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성의 새 이야기
물꿩, 그리고 지구 온난화
김윤성 아마추어 탐조가•전북산업보건협회 전문의
물꿩은 인도와 미얀마를 비롯한 남아시아와 중국 동남부, 대만에서 주로 서식하며, 여름 철새처럼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해당 지역 내에서만 이동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거의 볼 수 없었던 새였습니다. 하지만 1993년 경남 주남 저수지에서 처음 길 잃은 새로 보고 된 이래, 충남 천수만, 제주도에서 띠엄띠엄 관찰기록이 있다가 2010년 이후 경남 우포 늪에는 서너 마리가 해마다 찾아와 번식까지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점차 여름 철새로 변해 가는 과정 중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꿩은 머리와 목 앞쪽이 순백색이며, 목 뒤는 황금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는 듯 한눈에도 이국적인 새입니다. 등은 짙은 갈색, 날개는 흰색, 몸 아랫면은 검은색이며, 긴 꼬리깃은 꿩의 것과 흡사합니다. 주로 저수지나 습지의 가시연꽃 잎 위에 생활하며 먹이는 물 속 곤충이나 벌레를 잡아 먹습니다.
물꿩의 번식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암컷 한마리가 서너 마리 수컷을 짝으로 두고 번식을 하는 일처다부 형식입니다. 암컷이 만들어 놓은 커다란 세력권 속에 수컷들이 각자 둥지를 갖추면, 암컷이 찾아와 교미를 하고 알을 낳은 후에는 다른 수컷 둥지로 갑니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는 것은 모두 수컷이 전적으로 담당합니다. 암컷은 자기 세력권에 천적이나 다른 암컷이 오는 것을 방어하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2020년 7월, 전북 혁신도시 기지제에도 물꿩 한 마리가 나타나 십 수일을 머물다 간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당당히 받으며 연꽃잎 위를 자유롭게 걸어다니고 저수지 중앙과 주변을 한가롭게 날며 우아한 자태를 뽐냈습니다. 혼자 찾아온 것이 안타까워 다음 해에는 짝을 데리고 오기를 바랬지만 물꿩이 있던 자리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나무 데크가 생겨서 그 기대를 접어야만 했습니다.
몇 안되는 물꿩의 생태 변화를 근거로 속단해서는 안되지만 원래 남아시아에서만 살던 새가 우리나라에 찾아와 번식하는 것을 보면 기후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는 변화에 맞추어 번식지를 이동하며 적응해 갈 수 있지만, 삶의 터전을 옮길 수 없는 인간들은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하는지 생각할 수록 마음은 무거워져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