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일 카다레, 「부서진 사월」
글 이휘현 KBS전주 PD
하얀 눈이 뒤덮인 고원지대에 한 발의 총성이 울린다. 맥없이 고꾸라지는 한 남자.
마지막으로 내뱉는 숨과 함께 그가 품었음직한 앞날의 모든 가능성들, 즉 꿈, 열정, 사랑 등이 순식간에 증발한다. 알바니아의 어느 스산한 고원지대. 순백의 땅 위에 흩뿌려진 검붉은 피의 이미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거행된 하나의 살인과 함께 소설 <부서진 사월>은 시작한다.
총을 쏜 사람은 고원지대에 사는 청년 ‘그조르그’. 창백한 인상을 가진 이 미소년의 영혼은 3월 대지에 흩날리는 새하얀 눈만큼이나 맑고 순수하다. 하지만 잔혹한 운명의 먹구름은 그를 ‘살인자’ 신세로 내몰았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랜 시간 되풀이되어 온 원수 집안과의 ‘피의 복수’가 그의 차례를 선고했을 뿐.
그조르그가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알바니아 고원지대에는 ‘카눈(Canun)’이라는 이름의 관습법이 존재하고 있다. 이 카눈에 따르자면, 원수 집안 간 살인은 정의와 명예의 이름으로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그 무엇이다. 이쪽 집안 남자가 저쪽 집안 남자를 살해하면 이번에는 저쪽 집안 남자가 이쪽 집안 남자를 살해할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그조르그 집안은 지난 70년 간 원수 가문과 카눈에 따른 피의 복수를 실행해 왔고, 이를 통해 양쪽 집안에 생겨난 무덤만 40기가 넘었다.
하지만 이 잔혹한 피의 순환은 어이없는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아주 오래전 그조르그 집안에 낯 모르는 손님이 찾아와 하룻밤 잠을 청하는 일이 있었다. 관습법인 카눈은 손님을 신성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이유 불문, 그를 극진히 대접해야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손님이 집 앞에서 누군가의 총탄에 쓰러진 것이다. 카눈은 손님이 살해당할 경우 손님을 대접했던 가문이 그를 대신해 복수를 감행해야 한다고 또한 규정하고 있다. 그렇게 그조르그의 조상들은 손님을 쏜 가문 사람들과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 세월이 어느새 70년의 세월을 맞이한 것이다.
긴 시간 오고 간 피의 연대기는 얼마 전 형이 총탄에 쓰러지자 동생인 그조르그에게도 할당되었다. 그는 이 덧없는 피의 무한반복을 벗어나고 싶지만 별다른 해법이 없다. 집안 2층에 널어놓은 형의 피 묻은 셔츠는 점점 색이 바래가고 있는데, 그럴수록 아버지의 엄한 눈빛은 복수를 종용한다. 카눈은 곧 법이고 정의고 명예이니까. 그조르그는 결국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처지.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피의 복수를 감행해야 했던 것이다.
그조르그가 총을 겨눈 그 젊은이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그조르그도 죄가 없다. 하지만 관습이라는 총탄이 여지없이 한 젊은이의 육신을 꿰뚫는다. 그리고 그조르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피의 복수가 완성되었음을 공표한다. 죽은 젊은이의 집안에서 곡소리가 들리고 ‘살인자 그조르그’는 원수 가문의 초상집에 손님 자격으로 초대되어 대접을 받는다. 이 또한 카눈이 정한 규율. 깊은 슬픔의 무게에 짓눌린 망자의 집안에서 그조르그는 묵묵히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리고 피의 복수를 감행한 자에게 주어지는 한 달의 유예기간.
그 사이 겨울은 지나고 봄이 올 것이다. 대지는 새로 태어날 생명의 온기로 꿈틀댈 것이고, 새싹은 수줍은 미소를 내밀며 또한 꽃은 봉우리를 터뜨릴 것이다. 하지만 4월이 오면, 그조르그는 끝 모를 어둠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되어있다. ‘부서진 4월’이 그렇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1960년대부터 문학을 통해 유럽의 변방 알바니아를 세상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기억시키는 작가로 활동해 왔다. 수십 년 전부터 매해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80대 중반의 나이가 된 현재까지(그는 1936년생이다) 만년 후보에만 머물고 있다. 하나 그의 문학이 지닌 무게가 여느 노벨문학상 수상자 못지않게 묵직하다는 걸 그 누가 부정할 것인가.
오랜 세월, 격랑의 역사를 부유해 온 조국 알바니아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통곡을 그는 다양한 문학적 방식을 통해 전 세계에 전달해 왔다. 때로 그것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신화를 원용해 2차 세계 대전 당시 알바니아가 겪었던 참화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거나(<죽은 군대의 장군>), 순수한 동심의 시선으로 그리는 전쟁에 관한 잔혹동화이기도 했고(<돌로 새긴 연대기>), 수십 년간 폐쇄적인 공산주의 독재로 자유와 인권을 말살했던 지도자 엔베르 호자와 그의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를 조지 오웰의 <1984> 같은 디스토피아로 묘사하기도 했다(<꿈의 궁전>).
이스마일 카다레의 문학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순수한 영혼을 짓밟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있는데(전쟁, 독재정치 등등), <부서진 사월>에서 그가 겨누고 있는 건 알바니아 고원지대의 공동체를 오랜 시간 지배해 온 그 불합리한 관습법인 것이다.
척박한 땅에서 살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둘 만들어졌을 관행들은 ‘카눈’이라는 관습법으로 화석화되면서 공동체의 분쟁을 해결하는 합리적인 도구이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대신 고원지대 주민들의 삶을 억압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 폭력의 실체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아니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러한 비상식적인 관습법을 등에 업고 이권을 누린다.
신혼여행지로 알바니아 고원지대를 택한 베시안과 디안 부부는 이런 불합리한 카눈을 ‘근대인(도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관찰자 역할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전근대적 관습들에 혀를 내두르지만, 그들은 이 단단한 카눈의 성채를 부술만한 어떠한 힘도 갖고 있지 못하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 디안이 그조르그와 스치듯 지나며 그의 청춘에 일순 온기를 불어넣지만, 그게 덧없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조르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곧 그를 겨누게 될 총탄 한 방에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날 청춘의 새싹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조르그의 마음에 애틋함이 커갈수록 절망은 깊어간다.
그 사이 3월은 지나고 4월이 왔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것이다. 어느 나른한 봄날 고원지대에 총성이 울린다. 연둣빛 대지 위에 그조르그는 쓰러진다. 카눈이 아니었다면 그는 디안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가족을 꾸리고 또 아이들을 기르면서 그렇게 평범하고 행복하게 늙어갔을까. 점점 옅어가는 숨 사이로 쓰러진 하나의 젊음이 품었음직한 부질없는 미래가 빠져나간다.
한없이 서정적인 문체로 펼쳐내는 슬픈 운명의 진혼곡. 볕 나른한 어느 봄날 이스마일 카다레가 선사하는 미지의 나라 알바니아, 그 몽환적이고 낯선 공간에서 피어난 비극은 우리를 복잡한 감정으로 이끌 것이다. 그렇기에 <부서진 사월>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