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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9 | 칼럼·시평 [문화칼럼]
청소년의 욕설, 그들만의 문화를 통한 경계짓기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2022-09-14 10:54:06)

문화칼럼

청소년의 욕설, 그들만의 문화를 통한 경계짓기


글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언어를 보면 보이는 문화


자료를 찾다가 “청소년 욕설사용 심각하다면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추진키로 했다”라는 기사를 보고 물을 뿜을 뻔했다. 여성가족부가 관계부처 국장 회의를 열어 청소년 언어순화•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였다는 10여 년 전 보도자료. 강산이 한번 바뀌었다. 욕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나? 오히려 대화에 욕설이 절반 이상이며 매일 욕을 한다는 청소년이 70%가 넘는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다. 코로나19 이후 소셜미디어상에서도 청소년 욕설이 난무한다며 걱정하는 기사 또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언어는 그 사람이 성장해 온 환경과 접해온 상황들의 총합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에 공감이 크다.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살피면 그 사람이 그동안 살아 온 환경과 문화를 알 수가 있다. 청소년 문화를 일반적으로 미숙한 문화, 비행문화. 하위문화이며 저항문화와 새로운 문화 등으로 안내한다. 이뿐인가? 사회집단, 학교, 대중문화와 성, 여가, 게임과 모바일, 소비문화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청소년 문화를 규정짓고 분석한다. 이 중 청소년 언어는 그들만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며, 어찌 보면 이 모든 영역에 투영될 수도 있다.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경계로서의 언어


최근 청소년의 언어문화에서 가장 많이 부각 되는 것은 욕설이다. 유치원 다니면서 아이들이 욕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나타나는데 중학교 입학하면서 급격히 증가하고, 고교생까지 유지되지만, 졸업 때쯤 조금씩 언어가 순화된다는 어느 부모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유치원 아이들만의 문화가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 등 때마다 갖는 그들의 언어가 있다. 청소년 대화 중 많은 욕설이 난무하는데 이는 다른 세대와 영역 간의 경계를 드러내는 작용을 한다.


청소년의 문화는 ‘하위문화’다. 청소년이 사회 전체를 구성하는 하위집단으로서 그들의 문화도 전체 문화 가운데 하나의 문화를 이룬다는 뜻이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고유한 언어가 다른 세대와 자신들을 구별하고 기성세대에게 자신들만의 가치관이 드러나지 않도록 감출 수 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한다며 부정적으로 바라 볼 뿐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그들의 세계에 가까이 가기가 더 어렵다. 역설적으로 기성세대가 비판적으로 보는 욕설이 난무한 언어, 그들이 만들어 낸 비속어와 신조어가 뒤섞인 말로 인해 외부인의 접근을 막고 자신들만의 또 다른 문화가 구축된다. 어른들의 경계를 위해서도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것도 타당해 보인다. 청소년 문화만 그런가? 우리 사회 하위문화에서 공통으로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노래, 춤, 미술 등 예술 영역도 그렇듯이 그들만이 갖고 있는 문화를 통한 경계 짓기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다만 청소년의 언어에 있는 욕설이 크게 부각되고 “어쩔티브이” 운운하며 “어쩔 어쩔 저쩔 저쩔 안물 티비~ 안궁 티비~ 뇌절 티비~ 우짤래미 저짤래미~ 쿠쿠루삥뽕 지금 화났쥬?~” 중얼거리는 랩인지 뭔지 모르는 이야기 하는 아이들 보면서 기막혀할 뿐이다.



바닥 치는 자존감에서 나오는 욕설과 높임말


욕설은 타자를 비하하는 언어다. 존중 없이 서로를 비하하는 말을 청소년들이 일상으로 한다는 말이다. 선진국이라는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최고로 불행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행복지수가 꼴찌라는 결과는 클릭 한번이면 찾아 볼 수 있다. 청소년 자살률은 너무 높고, 자존감은 바닥이다. 행복과 연결되는 심리적 요인 중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느낌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 


청소년 욕설이 그들의 언어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불행한 사회에서 자존감이 바닥인 심리상태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그들만의 경계 안에서 욕설이 서로의 동질감으로 확인하기도 하고 서로를 위안하는 기능까지 한다. 어른들은 높임말을 잘해야 한다고 가르치는데, 높임말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인권운동 하는 지인 중에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10대 청소년들과 서로 반말로 대화한다. 인권을 침해하고 소통을 가로막는 원흉을 높임말로 규정한 것이다. 


청소년의 언어문화는 어떤 측면에서는 극단적인 양극화현상을 보인다. 그들만의 세계에서 거친 욕설이 주를 이루고, 다른 한쪽에서는 높임말을 남용한다. 높임말이 상대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 측면에서 방패로 사용되기도 한다. 높임말은 타자의 비난이나 비판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고, 최대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책잡히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나는 약하니 내 앞의 모두에게 존댓말을 해서 낮은 자존감을 감추고 나를 방어하는 기재로서 높임말만큼 좋은 무기는 없다. 지나친 욕설과 지나친 높임말은 서로 연관된 현상으로 읽힌다.



욕설할 수 없는 행복한 환경을


청소년의 욕설은 문화로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욕설이 정신건강에 좋을 리 없고 인지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욕설 중 ‘존X’, ‘씨X’ 등이 있다. ‘존X’는 ‘매우’, ‘많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어원은 남성의 성기와 관련이 있고, ‘씨X’은 여성의 성기와 연관돼있다. 이렇게 대개의 경우 욕설은 의미를 전달하는 주제어가 아니고, 전달하려는 뜻을 강조하거나 조금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장식의 기능이다. 그저 매우, 많이 라는 뜻으로만 알고 있을 뿐 이게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범한 문장도 이렇게 강조되거나 특별한 문장이 된다. 욕설을 많이 쓸수록 청소년이 사용하는 전체적인 어휘가 단순해질 개연성이 크다. 우리가 고급 언어를 배우고 리터러시(literacy)을 쌓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사회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고, 논리적이며 추상적인 사고력이 높아지며, 자기성찰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만(Postman, N)은 이런 주장과 함께 자기 조절력, 욕구지연능력 등 성인기와 연관시키는 모든 특징은 읽고 쓰는 능력과 함께 생성되거나 강화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렇다면 청소년이 욕설하지 않고 건강한 언어를 숙달하고 리터러시를 쌓으며 삶의 문화가 좋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은 청소년이 행복할 수 있도록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욕설이 언어문화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불행한 삶을 반영하는 증상으로 봐야 한다. 욕설하는 청소년을 문제시하며 터부시하기 이전에 그들이 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해 주려는 노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전보다 욕설이 더욱 심각해진다고 느낀다면 그들의 문화가 이전보다도 더욱 불행하고 자존감 낮은 심각한 상황을 대변하는 현상으로 인식해야 한다. 상황을 살피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며 수정하려는 노력 없이 그저 정부 부처가 나서서 욕설만 막겠다고 했을 때 현재와 같이 악순환은 계속해서 반복될 게 뻔하다. 청소년의 행복한 문화는 무엇일까? 청소년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논의하는 게 그들이 욕설하지 않도록 하는 활동의 시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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