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유다꽃과 부활절
이백만 전 주교황청 한국 대사, 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세상에 ‘유다’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은전 30냥에 스승을 팔아넘긴 예수님의 제자 ‘유다 이스카리옷’ 말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천하의 배신자, 유다’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 이천 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받았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저주를 받을 사람!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나머지 나무에 목을 매고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성경(마태복음)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유다는 그 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마태 27,5) 유다가 ‘셀프 교수형’을 치른 나무를 유다나무라 하고, 그 나무에서 피는 꽃을 유다꽃이라 합니다.
유다화는 4월에 만발합니다.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고 돌아가신 4월에 말입니다. 가톨릭은 예수님의 수난을 기리기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40일을 사순시기로 정하고 육식을 하지 않는 등 경건하게 보냅니다. 이 거룩한 사순시기에 유다꽃이 만발하다니!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합니다. 더구나 바티칸으로 들어가는 초입 리조르지멘토 광장과 바티칸으로 가는 큰 도로(콜라 디 리엔조)에 유다꽃이 장관을 이룹니다. 자홍색 빛깔의 유다꽃은 한국의 벚꽃이나 복사꽃과 비슷합니다.
순례자들은 사순시기 유다꽃을 보고 깊은 묵상에 빠집니다. 유다, 이 자는 왜 죽을 때 꽃을 택했을까. 조용히 사라질 일이지! 저를 의아하게 하는 것은 유다의 심리상태입니다. ‘셀프 교수형’을 당하는 주제에 화려한 꽃을 머리에 이고 저승길을 갔으니, 그의 심리상태가 괴이하지 않습니까.
“너, 참 예쁘구나! 그런데…, 왜 이 거룩한 사순시기, 하필이면 바티칸 앞에 서 있나?”
사순시기 바티칸에 일을 보러 가다가, 광장의 유다꽃을 보고 있노라면 섬뜩한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화려한 유다꽃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유다의 몸체가 눈앞에 어른거린 것 아닌가! 유다 머리 위의 유다꽃과 그 밑에 매달려 있는 유다의 검은 시신이 끔찍한 대조를 이루며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천당과 지옥이었고, 천사와 악마였으며, 믿음과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고 죽었는데, 유다는 화관을 쓰고 죽다니! 유다꽃 화관과 ‘셀프 교수형’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부활! 예수님을 수난하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주재로 집행되는 부활절 의식은 가톨릭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됩니다(2022년 부활절은 4월 17일). 부활절 이브(성야)의 베드로 대성당, 죽음의 침묵을 깨며 부활의 빛이 입장합니다. 교황이 앞장서고, 사제단이 뒤따릅니다. 한 부제가 라틴어로 “루멘 크리스티(그리스도의 빛)”라고 노래하면, 성당을 가득 메운 회중도 라틴어로 “데오 그라티아스(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합니다. 대성당의 은은한 공명이 세상을 깨웁니다. 교황청의 외교사절은 성 금요일(예수님 수난) 미사와 성 토요일(예수님 부활)의 성야 미사에 부부 동반으로 초대받습니다. 금요일 미사와 토요일의 성야 미사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드레스 코드에서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금요일 미사의 초대장에는 ‘without decorations(치장하지 말고)’, 토요일 초대장에는 ‘with decorations(치장하고)’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금요일은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신 수난일이어서 가장 슬픈 날입니다. ‘without decorations’는 검은색 계통의 정장을 입되 훈장이나 장식물은 일체 달고 오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심지어 대사들이 타고 가는 승용차에도 국기를 달아서는 안 됩니다. 쉽게 말해 초상집에 문상 가는 의전입니다. 반면 토요일의 성야는 주님의 부활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with decorations’는 정장에 훈장과 장식물을 맘껏 달고 오라는 의미입니다. 잔칫집 의전이지요. 원색의 전통 복장과 모자로 한껏 멋을 내고 참례하는 아프리카 대사 부부들이 단연 눈길을 끕니다. 위엄 있는 의전용 복장에 긴 칼을 차고 오는 대사도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파스카 성야는 모든 성야의 어머니다”고 말했습니다. 성탄 성야 미사보다도 더 거룩합니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되살아났으니 기쁨이 더 할 수밖에! 미사가 끝나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이탈리아어로 ‘부오나 빠스꾸아(Buona Pasqua), 영어로 ‘해피 이스터(Happy Easter)’라고 말하며 기쁨의 볼 키스나 악수를 합니다. ‘부활을 축하한다’는 인사입니다.
저는 사순시기 바티칸 어귀에 핀 유다꽃을 보며 엉뚱한 묵상을 해봤습니다. “유다꽃 밑의 유다를 봐라!” 유다도 사람이었고 열두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마적 형질은 가려져 있었습니다. 세상사 그렇습니다. 악마적 형질은 청산유수 같은 언변 속에, 화려한 의복 속에, 깔끔한 외모 속에, 자비로운 선행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복기의 코로나19처럼! 예수님이 유다의 정체를 모르고 열두 제자에 넣었을까요. 절대 그럴 리가 없지요.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이 유다를 비난하지만, 너희 모두에게 ‘유다의 형질’이 내재되어 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 안에 있을 유다의 형질은 어느 정도 될까. 그것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순시기 유다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화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