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항 박형진 시인께
진정성에 대하여,
사는 삶이 불량한 저에게 ‘진정성’이란 어마무시한 말입니다. 그 진정한 ‘진정성’을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유해 발견 관련 뉴스에서 봤습니다. 진정성에 대하여 “유해에 대한 해부학적•고고학적 정밀감식 결과 윤지충 바오로, 권상연 야고보, 윤지헌 프란치스코의 유해다”며 “이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배척한다”는 교령 공포가 그랬습니다.
‘지역적 삶’이라 하고, ‘옹기’와 ‘옹기적’에서 옹기적인 일이라며 ‘농農의 가치화’라고도 하는 거의 마지막 일일 것 같은 일로 붙들어 온 일에 ‘진정성’을 증명하듯 해야 하는 일에 얼른 뒤로 물러섰습니다. 하지만 미련하게 미련이 남아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선거가 지나갔습니다. 읍내를 갔더니 고요해졌습니다. 물론 당선사례, 낙선사례, 축하, 위로 프랑이 있지만 말투가 잔잔하고 색감이 차분해졌습니다. 선거관련 활동들, 과장된 대형현수막 방송들이 없어져 상대적으로 고요하게 느껴졌습니다. 농촌에 사람이 없다 없다 해도 선거철만 되면 짠하고 나타나는 그 무수한 사람들, 선거가 끝나니까 또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저는 선거에서 투표보다도 카피를 재밌게 봐왔습니다. 더러는 그 판에 말을 보태기도 하였습니다. ‘말이 씨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말씨를 두고 싶었던 것인데 이제는 젊은 친구들이 해야 할 일이지 싶었습니다. 하여 사양하였는데 그 젊은 친구들을 도와 몇 마디를 보태게 되었습니다.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국가대통령 선출 선거 때 쓰여진 말을 주워다 쓰면 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쓰인 말, 국가차원에서 쓰인 말을 지역적으로 그대로 써도 별 무리가 없었습니다. 다만 ‘농민후보’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이 신선하다는 농촌에서의 아이러니. 그 말도 결국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국가대통령 선출 선거홍보물에서 말을 찾으며 말이 필요없다는 투의 말과 설득하듯 하는 말들을 봤습니다. 그러면서 말다운 말은 무엇일까, 이 말을 하는 사람의 말일까 듣는 사람의 말일까 생각했습니다. 위임권력을 얻고자하는 입후보자가 유일하게 고개를 숙이며 하는 선거판 사람들의 말들은 결국 하고픈 말보다 듣고픈 말일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듣는 사람들의 말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듣는 사람들의 수준이 그 말의 수준이라 선거판만을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말다운 말을 잃어가고 있구나 했습니다.
그저 막연하게 ‘이렇게 살아야겠다, 이곳에서 살아야겠다’고 하고 그 ‘지역적 삶’에서 지역을 대상화하지 않는 정도여야 할 지역활동과 지역주민으로서의 자격, 그 경계에서 나름 아슬아슬하게 살아왔습니다. 이게 지역에서는 지역 일에 소홀한 사람, 생업으로는 생업에 소홀한 사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진정성’을 물어온다면 저 자신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에 움찔하게 됩니다.
하여 말대답을 못하겠고,
일은 일로 답을 해야 하겠지요.
저는 요새 곤쟁이 젓독을 짓고 있습니다.
매겁시 크게 짓고 있습니다. 왜 그리 크게 짓느냐고 하는데
그냥 매겁시 크게 짓고 있습니다. 무의미하게 크게 짓고 있습니다.
다만 무의미의 의미라도 찾고픈 것일까요?
2022. 06. 17
옹기장이 이현배 드림
손내골 현배 선생님!
오늘은 호칭을 좀 다르게 해보았소. 보다시피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고 예전의 그것이 갑자기 낯설고 밋밋해 보였기 때문이라오. 호칭이란 게 별것이겠소만 저는 요즈음 잘못된 말들이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짜증이 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 것입니다. 제가 잘못된 말들이란 건 이런 것입니다. ‘○○○ 의원님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혹은 ‘△△△ 군수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문장이야 틀린 게 아니지만 이게 어디 옳은 내용입니까? 정작 있어야 할 당선사례들은 아예 없거나 꿈에 떡 얻어먹기로 어쩌다 하나인데 축하한다는 현수막은 거리마다 동네마다 빼곡히 들어차 춤추고 있군요.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입니다. 당선을 축하려려면 한가해진 틈에 조용히, 그것도 개인적으로 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무슨 단체 이름을 내세워서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젯밥에 더 관심 있는 자들의 마음이지 싶습니다. 당선사례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이제는 되고 말았으니 볼 장 다 보았다는 심보는 아닐런지요. 부디 정신 차리고 일 열심히 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나 일 잘못하면 절대 용서치 마십시오 라는 내용의 당선사례를 바란다는 것은 정말 난망한 일일까요?
