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법 개정과 주거문화
우연히 선배와 안부를 주고받다 같이 공부하던 시절 고시원 얘기가 나왔다. 신림동 학원가와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에서의 수험 생활이었다. 지금에서야 좀 찌질했지만 아주 조금쯤은 낭만적이었다고 얘기했지만 고시원 생활이 참 팍팍했다고, 만약에 지금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집은 우리 사회에서 단지 생활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성공의 척도이기도 했고, 인생의 목표이기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격차를 상징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런 고시원법 개정 소식을 들으면서도 유튜브에서 부동산 매물을 소개하는 영상이나 스타들이 나서 의뢰인의 집을 구해주는 중개방송인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늘 마음이 불편하다. 아마도 박탈감, 소외감을 조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고시원은 말 그대로 고시 준비생들이 공부와 숙박을 겸하는 곳이다. 1980년대, 주택개발이 한창일 때 ‘고시원’이라는 주거 형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본래 고시원은 불법시설이었기 때문에 주거로서 적용할 만한 기준과 규정이 없었다. 불법이던 고시원이 합법이 된 것은 2009년에 이르러서다. ‘준주택’을 주택법에 신설하고 고시원, 오피스텔이 이 규정에 포함됐다. 고학생, 특히 지역수험생들의 경우 몇 달간의 수업 때문에 원룸을 얻기에는 부담스럽고, 룸메이트를 구하자니 방해받는 게 싫을 때 종종 고시원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시원은 수험생들만의 공간만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수험생을 대상으로 고시원이 새로 지어지자 기존 낙후된 고시원과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고, 외곽에 있는 낙후되고 오래된 고시원들은 도시 주거환경의 최전선으로 변모했다. 수험생보다는 일용직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거주하는 공간, ‘생계형’ 주거지가 됐다.
얼마 전, 서울시가 고시원에 대한 조례 개정안을 발표했다. 7월부터 적용되는 이 조례에 따르면 이제 고시원 방의 최소 면적은 7㎡, 의무적으로 외부 창문을 설치해야 한다. 외부 창문은 폭 0.5m, 높이 1.0m 이상, 사람이 탈출 가능한 최소 크기다.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종종 고시원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피해가 생기곤 했다. 창문이 있는 방과 없는 방, 월 4만 원으로 생사가 갈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번 개정안은 7월 이후 신축 또는 증축되는 시설에만 적용된다. 기존 노후화된 고시원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다시 양극화가 이어질 수도 있다. 어쩌면 고시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우선시하는 조건은 창문보다는 여전히 월세일지도 모른다. 저렴한 주거 공간에 대한 수요는 분명하고도 절실하다. 하지만 그 선택의 폭은 몹시 좁다. <구해줘 홈즈> 같은 방송이나 유튜브에서는 고액 매물과 으리으리한 인테리어, 햇살로 가득 찬 집이 즐비하지만 오늘도 누군가는 월세를 아끼기 위해 창문이 없는 오래된 고시원을 기꺼이 찾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자유가 없다고 해서 최악의 환경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리고 정말 생계형 주거의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법’밖에 없는 것일까?
지금의 시스템, 지금의 주거에 대한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사실상 생계형 주거에 대한 유일한 방법은 ‘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은 고시원 건물주, 그리고 세입자에 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집값이 아니라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물론,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규정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우리의 주거 문화도 이제는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공유 오피스가 근무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것처럼, 어쩌면 이런 생계형 주거환경의 문제도 공유 주거를 통한 주거환경의 변화로 해결할 수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거환경과 주거문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