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정부와 다같이 친환경 하고 싶다
글 정원 ‘전지적 지구시점’ 작가
쓰레기 대란이 발생한 시기를 전후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 후 지금까지 제로웨이스트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누군가 내게 그것이 쉽고 할 만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음먹으면 할 수 있고 이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일 뿐, 나는 적잖이 피로감을 느낀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번거로움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기업과 정부보다 시민들이 훨씬 더 환경을 걱정하고 애를 쓰는 것일까, 싶어 답답하고 화가 나서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제로웨이스트 실천이 구조적으로 쉬워지는 세상이다. 손품과 발품을 팔고, 미리 거절하고, 거절이 잘 받아들여졌는지 또 한 번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원하는데, 기다림이 길어지니 요즘은 지친다.
친환경이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지속가능성에 관심이 모이고 기업이 방향성을 갖는 것은 좋지만, 지속가능성이 왜 대두되었는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 없이 유행을 따라가는 듯한 기업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제로웨이스트를 테마로 이벤트를 하면서 ‘새로운 쓰레기’를 출시하는 경우다. 집에 장바구니, 텀블러, 머그잔 하나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다. 굿즈 없다고 제로웨이스트를 못하지 않는다. 제품은 재활용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지구의 날 사은품으로는 에코백을 준다. 제품을 소비하게 만들기 위한 유인책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드는 포장지로 환경을 쓰고 버리는 기업이 못마땅해 보이는 이유다. 이렇게 흔적을 남기는 행사가 아니라 흔적을 남기지 않는 행사를 한다면 나는 박수를 쳐주며 공감할 것이다. 이를테면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행사에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 용기를 대여해 쓰레기 없이 진행한다면 말이다. 평소 기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숲을 덜 훼손하려고 꾸준히 노력하는 기업은 감동을 준다. 일회성은 쉽지만 꾸준한 노력은 진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후자와 같은 기업을 지지한다. 이런 기업이 많아진다면 그냥 버릴 수도 있는 종이 귀퉁이를 메모지로 쓰면서도 내 노력에 회의감이 들지 않을 것이다.
제로웨이스트라는 말이 요즘 자주 이야기된다. 그런데 그것을 권장하는 주체가 누군지에 따라 때론 달갑게 들리지 않는다. 언제까지 시민들이 제로웨이스트를 ‘신경 써 가며’ 하길 바라는가? 정책을 바꿀 힘을 가진 정부는 제로웨이스트를 권장할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사용을 원천적으로 규제하고 환경 부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개선해야 맞다. 불필요한 포장을 더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고,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을 여전히 두루 허용하면서 제로웨이스트를 권장한다? 안일하고 무책임하다. 내가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제로웨이스트 실천방법을 퍼뜨리고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애쓰지 않아도 되게끔 도와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쓰레기를 안 만들거나 적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며 제로웨이스트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왔고, 나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원고를 쓰면서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책을 다 썼을 무렵 플라스틱 쓰레기도 문제지만 기후 위기를 막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 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개인들이 플라스틱을 덜 쓰고 전기를 아껴서 막을 수 있는 규모의 재난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가가 에너지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 변화를 만들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세계 각국이 ‘탈 석탄’에 동참하는 와중에 작년 국내의 석탄 화력 설비는 오히려 증가했다. 발전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해가며 만든 전기, 그리고 애초에 재생 가능 에너지로 만든 깨끗한 전기. 둘 중 어느 쪽을 아껴야 탄소중립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는 더러운 전기 말고 깨끗한 전기를 아껴 더 효율적인 절약을 하고 싶다.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때 언론에서는 해외 섬나라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우리나라의 현실도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한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도로나 시설물이 무너지는 피해가 속출하고 해안침식이 진행 중이다. 우리 해안에서 침식이 관찰되는 지역은 250여 곳이며, 그 중 침식이 심각하다고 판정받은 지역이 강원도에는 26곳이나 있다. 2016년 동해안 해변에서 사라진 면적만 축구장 면적으로 100개가 넘는다. 포항 도구해수욕장은 한때 100미터에 달했던 백사장이 급격한 해안침식으로 이제 30미터도 채 남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저수지, 댐, 보와 같은 구조물은 강 상류에서 물줄기를 타고 함께 해안으로 내려가야 할 모래를 내려가지 못하게 막는다. 한 해 동안 건축이나 산업용으로 바다에서 채취해서 쓴 모래의 양은 서울시 전체를 덮을 수 있을 정도다. 해변에 쌓이는 모래는 적고, 파도에 쓸려나가고 외부로 채취되는 모래는 많다. 거기다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의 부피는 증가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해변이 예전 같지 않음을 체감하며 걱정한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앞으로 또 다른 팬데믹이 올 수 있다고 한다.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그 속에 잠자고 있던 생물 사체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시베리아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얼어 있던 순록이 드러났는데, 사체 속 탄저균이 되살아나 유목민이 20명 넘게 감염됐고, 순록 수백 마리가 폐사했으며, 12살 소년이 탄저병으로 숨졌다. 2020년 7월 시베리아 한 호수에선 고대 매머드 화석이 발견됐는데, 무려 만 년 전 사체지만 얼음 속에 파묻혀 있어 근육과 조직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전문가는 만일 고대의 신종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침투하면 그 정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바이러스가 퍼지면 속수무책일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런데 앞으로도 바이러스가 나타났을 때 방역에만 급급할 것인가? 정부가 코로나19에 막대한 인력과 비용을 들여 엄중히 대처하고, 올봄에 발생한 동해안 산불을 진화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것을 보면서 기후위기를 막는 데는 왜 그와 같은 자세로 대응하지 않을까 싶었다.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할 과학적 이유와 경제적 이유는 이미 데이터로 뒷받침되어 있다. 일을 되게 만드는 것이 능력이고 정부가 할 일인데, 조금만 장애물이 생기면 그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면서 퇴보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불안하다. 새 정부는 꾸겨져 버려진 원전이란 선택지를 다시 주워서 펼치려 한다. 올해 동해안 산불 당시 원자력발전소 가까이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며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던 것은 국민들뿐이었을까. 대형 산불이 또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이미 원전 밀집도도 높다. 이 와중에 원전에 의지하려는 안일함이라니. 국민인 나는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하나? 2050 탄소중립 이룰 수 있을까? 새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기존의 7%대에서 20~25%까지 늘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정도로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까? 독일과 영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40%가 넘는다. 관련 산업 전문가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참여 추세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사는 한국전력이 석탄 발전소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수천억 원어치나 되는 한전의 주식과 채권을 팔았다. 환경보다 경제를 앞세우는 논리에서 보더라도 탄소감축은 기업의 생존과 국가 경제를 위해서라도 이행해야 하는 과제다.
환경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는 개인의 노력은 언제나 아름답다.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하는 실천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기업과 정부의 큰 힘이 합해져야 한다. 기업과 정부가 함께 하고 있다는 데서 서로 에너지를 받으며 친환경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