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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19
박형진, 이현배(2022-08-10 10:54:22)

벗에게 시간을 묻다 ㅣ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19


손내골 현배 선생님!



장마 전선이 윗녘과 아랫녘을 핑퐁하듯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이 중간에 낀 우리 지방엔 비가 오지 않아서 먼지만 풀풀 날렸습니다. 하루종일 내리쬐는 햇빛도 햇빛이지만 바다에서 불어오는 소금기 먹은 습한 바람은 날마다 사람을 아주 이상하게 마르게 하더군요. 그러다가 몇 차례 생색내듯 찔끔찔끔 비가 오니 곡식은 둘째치고 풀만 오직 지세상 만난 듯 정신없이 자랍니다. 하여 요즈음은 다시 풀과의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그려.


그동안 어찌 지내셨습니까? 곤쟁이젓독 짓는 일은 잘 되어 가고 있나요? 저번 편지를 읽고 궁금한 게 있었는데 곤쟁이젓독이 따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본 젓독들은 아래가 좁고 위가 그보다는 조금 넓은 키 70cm나 됨직한 일자형 독이었어요. 조금 때면 앞장 불에 댄 배들에서 그 젓독을 푸는 게 일이었지요. 봄에는 고너리와 중하가 섞인 젓, 여름에는 새우젓, 그리고 가을에는 멸치젓이 대부분이고요. 곤쟁이젓을 우리 지역에선 고개미젓이라 했는데 본디는 곤정이젓이더군요. 남곤과 심정이라는 대신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지은 것인데 이들이 중종 연간에 사화를 일으켜 무고한 선비들을 많이 죽인 까닭에 뒷날 소인배라 일컬어지고 작다는 의미로 새우젓에까지 그 조롱하는 이름이 전해졌습니다.


과연 고개미젓을 담그는 새우는 작기가 말할 수 없습니다. 꼭 바늘귀만씩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다 큰 성체의 새우가 아니라 새우의 유생인데 어느 새우의 새끼냐를 두고 말이 많다가 이쪽 어부들이 김장철에 잡히는 굼벵이 새우의 새끼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생김과 색깔, 그리고 잡히는 시기를 종합해 볼 때 그렇다는 겁니다. 이것은 다른 물고기들과 분리하는 방법이 특이합니다. 워낙 작기 때문에 이게 좀 잡혔다 싶으면 얼멍얼멍한 그릇에 담고 바닷물 채운 통 속에서 체질을 하여 모으는 겁니다. 양이 결코 많을 리 없겠지요. 그저 좀 잡혔다 해야 한 두 다라이 정도인 이것은 그러므로 스스로 각별한 대접을 받을 줄을 압니다. 새우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지만 육젓이나 추젓용 새우는 소금과 섞는 비율이 새우 한 마리와 소금 알갱이 하나라는 말이 있는 반면 고개미 새우는 사뭇 다릅니다. 이것은 오직 슴슴하게 담가야만 그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라 가령 새우 한 바가지라면 소금은 한 홉 정도의, 담가서 바로 먹는다 하여도 간이 좀 간간하다 싶은 정도여야 합니다. 그렇게 담근, 아니 버무렸다고 해야 할 이것은 한 1주일이나 뒀다가 헤쳐보면 꼬옥 삭은 붉은 모습이 드러나며 화-한 박하향 같은 게 물큰하게 코끝에 감겨 옵니다. 침이 절로 돌지요. 양이 적게 잡히기 때문에 이리저리 나누고 나면 젓독까지 들이댈 것 없이 작은 꼬막 단지 같은 데나 담가 놓는데 이렇게 간 맞게 되었을 때 그것을 다근 주부나 먹는 식구들이 얼마나 달고 옹골졌겠습니까? 문 걸어 놓고 먹는다는 가을 상추 쌈 쌈장에는 제 알기로 이것만 한 것이 없다 여겨집니다. 두고 먹을 것은 좀 짜게 해서 겨울을 넘긴 다음 이듬해 초여름까지 가긴 합니다만 결국은 다 물이 되어버리고 짜므로 쓰기만 합니다. 일반 새우젓은 짜도 그 형체가 오롯하기 때문에 물 좀 섞고 통깨, 고춧가루, 마늘다짐 넣어서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먹으면 며칠은 별미인데 고개미 젓은 이렇게 다릅니다. 허나 지금은 냉장고가 있는 세상이라 한여름에도 지난가을에 담근 고개미 젓을 먹더이다.


