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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5 | 연재 [보는영화 읽는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 | 어느 난민의 내밀한 고백록
김경태 영화평론가(2022-05-10 10:08:38)



어느 난민의 내밀한 고백록


김경태 영화평론가


요나스 포헤르 라스무센 감독의 <나의 집은 어디인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감독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으로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살고 있는 친구인아민 인터뷰한다. 아민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로서 현재 동성 연인과 함께 집을 알아보는 중이다. 그는 트라우마로 점철된 과거의 기억을 힘겹게 끄집어낸다. 그에게 난민으로서의 경험은 함부로 입에 올릴 없는 치부이다. 고백은 그저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위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따라서 신변 보호를 위해 본명 대신 아민이라는 가명을 쓰고 그에 대한 일부 정보는 사실과 다르다. 애니메이션 기법의 사용도 피치 못할 연유에 있다. 나아가 회상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묘사한 것은 어두운 기억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과거를 견딜만한 것으로 소환한다.


아민은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전인 1979 아프가니스탄이 소련에 의해 공산화되면서 공군이었던 아버지가 붙잡혀간다. , 1989년에는 아민을 포함한 가족들은 정부군과 무자헤딘 반군의 전쟁을 피해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탈출한다. 스웨덴에 살고 있던 첫째 형이 미리 와서 보금자리를 마련해 놓고서 가족들을 스웨덴으로 데려오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그사이 가족들은 비자가 만료되면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숨어 지내게 된다. 부패한 경찰의 돈을 노린 불시 단속은 그들의 삶을 고단하게 한다. 2명의 누나를 먼저 보낸 , 1995년에 그는 어머니와 둘째 형을 남겨둔 홀로 러시아를 벗어나 덴마크로 망명한다. , 여권을 폐기하고 가족들이 모두 살해됐다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년이 흐른 후에야 스웨덴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있었다. 



그러나 언제든지 본국으로 송환될 있다는 두려움은 아민을 따라다니며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더욱이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위축되고 괴로워했다. 이유만으로 가족에게 버림받을 있기 때문이다. 난민이자 동성애자라는 소외된 정체성의 교차는 어린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물론 동성애적 감정은 양가성을 띠었다. 영화는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친밀한 마주침의 순간들을 피난과 망명의 서사 곳곳에 삽입해 놓았다. 할리우드 액션배우 클로드 반담에서부터 함께 러시아를 탈출한 이름을 잊은 소년에 이르기까지, 기억들은 짧지만 강렬했기에 그가 이후의 팍팍한 삶을 버티는 힘이 되어줬다. 소년의 참혹한 난민 서사는 따뜻한 커밍아웃 서사와 뒤얽혀있다.


아민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가족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그래서 그는 개인적 욕심을 접어두고 성실하게 학업에 몰두했고 성공적인 학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신분을 위장해서 취득한 난민 지위가 박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전히 남아있어 가족 이야기를 주변에 쉽게 없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눈치를 보며 도망 다니는 삶에 익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신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안전한 장소에 있을 때조차 주위를 의식하며 경계하게 된다. 현재의 신체는 과거의 시간에 지배받고 있다. 그리하여 영화는 내밀한 고백록이자 오랜 트라우마의 치유 과정이기도 하다. 


아민이 과거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가족들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살고, 아버지의 생사는 아직도 없다. 다만, 다행히도 지금 곁에는 그를 지키고 돌봐줄 연인, 새로운 가족이 있다. 그들은 이사 집을 등진 정원에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다가 수풀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그들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찰나, 애니메이션은 실사로 전환된다.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고, 그의 삶은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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