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를 허물고 영화로 하나 되는 축제
글 신동하 인턴
세병공원의 철쭉들 사이, 전북대학교 정문 앞 정류장, 객사와 한옥마을의 전봇대... 전주의 곳곳에는 붉은 영사기의 빛을 상징하는 패브릭 포스터가 펄럭이고, 여행객들은 가방에 기쁨과 설렘을 잔뜩 지고 전주를 누빈다. 평소보다 밝고 활기찬 지금, 전주는 '전주국제영화제'가 한창이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4월 8일에 네이버 쇼핑라이브를 통해 판매된 온라인 상영회의 모바일 예매권은 3분 만에 매진이 되었고, 13일과 15일에 오픈된 예매는 오픈되자마자 매진 행렬을 이루기도 했다.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모든 조치가 해제되고 개최되는 첫 대형 행사인 만큼 ‘티켓팅 전쟁’을 방불케 했다. 전주국제영화제도 이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퀄리티 높은 영화를 엄선하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는 등 준비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 각국에서 전해진 다채로운 이야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은 전 세계 신진 감독들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 영화를 엄선해 선정하는 섹션이다. 공모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1월 10일까지 진행되었으며, 75개국 91편이 접수되었다. 그중 10편이 선정되었다.
선정작은 다채로운 장르와 주제로 꾸려졌다. ‘고독의 지리학’과 ‘스파이의 침묵’ 그리고 ‘도쿄의 쿠드르족’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고독의 지리학’은 대서양 연안에 있는 세이블섬에서 거주하면서 자연을 탐구해온 학자 조이 루커스의 일상을 담았다. ‘스파이의 침묵’은 과테말라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민주화를 위해 독재 정부에 잠입한 저널리스트의 삶을 쫓는다.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도 눈에 띄었다. ‘청춘을 위한 앨범’과 ‘메두사’는 남미 여성 감독의 작품으로 각각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두 친구의 성장기와 여성에 관한 시의적절한 주제를 필름에 담았다. ‘아슬란을 찾아서’는 노르웨이의 한적한 소도시의 여성 기자를 중심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체감하고 있는 국제 난민 문제를 다룬다.
한편, ‘알레프’는 아르헨티나 작가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5대륙 10개국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생활하고, 사색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생각, 아이디어, 경험을 담은 실험적인 작품이다.
전진수 프로그래머는 “국제경쟁 부문은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출품되는 만큼 출품작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경향을 말씀드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6편의 여성 감독 작품이 선정되는 등 지난해에 이어 여성 감독의 약진이 계속됐다. 앞으로도 여성 감독들의 뛰어난 작품이 더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코리안시네마
가족영화와 관객에게 익숙한 배우들의 출연작이 다수 배치됐다. 심미희 감독의 ‘그대라는 기억’과 이창열 감독의 ‘그대 어이가리’는 모두 치매인 아내를 돌보는 남편의 이야기를 통해 노부부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를 그렸다. 혈연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점차 가족이 되는 ‘유사 가족’을 다루는 영화들도 잇따랐다. 이순성 감독의 ‘룸 쉐어링’과 차봉주 감독의 ‘안녕하세요’가 대표적이다. ‘룸 쉐어링’은 적은 돈을 받고 대학생에게 방을 주는 ‘룸 쉐어링’프로그램을 통해 벌어지는 일을 풀어낸다. ‘안녕하세요’는 이순재, 김환희 등 유명 배우들이 출동하여 기댈 곳 없이 보육원에서 자란 수미의 시선으로 최선을 다해 삶을 꾸려가는 환자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린 감독들의 신작도 있었다. 2019년부터 매년 전주를 찾았던 최창환 감독은 신작 ‘여섯 개의 밤’을 발표했다. ‘여섯 개의 밤’은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서 출발했지만 엔진 고장으로 부산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 세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우연한 계기가 빚어내는 삶의 균열과 봉합을 이야기한다. 2015년 ‘그저 그런 여배우와 단신 대머리남의 연애’로 한국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2018년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선보인 박순리 감독도 ‘섬망’으로 돌아왔다. ‘섬망’은 고독한 삶을 살아가다 끝을 맞이하는 여성을 실험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오마주: 신수원, 그리고 한국여성감독’이라는 제목으로 소규모 특별전이 기획되기도 했다. 신수원 감독의 최신작 ‘오마주’를 중심으로 한국 여성 감독의 삶을 이야기하는 섹션이다. ‘오마주’ 외에도 신수원 감독의 데뷔작 ‘레인보우’, 신수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여자만세’, 한국 최초 여성 판사 이야기를 다룬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가 상영된다.
전주 시민을 위한 축제
전주 시민들을 위한 다채로운 이벤트들이 준비되었다. 4월 27일 수요일에는 ‘나래코리아 콘서트’가 열린다. 전주돔에서 120분간 진행되는 ‘나래코리아 콘서트’에는 김민지, 류정필, 무슈고, 김범룡, 신정혜 등 정상의 가수와 서울유니스챔버 오케스트라가 참여하여 전제 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을 축하했다.
4월 30일과 5월 1일 그리고 5월 5일에는 전주 시민을 대상으로 특별 무료 상영회가 준비되었다. 상영작은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리틀 포레스트(2018)’, 이정곤 감독의 ‘낫아웃(2021), 홍성은 감독의 ’혼자 사는 사람들(2021)‘. 이성강 감독의 애니메이션 ’카이: 거울 호수의 전설(2016)‘과 ’마리이야기(2001)‘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하여 상영된다.
5월 5일과 6일에는 음악 페스티벌 ‘Have A Nice Day X 전주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영화제를 즐기러 온 관객들이 음악으로도 힐링할 수 있도록 민트페이퍼와 손을 잡은 것이다. 민트 페이퍼는 그동안 ‘그랜드민트페스티벌’, ‘뷰티풀민트라이프’등 굵직한 대형 페스티벌을 개최해 온 만큼 탄탄한 구성을 통해 영화와 음악이라는 장르적 크로스오버를 이루어냈다.
한편, 영화제의 심볼로서 개/폐막식은 물론 다양한 부대행사들이 진행되었던 전주돔은 올해가 마지막이고, 그 빈자리는 ‘전주독립영화의집’이 채운다. ‘전주독립영화의집’은 독립영화의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추진되었으며, ‘영화 표현의 해방구’인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전주만의 색채를 반영하여 2024년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국제영화제 20년 숙원인 전주 독립영화의집이 건립되면 전주가 세계 독립영화의 메카이자 영화영상산업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