곤쟁이젓독을 짓고 계신다는 말에 반가워서 그만 고려적 이야기를 늘어놨습니다. 장맛비가 내리다 말다 하는 요즈음엔 비가 오면 예초기 둘러매고 밭둑이나 집주변, 들어오는 길의 풀을 깎고 땅이 조금 고슬고슬해졌다 싶으면 고구마밭 깨밭의 풀을 매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사흘 내리 연속으로 하지 않는다는, 제 나름의 건강관리 농사법을 만들었는데 농사일이라는 게 말처럼 되지 않아서 밭에 쪼그려 앉아 풀매기를 벌써 여러 날 합니다그려. 그러다가 너무 힘이 들고 일어설 때 무릎에서 소리가 날 지경이면 “아줌마 궁댕이”란 이름이 붙은 것을 엉덩이에 붙이고 어기적거리는 앉은걸음을 하면서 밭을 매죠. 남자가 이걸 차고 있으면 웃음마저 나오는 바보스런 이것을 그래서 저는 여간해서 차지 않으려 하는데 무릎이 아픈 데는 도리가 없군요.


밭을 매다 말고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일이 아무리 지겹고 힘들어도 집 가까이서 이루어지는 일인 한은 천국과 다름없는 일이라고요. 제아무리 땀을 많이 흘리고 일을 해도 하루에 한두 번 냇가나 수돗가에 맘 놓고 퍼질러 앉아서 씻을 수 있는 것, 누군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몸을 누일 수 있는 것이 왜 천국이냐면 제가 걸어서 전국을 한 바퀴 돈답시고 배낭 메고 7월 염천에 길을 나섰을 때부터 겪어야 했던 그 극한 상황들 때문입니다. 저번에 제주도 갔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만 바로 얼마 전에 열 차례에 걸쳐 70여 일 동안의 장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다음엔 그 이야기를 조금만 하겠습니다. 그럼 더운 여름날 건강하게 보내소서. 벌써 초복이라는군요. 시 한 편 덧붙입니다.



2022. 7. 15 

박형진 드림



아이스크림을 사는 이유


아내가 하는 말 중에는

참 듣기 좋은 게 있디

피가 뜨거웠을 때야

사랑한다는 말이 물론이지만

지금은 엉뚱하게도

밖에 나가는 내 뒤 꼭지에다 대고

허리만 툭 잘라낸

쌀 팔아 와야겠는데? 가 그것이다

달포에 한번 정도나 듣는 말

나는 가볍게 대답하거나

뒤를 한번 돌아보는 정도지만

술 조금만 먹고 오란 삼켰을 말과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생각해봐라 그것은

쌀 한포대의 묵직함만큼이나 우리가

나름 열심으로 동안을 살아냈다는 말

앞으로도 다시 그만큼

열심히 살자는 말

그리하여 나는 그런 날은 많이 경건해져서

쌀 한 포대를 사는 중에 술 대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이다







모항 박형진 시인께



비가 왔다가, 해가 났다가,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바람과 함께 또 어디론가 서둘러 빠져나가는 묘한 날입니다. 


오늘 1990년생 둘째의 생일입니다. 더위를 잘 타는 아내가 산모로 수고가 많았더랬습니다. 그때는 직장생활을 할 때라 여름휴가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해에는 산모를 도와야했습니다. 그래 겨울휴가를 얻었고 그 여정이 옹기점에 닿아 옹기일을 붙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커 옹기일을 붙들었다는 것이 묘합니다. 


곤쟁이를 모르고 곤쟁이젓독을 먼저 알았습니다. 그것도 젓독으로 빚은 게 아니라 꽃병으로 빚어 ‘곤쟁이꽃병’이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꽃을 꽂기 좋은 크기로 정립되었습니다. 일종의 상품개발프로세스로 꽃집에서 파는 한 다발 단위의 꽃을 그냥 툭 꽂기 좋은 걸 중심에 두고 이쪽 저쪽으로 변주(파생상품)를 하였습니다. 


