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 이민 가족이 시골에서 농장을 만드는 이야기이며,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섯 개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배우 윤여정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한국과 일본, 미국을 오가며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 승리와 심판을 그린 드라마 ‘파친코’는 얼마 전 성황리에 시즌 1을 마쳤다.
이처럼 한국의 이민 가족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디아스포라’라는 세계적인 공통분모 때문일 것이다. 세계 속 다양한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을 읽고 그들의 삶과 역사를 되짚어 보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자.
바다를 안고 달에 잠들다
후카자와 우시오 저/김민정 역 | 아르띠잔 | 2021년 8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세 명의 재일조선인들을 주목한다. 이들은 해방 직후 좌우 갈등에 휘말려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이름을 바꾼 뒤 일본으로 밀항하고, 그곳에서 차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시 한번 일본어로 개명한다. 한반도가 일본에 남은 동포들의 존재를 잊은 것처럼, 자신들의 진짜 이름을 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면서 남한의 민주화를 적극 지지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바로 옆에서 보필하기도 한다. 책은 딸과 아들이 아버지의 일생을 알아가는 액자 소설 형태로 쓰여 재일 동포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을 돕는다.
떠도는 땅
김숨 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1937년, 고려인 17만 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한 사건을 다룬다. 고려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으로, 연해주에 정착하여 황무지였던 그곳의 땅을 개척했다. 자신들이 심은 작물이 자라나는 것처럼 자신들도 이곳에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희망은 소련 정부의 이주 명령으로 한순간에 빼앗기고 만다. 저자는 밀도 있는 대화로 가득 채워 넣어 고려인들의 비극적인 삶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인물들에게 입체성을 불어넣는다. 또한,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경계에 놓인 사람들의 떠도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저 | 창비 | 2020년 3월
사진결혼을 통해 하와이로 이주하게 된 조선 여성들의 삶을 그린다. 버들, 홍주, 송화는 고향에 있는 부모를 뒤로하고 신랑의 사진 한 장만 든 채로 하와이 이민선에 오른다. 세 친구는 용기 있게 태평양을 건넜지만, 하와이의 삶은 쉽지 않았다. 사탕수수밭 농장에서 노동하며 백인 관리자에게 학대당하고, 같은 이민 노동자이지만 식민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일본인들에게도 차별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민 여성들밖에 없다. 책은 낯선 땅에 뿌리 내려 사랑과 연대를 실천해 온 주인공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어 교과서에도 공들여 소개되지 않은 역사의 한구석을 담는다.
이반과 이바나의 경이롭고 슬픈 운명
마리즈 콩데 저/백선희 역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과들루프의 이민자 가정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 남매 이반과 이바나는 늘 함께했으나 이바나가 다른 청년과 사귀기 시작하고, 이반이 질투심에 그 청년을 살해하게 되며 둘의 사이는 균열이 간다. 이반의 출소 이후, 어머니의 뜻에 따라 아버지가 있는 말리에서 이반은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극단적인 테러에 가담한다. 그토록 원하던 프랑스에 도착한 쌍둥이들. 이바나는 경찰학교에 진학해 꿈을 펼쳐 가지만 이반은 도시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채 불법적인 일을 이어간다. 소설은 아프리카의 전통문화와 현시대의 문제들을 연관 지어 다루며 역동적인 서사를 직조한다.
루
킴 투이 저/윤진 역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책은 베트남 전쟁 시기 베트남을 떠나 말레이시아 난민 수용소를 거쳐 퀘벡에 정착하게 된 보트피플을 다룬다. 책은 주인공 안 띤이 나라가 베트남 시절의 집안 이야기부터 난민으로 캐나다에 자리 잡아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말하며 국가적 비극 속에서도 인류애와 연대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한 가족의 역사를 되새긴다. 과거 땅의 향수와 현재 땅의 소외 속에서 겪는 혼란을 담는 여타 이주 문학들과는 달리, 루의 주인공들은 두 조국 사이에서 오히려 이 슬픔을 벗어날 힘을 얻는다. 이들에게 ‘유전적 기억’과 ‘정서적 기억’은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서로를 보완한다.
유다
아모스 오즈 저/최창모 역 | 현대문학 | 2021년 3월
대학원을 그만둔 스물다섯 살 청년 슈 무엘 이 괴팍한 장애 노인 발디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임시 입주 일자리를 얻으며 생기는 이야기다. ‘유대인들의 눈에 비친 예수’를 석사 논문 주제로 삼으려 했던 슈무엘과 이스라엘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발디는 예수와 유다에 관한 해석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동족의 비난을 무릅쓰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노력했던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배신자인 ‘유다’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유대 국가 건립에 반대하고 아랍과의 공존을 주장했던 지식인 ‘아브라바넬’을 통해 기독교와 유대 민족의 역사 그리고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를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