 몰라서 막연히 꿈으로만 갖고 있었기에 뒤늦은 사진학과 진학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사건이기도 했다.
나의 작업은 크게 3가지 형식으로 인물과 풍경 사진, 일상을 기록하는 포토에세이로 구분될 수 있다. 인물 사진으로는 <소록도 사람들 2001>, <하얀 집_정신요양원2001>, <다방레지2002>, <명상원 사람들2006>, <푸른 방_도시의 여자들2014>이 있다. 2000년도 초반에 찍은 사진 속 대상은 사회적 시선의 중심에서 밀려나 슬픈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접촉하며 본 그들은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지켜가며, 인간의 도리인 ‘양심’이라는 정직한 마음을 훼손하지 않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시절 꿈이라면 직접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으리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는 순진한 꿈으로, 감히 그들의 아픈 삶을 함께하고 공감하며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철없는 꿈은 그리 오래 가지 않고 하나의 환상으로만 남았다. 대학시절 우연한 기회에 전국 대학사진 공모전에 응모했는데 뜻밖에 대상을 받았다. 처음엔 상을 받고 상금을 받는 것이 매우 기뻤지만, 그와 함께 타자의 슬픈 삶을 찍어 세상에 드러내는 것으로 상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사진으로 상을 받아도 되는지, 왠지 그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용기를 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정당하고 거창한 뜻이 있다 하더라도 타자의 삶을 찍는 행위 속에는 사진가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타자의 삶에 카메라를 위치시키는 이유와 책임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 세상과 소통할 답을 찾지 못해 아직 발표를 하지 못한 작품이 많이 있다.
풍경 시리즈로 발표한 작품은 <생, 바다풍경>, <터, 지속된 시간>, <흐르는 꽃> 시리즈가 있다. <생, 바다풍경> 시리즈는 경기도 남양만의 간척이 이뤄진 바다 풍경을 찍은 사진이다. 물리적인 힘으로 바다가 사라졌지만, 황폐화된 땅이 점점 육지화하는 과정을 보면서, ‘생’은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본능적으로 역경을 뚫고 나가는 ‘힘’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생의 힘’을 사진으로 담았다. <터, 지속된 시간> 시리즈는 국토의 자연 속에 자리 잡은 무덤 풍경을 찍은 사진이다. 무덤은 죽은 자의 거처가 아닌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마지막으로 지어준 ‘사랑의 보금자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매개의 공간이자 사랑의 공간으로서 아늑하게 포착했다. 그런 뜻에서 ‘터’는 애도가 죽은 자를 잊는 것이 아닌,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저마다 기억되는 풍경 속에서 여전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죽음을 재해석한 사진이다. <흐르는 꽃> 시리즈는 꽃의 만개를 피어남의 절정이자 필멸의 운명이라 말하며 만개한 꽃이 지닌 ‘그 운명은 생의 부정이 아닌 오히려 생의 역동성과 아름다움을 존재하게 하는 본질이고 이 또한 생의 힘’이라고 표현한 작품이다.
포토에세이 사진은 2016년부터 시작했다. 사진치료 공부를 하면서 ‘사진일기’를 경험했는데 그 후 꾸준히 일상에서 보이는 풍경과 사물을 찍은 뒤 그날 잠들기 전 사진을 다시 보며 생각나는 대로 한 줄 문장으로 제목을 달아 보았다. 사진을 찍을 때와 제목을 붙일 때 투영되는 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발견하면서 마음속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2021년 5월 경기도로 이사한 뒤 일상을 기록하는 사진이 하나 더 늘었다. 그동안은 일상의 풍경만 사진으로 찍었다면 자신을 위해 차린 밥상을 찍었다. 그동안 한 번도 음식 사진을 찍은 적이 없는데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밥은 먹었냐? 밥 잘 챙겨 먹어라. 천하장사도 밥 안 먹으면 쓰러진다.” 하는 말씀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밥상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엄마 내 밥상이야. 이렇게 잘 먹고 있으니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그렇게 별 뜻 없이 찍었지만, 렌즈를 통해 식재료를 응시하면서 그들이 품고 있는 생기를 발견한 것이다. 식재료라는 생물이 지닌 본래의 형태와 색 그리고 질감이 하나의 존재로 느껴지고, 그 완벽한 모습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생존의 힘’으로 다가왔다. 그러면서 사람의 몸은 자신의 에너지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생명을 먹고 흡수하면서 생을 유지한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사람의 몸은 휘발유가 없는 자동차와 같다. 기름 없이 차가 움직이지 못하듯 끼니때마다 음식을 섭취해야만 생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립하고 나서 직접 밥을 차려 먹으면서 몸의 변화와 함께 마음의 변화도 많이 생겼다. 정성스러운 밥상은 대부분 누군가를 대접할 때 하는 일이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행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고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채워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몸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졌다. 일상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혼자이지만 맛있고 즐겁게 식사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면 서둘러 해가 지기 전 산책을 나간다. 작은 개천을 들여다보면 물고기가 유영하고 있다. 때로는 죽어 있는 물고기를 보면서 살고 죽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지구의 소중한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사람도 물고기 한 마리와 같은 존재이고, 그리 특별하지 않은, 모두가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그렇기에 이 평범한 일상의 하루하루가 무척 소중하다는 것을.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인생의 사건과도 같았지만, 이제 사진은 친구이자 놀이이며 일상이자 인생이 되어 버렸다. 그것이 축복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진행 중이기에 심판할 순 없지만.
올해 1월부터 문화저널 표지사진을 연재하게 된 사진작가 차경희 씨의 글이다. 그의 사진은 감각을 자극하며 맛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문화저널은 올 한해 그가 특별한 관점으로 담아낸 사진과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