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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 | 칼럼·시평 [문화칼럼]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고재열 여행 감독(2022-08-10 09:58:34)

문화칼럼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


고재열 여행 감독




타인은 나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점에서 동물에게서 자신을 본다면 더 진화된 인격이라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말하지 못하는 식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식물을 돌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인격 수양의 한 형식이라 볼 수 있다. 식물과 동물을 대할 때 발하는 섬세함이 그대로 타인을 대할 때도 발현되길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요즘 유행인 PC(Political Correctness)의 한 형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관용으로도 볼 수 있다. 자본주의 공식에 충실한 에버랜드 동물원(주토피아)과 동물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을 가졌던 서울대공원을 비교하면 이런 관점의 차이가 어떤 극명한 대비를 갖는지 볼 수 있다.  


주토피아는 한국서비스품질지수 테마파크 부문에서 20년 연속 1위를 기록했고, 한국산업고객만족도조사 종합레저시설 부문에서 20년 연속 1위를 한 곳이다. 아프리카처럼 사파리도 할 수 있고, 사파리를 하는 동안 곰이 재주를 부리는 것도 볼 수 있다. 백호와 백사자 같은 희귀 동물도 많으며, 각종 동물쇼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심지어 다른 동물원에서는 보기 힘든 조류가 출연하는 동물쇼도 있다. 동물에게 먹이 주기나 직접 만져보기, 동물에 타보기 따위의 체험 활동도 많다.     


반면 서울대공원은 동물원이 넓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동물쇼를 폐지한 뒤 생태설명회를 운영하며 먹이 주기 등의 체험 행사까지도 대부분 폐지시켰다. 그리고 서울대공원은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두 곳의 동물원 중에서 한 곳을 택하라면 어디를 택하겠는가? 대부분 주토피아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나라면 서울대공원을 선택하겠다. 이유는 이렇다.     


하나, 냄새가 더 나기 때문이다. 동물 분뇨 냄새가 안 나는 동물원은 사람에게는 좋지만 동물에게는 행복한 곳이 아니다. 쉽게 물청소를 할 수 있도록 동물우리 바닥을 콘크리트로 깔아버린 것인데 이것은 동물에게는 불행한 환경이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흙바닥을 만들어 풀과 나무를 심어주면 동물은 행복하지만 청소할 때 품이 많이 들고 분뇨 냄새도 많이 난다.  

   

둘, 동물을 보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에는 관람객의 시선을 방해하는 은폐물이 있다. 동물사가 넓어지고 동물이 숨을 은폐물이 많아지면 관람객은 동물을 관찰하기가 불편해진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중요한 생활 조건이다. 사람에게 많이 노출되면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완전한 은폐는 아니더라도 차폐물을 만들어주거나 은폐물을 설치해주면 동물은 숨었다고 착각해 안심한다.     


셋, 동물사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동물사가 크면 동물을 가까이 볼 수 없어 관객은 불편하다. 하지만 동물 처지에서는 동물사의 크기가 매우 중요하다. 야생에서 활동 반경이 큰 동물에게는 특히 그렇다. 서울대공원은 동물사들이 크고 서로 떨어져 있어 아이를 데리고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동물의 생활조건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넷, 동물원 사파리 코스가 없기 때문이다. 관람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파리 관람은 동물 복지의 최대 적으로 꼽힌다. 얼핏 보기에는 동물이 넓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물들 사이를 전자 철책으로 구분해 놓아서 활동 반경이 실제로는 매우 좁다. 또한 다른 종을 섞어 놓아 동물 간에 긴장을 조성하고 인간이 동물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동물 스트레스 지수를 높인다.     


다섯, 동물체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테마파크에서의 체험이 절대선이 되었다. 하지만 동물 체험은 입장을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주고 동물에 올라타는 것이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이 아니라 동물을 괴롭히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작은 동물일수록 체험이 위험하다.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동물에게 필요한 행위는 야생에서 하던 행위다. 서울대공원에서는 ‘동물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시설과 장치로 야생에서의 행위를 되살린다.     


여섯, 새끼동물을 가까이서 보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도 예전에는 관람객이 인공포육장에서 새끼를 보고 만지고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끼를 우리에서 어미 곁에서 자라게 한다. 사람에게 노출되면 새끼가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무리에 돌아와서도 사회화가 안 될 수 있다. 동물의 새끼는 어미 냄새가 나고 어미를 볼 수 있는 동물사 안에서 포육 해야 한다.     


일곱, 동물쇼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원에서 동물쇼를 할 때 연습은 주로 먹이를 활용해서 한다. 자극을 주고 반응을 하면 먹이로 보상하는 구조다. 연습할 동안에는 주로 굶기고 재우기 전에 남은 먹이를 준다. 큰 동물은 상관이 없는데 덩치가 작은 동물은 이런 인공 단식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동물 복지와 관련해서는 최대의 적이 바로 동물쇼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동물에게도 행복한 일은 아니다.  

   

여덟, 관람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 직원들은 동물을 설명할 때 그 동물의 특성이나 습성뿐 아니라 좁은 우리에 갇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동물의 이상행동도 함께 알려준다. ‘동물도 행복해야 하는데 지금은 행복하지 않은 상태’라는 걸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동물원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동물과 진정한 교감을 갖기 위해 알아야 할 내용이다.     


아홉, 동물원 동물을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은 멸종위기 동물을 동물원이 아니라 야생에 내보내는데 열심이다. 지금까지 서울대공원은 지리산에 반달가슴곰 14마리, 소백산에 여우 4마리, 시화호 인근에 삵 5마리를 방사했다. 단순히 방사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위치추적기를 통해 이후 야생에 잘 적응하는지도 꾸준히 확인한다. 또한 멸종 위기인 토종 생물의 종 보전을 위해 직접 서식지를 찾아가서 보호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열, 관람객보다 동물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동물원을 평가하는 기준은, 동물 복지에 얼마나 신경을 쓰느냐와 종 보전(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전시와 존속을 위한 조치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이다. 선진국 동물원들은 홈페이지에 ‘종 보전(Conservation)’ 카테고리를 두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서울대공원이 압도적이다. 사람의 기준으로 평가하면 에버랜드 동물원이 우월하지만, 동물의 기준으로 살 만한 곳은 서울대공원이라는 얘기다.     


관찰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성공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꽃보다 할배>를 꼽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 연출자인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으로 “촬영할 때 어르신들이 행복하면 된다. 어르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했다”라며 ‘어르신중심주의’를 꼽았다. 마찬가지로 동물원의 성공 요인으로 ‘동물이 행복하면 된다’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역으로 행복하지 않은 동물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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