편지의 머리에 이런 거친 내용을 써서 약간 미안하오만 이번 6.1 지방선거는 정말이지 실망스러운 게 너무 많아서 여간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저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선거 초기부터 이야기하자면 저 사는 이곳은 군의원이 무투표 당선이 되었어요. 공천신청자들이 전부 민주당인데다가 공천이 곧 당선인데 탈락자들은 탈당하고 무소속으로라도 나오겠다는 배짱이 없는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일당의 독재가 유권자들의 권리를 그만 도둑질한 것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북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저는 잘 모르겠으며 하여 여기서부터 저는 배알이 뒤틀린 것입니다. 이 망할 놈의 꼴을 대체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 되는지, 공천장사나 하고 자빠져있는 도당체제를 폭파시켜버리지 않으면 민주당은 민주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겠지요. 하긴 쥐나 개도 다 민주를 쓰는 마당이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욕지거리가 이 점잖은 입에서도 절로 절로 나와서 사실 제가 정치 이야기를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선거를 앞둔 때의 문자폭탄에 시달린 것은 또 어디다 화풀이를 해야 합니까? 하루가 아니 한 시간이 멀다하고 생판 모르는 정치인들로부터 오는 문자는 정말이지 열 받아서 견디다 견디다 결국 모조리 차단장치를 작동시키고야 말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았냐는 것입니다. 지역의 입지자들이야 열 번 양보해서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선거를 핑계로 버젓이 ‘나 범죄자요’하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닐런지요. 옛말에 이런 것이 있다오. 내 것 먹어도 이뿐 놈 있고 지 것 주어도 미운 놈 있다‘ 저는 이런 정치인 하나를 두고 있지 못한 불행한 유권자이오만 정책의 차별과 대결로 유권자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횟수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일이 당선이라고 보는 이 정치분들은 지금도 유권자들의 정치지향 구도를 그 옛날 80년대식의 민주 대 반민주로 규정하고 있는 후진족속이지 싶어요.
그래서 유권자가 된 이래 처음으로 투표하러 가지 않으려고 맘먹고 있었답니다. 제가 항상 안타깝게 생각하는 당은 시골이라 그런지 후보자 하나를 내지 못하고 있어서 더욱 그런 생각을 굳히고 있었는데 빌밋하게나마 그것을 아내에게 말했더니 서울에 있는 딸애들의 귀까지 울려서 어느 날 전화가 왔더라고요. 이런 문답이 오고갔습니다.
“아빠.”
“왜?”
“투표하러 가지 않는다며?”
“내 맘이다!”
“그래도 투표는 해야지 말야.”
“아니 거기는 교육감도 없고 비례정당투표도 없어?”
“엉?……”
이렇게 딸에게 뒤통수 한 방을 맞고서야 약간의 이성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투표장에 가기로 마음을 바꾸었지만 결코 유쾌한 나들이가 되긴 틀린 노릇이지요.
교육감 선거만 해도 그래요. 처음 교육자치를 시작해서 교육감을 뽑을 때부터 깜깜이 선거라는 오명을 스스로 뒤집어 쓰더니 지금도 그것은 벗겨지지 않은데 진보니 민주니 하면서 단일화한답시고 한바탕 북새를 놓은 데다가 나중에는 폭력시비•소송시비까지 불거졌습니다. 막대한 교육예산을 집행하는, 그리고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 후보들의 이전투구가 깡패집단과 다를 바 없는 정치권처럼 유권자들에게 혐오를 부추겨서 ‘이래도 투표장에 나올래? 이래도 나와?’ 하는 것과 똑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래도 뒤늦게나마 이들의 의도대로 끌려가지 않고 비록 불유쾌한 감정으로나마 투표장에 가긴 했습니다만 투표장에 가서 보니 정치권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정치거지(이 말은 일찍이 신동엽 시인이 금강에서 쓴 말이지 제 말은 아닙니다)들의 그 비굴한 상판대기들을 보며 또 한 번 유쾌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민주주의 잘하려면 누구 말마따나 정말 제비뽑기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 정도 열 내는 것으로 그만 마치고 덕분에 얻은 시나 한 편 보냅니다. 읽고 웃어보십시오. 그리고 이번에 나온 시집도 한 권 보냅니다. 화장실 같은 데 들고 가서 읽으시라고나 해야 할, 막상 묶고 나서 후회만 가득 남는 그런 시집이 되었습니다. 어제 친구의 양파작업을 돕는다고 가서 빡세게 일했더니 손에 힘이 들어가는지 힘이 풀렸는지 못쓰는 글씨가 그야말로 더 개판이 되었소. 이해해주오.
2022. 6. 18.
박형진 드림
*시집은 나중에 책정리 하실 때
맘 편하시라고 제 이름만 썼답니다.
투표소에서
재갈을 물리고 굴레를 씌워
수레를 끌게 할까
아니면
소태나무로다가 지게를 만들어 지우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할까
그도 아니면
대장간에서 무쇠 호미를 지어다가 손에 들려
오뉴월 땡볕에 콩밭을 매게 할까
평생 땀 한번 흘리지 않고
내 곳간을 훔치는 무리들
대낮에도 눈에 띄게 몰려다닌 걸로 보아
저들 세계에도 조폭이나 사기꾼
법법자와 추종자 그 수괴 놈이 있겠지
어두운 곳에서 속닥였던 걸로 보아
분명 음모나 계략도 꾸미고 있었으렷다
그래도 그중에 하나나 둘
정직하고 성실한 놈은 있을까
오늘 아침
쥐틀에 걸린 쥐 두 마리를 보면서 든 생각
왜 후딱 지워지지 않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