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교리와 안중근 의사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 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3월은 우리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달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생각할 때마다 종교 교리를 다시금 따져 묻게 됩니다.
종교 교리는 현실 문제에 어디까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까. 특히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교리는 언제나 많은 혼동을 일으키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교(천주교 개신교 동방정교)는 십계명을 통해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처님을 믿는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생하지 말라”는 불교의 기본 교리이고, 북방불교 스님들은 이 교리에 따라 아예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현실은 간단치 않습니다. 국가나 민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도 이런 교리를 지켜야 하나? 동양(불교)과 서양(그리스도교)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에는 얼마나 수많은 전쟁이 있었고 그때마다 엄청난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안중근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세 발의 권총으로 처단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는 오랜 기간 동안 안중근의 의거를 교리 위반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일반 국민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었지요.
“안중근 의사의 삶은 크리스천 생활의 모범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소명 실천에 투철하셨을 뿐 아니라, 기도생활과 수덕생활에도 철저하셨습니다. (…) 일제의 무력침략 앞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 땅의 국민들이 자구책으로 행한 모든 행위는 정당방위와 의거로 보아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일제 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의 제거를 국권 회복을 위한 전쟁 수행에 있어서 필요한 전술 전략으로 보고 이를 감행한 것 역시 타당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안중근 토마스 이야기입니다. 지금 들으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왜 이렇게 길게 인용했을까, 하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역사적인’ 발언입니다. 김 추기경은 1993년 8월 21일 한국가톨릭문화사연구회가 주최한 ‘안중근의 신앙과 민족운동’ 심포지움에 참석, 한국가톨릭 역사에 길이 남을 추모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안중근의 거사는 정당방위다!” 김 추기경 미사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당시로서는 실로 파격적이었습니다. 한국가톨릭의 최고지도자가 이 말을 하기까지 거사 후 무려 84년, 8.15 해방 후 48년의 긴 세월이 흘러야 했으니까요. 안중근은 그동안 천주교 신자로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슬프고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심포지움 참석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김 추기경이 심사숙고 끝에 이같은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노길명 고려대 교수(종교사회학)의 조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노 교수는 한국 역사학계의 연구결과 등을 김 추기경에게 설명하면서 심포지움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이충렬 작가가 서울대교구의 인가를 받아 출판한 김 추기경 전기 ‘아, 김수환 추기경2’(김영사)에 수록된 김 추기경과 노 교수의 대화록이 김 추기경의 고뇌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은 노 교수의 설명을 들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김 추기경 : “저도 한국인으로서 안 의사를 존경하지만,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한 것은 살인행위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앙에 저촉되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서울대구장 신분으로 심포지움에 가서 미사를 집전하고 강론을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노길명 교수 : “추기경님, 안 의사의 행위는 살인행위가 아니라 일본에 선전포고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는 군인 신분으로서 독립전쟁 중에 행한 전투행위로 보아야 합니다.”
노 교수는 안중근의 거사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을 설명하면서 ‘살인’이 아니라 ‘군인으로서의 전투행위’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군인으로서의 전투행위’에 주목했습니다. 만약 이런 평가가 역사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라면, 안 의사의 저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채택한 <사목헌장>에 의거해 ‘신앙적 정당성’을 확보하면서, ‘최상의 찬사를 받아야 할 정신’(사목헌장 79항)으로 평가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신 것이지요.
안중근에 대한 기록과 평가는 한국 일반사와 한국 교회사 사이에 심각한 불일치가 존재했었습니다. 초등학교에만 들어가도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안중근이 성당에서는 언급조차 없었으니까요. 한국 교회사의 큰 공백이 김 추기경 발언을 시작으로 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고 정진석 추기경은 2010년 안중근 순국 100주년 추모 미사에서 "안중근 토마스 의사의 독립 투쟁과 의거는 신앙의 연장선상이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서울대교구는 2011년 안중근 토마스를 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 자료 수집 등 시복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도 2014년 안중근의 유묵 ‘敬天’ 기증식에서 “안 의사의 숭고한 삶을 본받자”고 말했습니다.
안중근은 신앙심과 애국심을 일치시킨 순교자입니다. 믿음은 신앙인에게 담대함을 줍니다. 다윗이 하느님의 힘으로 골리앗을 물리쳤듯이, 독실한 신자였던 안중근도 하느님의 힘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안중근은 신앙의 승리자이며 역사의 승리자입니다. 프랑스 가톨릭은 전쟁영웅 잔 다르크를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도 안중근 의사를 한국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기 위해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