꽤 환영받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옹기가 태생적으로 꽃을 잘 받쳐주고 고유의 기능성으로 꽃이 오래 간다는 점들이 장점이 되었습니다. 다만 옹기가 본격적으로 골동화 되기 시작한 90년대 들어 초기에 다루어진 물건이기에 골동과 변별력을 가져야 했습니다. 이 곤쟁이 젓독은 입과 밑이 거의 일직선조형이기에 식기로는 양식기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소스볼, 숲볼, 샐러드볼, 찜기류가 있고 큰걸로는 함지, 쌀독, 찻독까지 다양화 시켰습니다.


박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입에 비해 밑이 좁은 것을 저희는 새우젓독이라고 합니다.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새우젓독은 서로 끼우기 좋게 합니다. 곤쟁이 젓독은 포개기 좋게 합니다. 그러니까 새우젓독은 종이컵처럼 비었을 때 끼워 수납하기 좋게 합니다. 끼워서도 구울 수 있게 하자니 입(전, 씨욱)을 까다보니 이게 노골적으로 남성 성기모양을 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섹시합니다. 하여 어떤 크기들이 겨우 우산꽂이로 쓰일 때 일본으로 꽤 건너갔다고도 합니다. 반면 곤쟁이젓독은 상대적으로 귀하고 크기가 작은데다 현대감이 있어 테이블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옹기몸흙은 성분과 조직이 다양합니다. 또 더 다양할수록 좋기에 자꾸 더 접어주게 됩니다. 그릇을 지을 때도 그릇의 얼개를 짜면서 이 접어주는 행위가 완결성을 갖습니다. 그러다 마무리로 살짝 쥐어 주게 되니까 여기에 기운이 응축되었다 할 것입니다.


제가 이 곤쟁이젓독을 매겁시 크게 짓게 된 것은 남산 힐튼호텔에 있던 [여인와상1982](헨리무어作) 때문입니다. 일을 바꿀 때 새 일이 그 조각품만큼 가격(?)이, 가치가 있기를 바랬습니다. 그래 작은선생께서 옹기를 얼마큼 하고 싶냐고 하시길래 손을 들어 ‘이만큼요’ 했더랬습니다. 그러니까 ‘큰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 일로 저의 욕망을 크기로 읽으셨는지 그 뒤에 받은 말씀이 ‘옹기는 커도 커 보이지 않아야 하고, 작아도 작아 보이지 않아야 한다’였습니다. 그래 뭘 ‘크기로 해결하지 말아야지’, ‘크기로 해결하지 말아야지’ 해 왔는데 글쎄 내년에 그 힐튼호텔이 헐린다 합니다. 그래 그 헐린다는 말에 크게 짓고 있습니다.  


요새는 요강을 짓고있습니다. 또 냅다 크게 짓고 있습니다. 그 높고 넓은 로비를 다 차지한 듯 한가롭고 우아하게 누워있는 그 여인이 부러웠는데, 그 2억원이면 뭐든 할 수 있겠다 싶어 부러웠는데 곧 헐린다는 말에 그 여인에게 위로가 될까 싶어 요강을 짓고 있습니다.


2022. 07. 20

옹기장이 이현배 드림




2억원 -1985.10


나에게 

2억원이면 

그림의 떡이거나

어느 노랭이네 집 

매달렸다는 조구새끼모냥

하늘에만 대롱대롱 매달리는 

구름잡는 꿈인 줄 알았어


그런데 

2억원이 

힐튼호텔 메인로비 바닥에 

버젓이 자빠져 있잖어


그래 

이것이 

바로 2억원짜리

헨리 무어의 [女人臥像, 1982]인겨


<생략>





이현배씨께  


모르시는 말씀이외다


나는 

흑인(黑人)


아니

흙인(土人)

내 고향

아프리카


씨앗을 갈던 어느 봄 날

사냥되어


2억원에 

팔린 나


나는 

노예


2억원짜리

노예



-1986. 01


오해받은 작품

[女人臥像, 1982]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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