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 「살아있는 갈대」
글 이휘현 KBS전주 PD
‘파친코’ 열풍이 불고 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서는 동명의 드라마가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소설은 국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모두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
뭐든 잘 팔린다는 건 좋은 일이다. 굴곡진 역사를 담고 있다지만, 한국인을 전면에 내세운 장대한 서사시가 전 세계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건 뿌듯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걸 ‘국뽕’이라 부른들 어떠랴. BTS에서 기생충 -윤여정- 오징어게임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요즘의 ‘K-열풍’은, “‘미제’와 ‘일제’라면 양잿물도 받아서 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통용될 만큼 ‘국산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나의 어린 시절 변방 의식을 일거에 날려준다. 적어도 내 자식들에게는 그런 찌질한 국제 감각을 물려주지 않아도 되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에 불고 있는 파친코 열풍은 이러한 국뽕 정서에서 상당한 자양분을 주입받고 있는 듯 보인다.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미국인들이 거대 자본을 기꺼이 투자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오스카 무대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한껏 고취시킨 윤여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데다가 한류 배우 이민호까지 합세했다니, 호기심이 가는 건 당연지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곧 원작소설로 옮겨 붙은 모양새다. 이민진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재미교포가 쓴 이 소설이 알고 보니 몇 년 전 미국 본토에서 베스트셀러로 큰 화제를 모았다지 않은가! 드라마를 통해 얻게 된 부가 정보는 한국 사람들의 국뽕 정서를 다시 한번 자극했고, 그 결과는 서점가에서의 파친코 열풍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 권짜리로 구성된 <파친코> 한국어 번역본은 꽤나 흡인력이 있다. 단단하게 직조된 교양소설이라기보다는 이야기가 물 흐르듯 호쾌하게 진행되는 대중소설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다만 한국 독자가 아닌 미국 독자를 대상으로 만들어낸 재미교포의 소설이다 보니 <토지>나 <혼불> 같은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의 맥은 짚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 고유의 역사와 그 안에 도저하게 흐르는 한민족의 정서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건 여느 한국산 소설로는 가질 수 없었던 이 작품만의 성취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소설이라는 그릇일지언정 한국 근현대사를 좀 더 많은 세계인들이 알고 공감한다는 건, 우리에게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는 여러 역사의 페이지들을 망각에서 기억의 공간으로 다시 소환해내는 좋은 변곡점이 되어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숨어있는 좋은 책 한 권을 추천하고자 한다.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중 어쩌면 가장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라고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그 무엇! 한국 근현대사를 정조준해 완성한 펄 벅의 장편소설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1963)가 바로 그것이다.
펄 벅(1892-1973)은 미국 태생이지만 선교사인 아버지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중국에서 자랐다. 중국에서 보낸 수십 년의 삶은 그녀가 지닌 문학적 재능과 묶이면서 <대지>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1931년에 발표한 이 소설로 펄 벅은 미국 여류작가로는 최초로 193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펄 벅은 이후에도 중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십 수권 발간했다. 그녀의 문학은 그렇게 중국대륙이라는 공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 그녀가 일흔의 나이에 가까워질 무렵 한반도를 찾았다. 1961년 가을의 일이다. 그 방문은 중국의 한 변방 국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펄 벅은 이 시절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그리고 2년에 걸친 노작가의 피와 땀은 하나의 장편소설로 결실을 얻었다.
1963년 큰 화제를 모으며 미국에서 발간된 <살아있는 갈대>는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울러 이 작품은 펄 벅의 후반기 대표작이라 일컬어질 만큼 미국 현지에서 후한 평가를 받았다. 우리가 파친코 열풍을 목도하기 전에 한 번쯤 기억해 봄직한 60년 전의 사건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왕조의 국운이 다해가던 1881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까지의 60여 년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4대에 걸친 안동 김씨 가문의 부계 혈통이 이야기의 뼈대를 형성하고 있는데(아버지(1대)-김일한(2대)-김연춘,김연환(3대)-김양,김사샤(4대)), 그 안에는 임오군란, 명성황후 시해사건, 3.1운동, 일제의 기독교 탄압, 항일무장투쟁, 일본의 항복 그리고 점령군으로 도착한 미군의 모습 등 한국 근현대사의 극적인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 굵직한 사건들 속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린 안동 김씨 가문의 인물들은 각자가 나름의 역사적 상징성을 보여준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그 특유의 생명력으로 버티고 선 주인공 김일한(2대)은 오랜 시간 조선 정신의 근간이었던 유교질서를 존중하면서도 신학문으로서의 서양문물에 적극적인 반면, 그의 아버지(1대)는 완고한 선비의 모습을 고집한다. 그 모습은 명성황후와 교류하는 김일한과 흥선대원군을 지지하는 아버지의 정치 노선을 통해 극적으로 대비된다.
