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숨 쉬듯 존재하는 

예술을 꿈꾸다

넓은 통창. 그 뒤로는 넓고 푸른 아중 저수지가 펼쳐지고 새하얀 벽면을 따라서는 작품이 놓여있다. 예술과 자연을 품은 카페, <예술공간 결>이다. 지난해 3월 문을 연 이곳에서는 매월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 작업에 솔직하고 진솔하며 관객과의 소통에 항상 열려있는 지역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예술공간 결>의 대표 권구연 씨를 만났다.

자연 속 결을 찾아서

권 대표는 한국화를 전공하고 한지를 활용해 자연의 결을 담아내는 조형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자화상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결혼을 한 후에는 그림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시선의 중심이 자신에게서 주변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작품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이전에는 한지 위에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작업을 하고 있다.

“종이는 쉽고 친숙한 소재예요. 습윤성, 가변성과 같은 성질을 가져서 잘 찢어지면서 또 잘 찢어지지 않고, 찢은 종이가 물과 만났을 때 제가 만진 대로 또 다른 형태의 결과물이 나와요. 그런 성질들을 활용해서 작품으로 만들고 있어요.”

작가의 작업의 중심이 되는 것이 ‘결’이다. ‘결’이란 무엇일까? 작가는 그것을 정의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결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의 결을 찾아 보세요’ 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결을 자연에서 찾았어요. 휴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원래부터 자연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문화 사업과 관련한 연구소에서 바쁘게 일을 하던 그는 어느 날 과로로 쓰러졌다. 힘들고 무기력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석산 레지던시에 들어갔다. 그는 그곳의 아름다운 정경에 치유되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연석산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작가의 작품 속으로 자연이 들어오게 됐다. 

그림과 같은 풍경을 혼자만 누리기 아까웠던 그는 작업실 안에 작은 카페를 차렸다. 작업실에 찾아오는 손님들과 커피 한잔 하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멋진 풍경 속에서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꿈꾼 그는 레지던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공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미술관에 오시는 관객들은 한정적이잖아요. 갤러리 카페들이 많기는 하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사람이 운영하면서 기획한 전시를 선보이고, 작가와 일반인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후배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선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커피와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담아내는 <예술공간 결>의 풍경은 연석산에서의 추억을 되살릴 만하다.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자연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예술공간 결>이 3층에 위치해있기 때문. 접근성이 좋지 않아 대다수의 카페들이 3층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풍경을 위해 과감히 선택했다. 공간 구성도 보통의 카페와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카페라고 하면 테이블이나 인테리어가 개성이 강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의자나 테이블, 인테리어에 힘을 많이 뺐어요. 공간에 놓이는 작품이 더욱 돋보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분들이 보실 때 공간이 비어보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을 볼 때는 동선이 중요하잖아요. 동선에 걸리지 않도록 테이블 수도 많이 줄였어요.”

그렇다고 카페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실력 좋은 커피팀과 콜라보해서 운영하는 만큼 질 좋은 원두와 맛과 향을 살린 커피가 이곳의 자랑이다. 로스팅도 직접 하고 있으며,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차도 직접 블랜딩 한다.

“갤러리 카페라고 하면 음료 쪽이 뒤쳐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함께 공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권 대표는 누구든지 와서 보고, 그리고, 먹고, 마실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경직되지 않은 공간인 만큼 질문도 쉽게 오간다.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누구인지, 그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작가와의 대화 시간도 준비했지만, 특별히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물어오는 손님들이 있다. 권 대표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이 들어왔다. 

“공간 이름이 ‘결’인데, 왜 ‘결’이냐고 물으셨어요. 그래서 이 공간의 대표 그림 주제가 ‘결’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 하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제 개인전으로 전시를 준비했어요.”

<예술공간 결>에서는 전시와 함께 아트상품을 만날 수 있다. 작품 구매가 부담스럽더라도 손쉽게 예술 작품을 일상 속에서 향유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전시와 관련된 키링이나 그립톡(스마트폰을 손에 간편히 쥘 수 있게 해주는 용품), 엽서, 드로잉 키트 등이다. 드로잉 키트의 경우 작가의 작품 외에도 명화나 유명 애니메이션 일러스트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주말에는 오셔서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림들을 정말 잘 그리셔요. 이런 공간이기 때문에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오셔서 그린 그림들을 저는 기증을 받거든요. 기증해주시면 카페에 전시하겠다고 말씀드려요. 그러면 더 열심히 그리시는 것 같아요.”

공간 한 쪽에는 손님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작가 못지않게 뛰어난 솜씨를 뽐내는 그림들도 있고, 서툴지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한껏 표현한 그림들도 있다. <예술공간 결>은 예술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시부터 공간 운영, 홍보, 아트상품까지 모든 것을 기획하는 권구연 대표에게는 매일매일이 바쁜 하루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공간은 이제 막 출발했을 뿐. 그는 앞으로의 모습을 그려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공연도 함께 하려고 기획하고 있어요. 전라북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 청년 예술가들, 마술, 클래식, 재즈, 인디 밴드 등 더 분야를 넓혀서 공간을 지원해주고 여기서 같이 융합해서 공간을 채워나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