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현의 숨은 책 좋은 책 9 마광수 ‘자유에의 용기’
모럴 테러리즘에 맞서는 일의 고단함에 대하여
글 이휘현 KBS전주 PD
누군가 나에게 20세기 한국문학 중 가장 ‘정치적인 작품’을 하나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마광수의 1992년 작 <즐거운 사라>를 이야기 할 것이다.
이 소설을 둘러싼 30년 전의 필화(筆禍)는 사건이 아니라 ‘사태’로 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냐 외설이냐”는 논제를 둘러싼 법리적 다툼이 아닌, 국가 권력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어디까지 손을 댈 수 있느냐에 관한 정치철학적 쟁점으로 말이다.
이 사태는 한 유명대학 교수의 구속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후 한국사회에서 ‘도덕’이나 ‘윤리’ ‘미풍양속’이라는 홍두깨로 자유로운 상상력이 얼마나 잔인하게 짓뭉개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되었기 때문이다.
야한 소설 썼다고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한 지식인의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 영상으로 본 한국인들의 뇌리 속에, 모름지기 성(性)이란 속으로 꽁꽁 숨겨야 할 그 무엇이라는 집단적 무의식은 더 단단하게 자리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장정일의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두고 공권력의 계도가 또 한 차례 시행되었다(1996년). 이 세기말적 풍경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정신적 거세를 당한 한국인들의 성적(性的) 불안감은 어디에서도 비상구를 찾을 수 없었는데…. 그 트라우마는 과연 누가 치유해줄 수 있단 말인가. 없다, 아무도 없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대한민국 ‘모럴 센스’의 위세는 여전하니 말이다.
내가 <즐거운 사라>를 헌책방에서 우연한 기회에 구입하게 된 것은 20년 전의 일이다. 정작 작가 본인도 소장하고 있지 못한 희귀본을 단돈 3천 원에 구입했으니, 내가 헌책방에 어지간히 발품 판 보람은 찾을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구입 직후 대충 읽어보기는 했는데, 별 감흥은 없었다. 당시 나는 표현의 자유를 국가가 억압하면 안 된다는 정치적 당위는 가지고 있었지만, 작품 자체는 마광수의 마스터베이션용 소설 정도로 취급했던 것 같다. 국가 차원의 훈육이 내 무의식에 심어놓은 모종의 혐오감 또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역시나, 도덕은 힘이 세다!
그런 내가 20년 만에 <즐거운 사라>를 다시 꺼내 읽게 된 건 순전히 이 지면에 소개하고픈 책을 더 풍성하게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마광수’라는 고유명사는 여전히 흥미로운 텍스트이고, 그런 그의 수많은 저서 중에서 오늘 소개하고픈 책을 이야기하려면 아무래도 <즐거운 사라>를 정독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즐거운 사라>를 재밌게 읽었다.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흥미로웠다. 소위 진보 지식인입네 하는 분들 중에는 이 소설의 정치성은 별 네다섯 개, 예술성은 별 한 개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들의 의견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한 명의 독자인 나에게 마광수의 이 소설은 꽤 즐거운 독서의 시간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즐거운 사라>는 마광수의 ‘성애론’을 가감 없이 펼쳐놓은 순도 높은 문학작품이다. 주인공 ‘사라’가 선사하는 일종의 ‘섹스 오디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트로이전쟁을 끝내고 귀향길에 오르는 전사 오디세우스처럼, 20년간 자신을 억압하던 도덕적 굴레를 벗어던진 자유인 사라가 오로지 즐거움으로 무장한 성(Sex)의 성채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는 황홀한 여정이자 일종의 성장담이기도 한 소설. 그것이 바로 내가 읽어낸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다.
하지만 1992년 출간 당시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책을 두고 저자 마광수의 의도를 의심했다. 행간 속에서 작가의 변태의식을 추적하려 눈에 쌍심지를 켰다. 비난 여론이 활활 타오르자 도덕군자들이 대놓고 돋보기를 들이대었다. 음란마귀와 성스러운 전쟁을 치르려는 도덕 꼰대들에게 <즐거운 사라>는 황금어장이었다. 그렇게 문제적(?) 텍스트들이 거침없이 채집되자 이 소설에서 진짜로 읽어내야 할 콘텍스트는 간단히 무시되고 말았다.
결국 화형대에 오른 ‘세기말의 마녀’ 사라는 불태워졌고, 작가는 법적 단죄를 받았다. 학교에서도 쫓겨났다. 이 광경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이 인과응보를 입에 올리며 박수를 쳤다. 돌이켜보면 그건 일종의 집단적 광기였다. 이 일련의 사태를 마광수 본인은 훗날 ‘모럴 테러리즘’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유에의 용기>는 대한민국 사회의 이 모럴 테러리즘이라는 유형•무형의 폭력에 마광수 교수가 고군분투하며 써내려간 처절한 기록물이다. IMF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시련이 한국사회를 쓸고 간 자리에서 이 에세이는 출간되었다(1998년 11월).
‘실용적 쾌락주의에 바탕을 둔 자유주의’ 보급자로서 마광수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내용이 100편의 에세이 속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데, 소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방면에서 건져낸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테마는 대한민국 제도 안의 모든 위선과 이중성을 걷어내고, 겉뿐만 아니라 속까지도 ‘솔직하고 당당한 인간’이 되자는 한 자유주의자의 처절한 외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 역시 성에 관한 담론과 개방과 ‘쾌락으로서의 성’에 대한 가치 인정이 이루어져야만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는 지금 엄숙한 전환기적 결단의 시점에 서 있다. 성적 쾌락을 당당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성적 쾌락을 죄악시할 때, 그 죄의식의 대가는 ‘성욕의 승화’가 아니라 ‘자기학대’와 ‘자기파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광수, <자유에의 용기>, 216쪽)
마광수를 일약 스타 교수로 등극시킨 첫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1988년)>부터 이 주장은 사실 그의 글을 통해 줄기차게 이어져 왔다. 두려워 숨죽이는 성(性)이 아니라 당당하게 드러내는 쾌락으로서의 건강한 성을 통해 각자의 해방을 이루자는 그의 프로파간다는, 어찌 보면 우리 시대의 진정한 개인주의 선언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광수는 선각자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를 품어주지 않았다. 이 사회가 좀 더 열려있고, 좀 덜 위선적이었다면, 그는 그렇게 고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각자를 지켜내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공동체다. 왕따였던 마광수는 외롭게 쓰고 외롭게 투쟁하다가, 결국 외롭게 죽었다. 그는 도덕과 윤리라는 견고한 벽 앞에서 몹시도 지쳤음에 틀림없다.
2017년 9월, 마광수 교수가 감행한 자살은 그가 이 답답한 사회에 남긴 마지막 텍스트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한 실존의 끝이 아니라, 차라리 ‘정치적 망명’으로 해석해야 맞지 않을까.
故 마광수 교수의 5주기를 홀로 애석해하며, 여러분 앞에 그의 한국학 명저 <자유에의 용기>를 조심스레 꺼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