반면 김일한의 두 아들(3대)인 연춘과 연환은 이미 생명이 끝난 조선왕조에는 관심이 없다. 청년이 된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었지만 형제의 각기 다른 성정만큼이나 택하는 길도 서로 달랐다. 중국을 주요무대로 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는 큰아들 연춘과 한반도 내에서 기독교 박애주의를 바탕으로 비폭력 독립 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둘째 아들 연환은 그렇게 각자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시대는 녹록찮다. 둘째 연환은 일제의 기독교 탄압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가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다행히 어린 아들 양(4대)은 아버지 김일한에게 맡겨 살릴 수 있었다. 무장투쟁전선에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월을 보낸 첫째 연춘은 러시아에서 얻은 아들 사샤(4대)와 함께 귀향한다. 그 사이 둘째 연환의 아들 양은 훌륭한 의사로 성장해 있었다.
곧 조국 광복의 소식이 안동 김씨 가문에도 들려온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인천항에 도착하는 미군을 맞이하러 간 자리에서 그들은 또 하나의 진실을 목도한다. 해방군으로 온 줄 알았던 미군이 점령군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직 철수하지 않은 일본 경찰과 공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그들을 환영하러 갔던 조선사람 수십 명이 현장에서 일본 경찰의 총탄에 쓰러진다. 이에 분노한 연춘이 태극기를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가 사살된다. 평생을 조국 독립에 바친 연춘의 생은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나고 만다.
미국의 행태에 크게 실망한 연춘의 아들 사샤는 아버지와 민족의 복수를 다짐하며 북으로 향한다. 반면 사샤의 사촌인 양은 서울에 남는다. 그는 평소 하던 대로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의사로서의 삶을 성실히 지켜낼 것이다. 그렇게 두 사촌 형제가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면서 긴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총 7백 페이지에 달하는 이 번역본은 세계적인 작가 펄 벅이 당시 세계의 변방에 속했던 자그마한 나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구한말에서 8.15 광복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한반도 생활 풍습과 정신세계를 외국인이 썼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정확하고 또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주인공 김일한의 아버지 장례식을 묘사한 장면에서는 한국의 웬만한 민속학 자료로 써도 될 만큼 탄탄한 고증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녀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노고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는 왜 펄 벅 여사의 한국에 대한 이런 깊은 애정을 이토록 철저하게 모르고 살았던 걸까.
이 책과 관련하여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번역자다. 이 짧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번역한 이는 두 사람으로, 해방 후 한국 영문학계 1세대의 거두라 할 수 있는 장왕록 그리고 그의 딸이자 우리에겐 유명 에세이스트로 더 알려진 영문학자 장영희가 그들이다.
살아생전 한국에 수많은 영문소설을 번역 소개한 장왕록은 일찍이 미국에서 <살아있는 갈대>가 출간되자마자 한국에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좋은 번역으로 이 작품을 한국 사람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아주 긴 시간 공을 들였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원했던 바를 다 이루지 못하자 그의 딸인 장영희 교수가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번역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두 부녀의 노력은 펄 벅이 세상을 떠난 지도 한참 지난 2005년에 와서야 완벽한 결실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의 독자들은 무관심했다. 책은 잘 팔리지 않았고 중간에 한 번 개정판이 나오기는 했으나 결국 절판되고 말았다. 그 사이 장영희 교수도 긴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펄 벅의 <살아있는 갈대> 한국어 번역본은 이제 시중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온라인 중고서점에 몇 권 떠돌고 있을 뿐이다. 수요보다 공급이 현저히 딸려 품귀현상을 겪고 있는 <파친코>를 둘러싼 풍경과는 대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뽕이 없던 시절, 그 누구보다도 한국에 대한 속 깊은 애정으로 써 내려간 세계적인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 열풍이 있기 한참 전부터 이런 좋은 책이 우리 곁에 있었음을 이제 한국의 독자들이 한 번쯤 기억해줘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