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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4 | 연재 [우리 옆의 예술가 | 작가 안선우]
“지역의 가치를 찾는 일은‘내가 왜 여기 있지’에 대한 답”
신동하 인턴(2022-04-11 13:20:40)



지역의 가치를 찾는 일은내가 여기 있지 대한

신동하 인턴


전주시 만성동의 사무실. 회색 콘크리트 사이로 언뜻 보이는 청년들의 눈빛이 진지하다. 이곳은 사회 구성원 다수에 관계되는 디자인을 하는 회사 <크리티션>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모토로 몰가치 세상 다양성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 <크리티션> 안선우 대표를 만났다.


전통과 로컬, 그리고 청년

대표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그중에서도 희곡을 쓰는 일은 그가 특별한 열정을 쏟는 일이다. 대표를 처음 만난 것도 그가 판소리극, ‘화용도였다. ‘화용도 판소리 열두 마당 하나인 적벽가를 개작한 것으로, 위나라 군사 다섯이 앞도 예상되지 않는 전쟁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갈등하는 상황을 담은 것이다. 작품은 현대적 감성과 전통적 요소를 절묘하게 엮었다는 평을 들으며, 2016 국립무형유산원 전통공연 연출가 발굴 공모에서 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이후로 그는 편의 음악극을 썼다. ‘여인, 1894’ 찾으러 왔단다 그것이다. ‘여인, 1894’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농민군으로 남편을 보낸 여인의 이야기를, ‘ 찾으러 왔단다에서는 아중 저수지 근처에 살던 소녀의 일상이 일제에 의해 무너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한옥마을과 전라감영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인전주 문화재 야행에도 작가로 참여했다.


그의 이런 작업은 전통과 현대를 어우르고자 하는 시도다. 그가 역사 콘텐츠에 주목하게 이유는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스스로가 역사를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경쟁력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작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콘텐츠의 문제지요. 서울에 있는 규모가 공연들과 비교해서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로컬리티를 담아 창작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런 작업은 모두내가 이곳에 있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지역 문화계에는 인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지키고 개발하기 위해 친구이자 연출가인 이왕수 감독과 함께 <문화예술공작소> 만들었다. 일할 있는 인재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우리부터 스스로 나서 무언가를 만들며 성장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의욕은 있었으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지역의 많은 청년 예술가들이 무대를 향해 서울로 가려는 의지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가져온 바탕은 열악한 재정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 경제적 기반이 부족한 청년들이 창작 활동을 하려면 재정적 여건이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청년 예술가들이 새로운 도전을 원하더라도 그것들에 대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표가 이러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나 다양한 축제 조직 위원회 관련 기관과 단체에 문제를 제기해 오고 있는 것도 때문이다.


지구에서 함께 살아남는

대표는 공익적인 일에도 관심이 많다. 디자인 회사 <크리티션> 그렇게 만들어졌다. <크리티션> 그가 전라북도의 안전, 환경, 도시재생, 사회혁신과 같은 사회적 의제를 디자인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는양심의 이란 제목으로 벌인 캠페인이다. ‘양심의 캠페인 쓰레기 밀집 지역에 태양열로 자가 충전되는 전등을 달아 저녁이 되면양심의 작동 이란 문구와 함께 켜지도록 하는 장치다. 그는 전등이 진짜 CCTV 아니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편으로 신경을 쓰게 되고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를 줄일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기획한 캠페인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이러한 사회적 의제에 관심을 가지게 결정적인 계기는 전주시 슬로시티 과와 협업한 경험이다. 슬로시티 과를 신설하면서 직원들을 교육할 교안이 필요했던 전주시가 문화재 야행에 참여했던 대표에게 교안 작업을 맡긴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환경을 지키는 일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떠올린 것이 예술과의 융합이었다. 대표는 예술이란인간이 사는지 대한 대답인 만큼, 예술가들은 인류의 어젠다를 쉽게 풀어내어 일상 속의 여러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는 상황에 와있는환경문제를 꼽았다. 지금 이대로 무분별하게 소비하다 보면 2, 3 코로나 시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가 전주문화재단과 전북대학교가 함께 기획한예술로 green 전주 참여한 것도 때문이었다. ‘예술로 green 전주 지역 환경문제를 문화 예술적 시각으로 접근하여 진지한 담론을 이어가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다. 그는 지난 2 17일에 열린 포럼의 준비 과정에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정책적으로 예술인들에게 환경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그러나 이러한 수준은 너무 방대하고 그냥 형식적으로 자기가 만든 것에 붙여넣기 하는 수준밖에 됩니다.  정책 자체가 잘못된 아닌데 여기에 실질적인 뭔가가 더해져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무대 소품이나 의상이 친환경적인 소재면 좋겠고. 예술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도 환경적인 문제들이 개선되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진행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MZ 세대의 , ‘N 잡러


다양한 직종에서 여러 역할을 맡고 있는 대표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N잡러이다. N잡러란 2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이라는 뜻의 접미사 ‘er’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다. 다시 말하면생계유지를 위한 본업 외에도 개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이러한 열정의 이면에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이 있다. 대학원을 진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부에선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소설과 시를 창작하는 영역을 배웠으니 다른 분야에서 조금 전문적인 글을 보고 싶었고, 자신이 가장 부족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경제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N잡러의 삶이란 쉽지 않았다. 어딘가에 소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해야 했으며,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그는 이렇게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불안해질 때면, 오히려 남들보다 규칙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스스로 약속한 시각을 엄수하는 습관은 10년간의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얻은 것이었다.


그에게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죽는 날까지 매일 글을 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직함으로작가 꼽는다. <문화예술공작소>에서도 <크리티션>에서도 그의 직함은 모두 작가였다. 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이 최후의 순간까지도 침을 들고 죽는 장면을 보며, 자신도 그렇게 살다 가겠다고 다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아니냐고 하지만, 저는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쓰는 일이 매개가 돼서 다른 것들과 융복합을 하는 형태라고 생각해 주시면 같습니다. 저는 작가가 가장 마음에 들고 평생 작가라는 직함을 가지고 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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