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는 책
걷기와 사유
걷기란 행위는 단순히 두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선하는 데서 온다. 종교에서 순례나 걷기수행을 강조하는 것이나 평화 시위에 '걷기대회'가 빠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큰 뜻이 아니더라도 걷기는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수단이기도 하고,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마음에 드는 가게라도 발견하는 날에는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느린 걸음으로 걸으며 가을의 볕을 만끽해보자.
걷기의 세계
셰인 오마라 저, 구희성 역 | 미래의창 | 2022년 06월
뇌과학자의 눈으로 ‘걷기’라는 행위를 통찰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걷는다. 한발 그리고 그 앞에 다른 발을 리듬감있게 디디며 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 대룩에서 유라시아로 나아갔으며, 이후엔 다른 사람들과 뜻을 함께 하기 위해 걷기 운동을을 계속했다. 이렇듯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언가로 향하는 행위는 인류 문화의 기원이자 원동력이다. 책은 가장 먼저 왜 걸어야 하는지 설명하고 그것이 인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인문학, 사회학, 과학적 측면에서 검토한다. 새로운 측면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 산책하는 시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 올게요, 오래가게
서진영 저, 루시드로잉 그림 | arte(아르테) | 2021년 09월
세월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가게들을 다룬다.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오래가게'는 대를 이어 운영할 만큼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고유의 정서와 전통이 있는 가게를 지칭하며, 동시에 가게들이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 식당, 쌀집, 목욕탕, 신발가게, 대장간, 제면소, 헌책방과 같이 골목의 한쪽 구석에 배경처럼 존재하던 곳들이 주인공이 되어 책을 구성하여, 주변의 것을 애틋하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동안 도시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하는 서진영 여행작가의 따뜻한 글과 루시드로잉의 아날로그적인 어반스케치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시와 산책
한정원 저 | 시간의흐름 | 2020년 09월
작가 한정원이 시를 읽고, 산책을 하며 고민하는 순간들을 담았다. 그는 매일 길고양이들의 사료 봉지와 물통을 배낭 속에 챙기고 길의 곳곳에 떨어져 있는 시어들을 줍고 또 줍는다. 그의 곁에는 그가 평생을 읽어 온 페소아, 윌러스 스티븐즈, 로베트 발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에밀리 디킨스와 같은 시인들이 함께 한다. 여느 때와 같이 동네를 걸으며 작가는 노인의 등에서 늙음에 대해 생각하고, 과일 트럭 아저씨에게 과일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에게 그 과일을 건넨다. 그의 시와 산책에 대한 단상은 열마디 말보다도 위로가 된다.
골목길 역사산책
최석호 저 | 시루 | 2018년 04월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화려한 랜드마크들의 틈에서 우리는 서울이 아주 오래된 도시라는 점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서울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이래 지금까지 수도로서 이 나라를 지켜왔다. 책 ‘골목길 역사산책’은 그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왜와 청에게 네 번이나 짓밟힌 부암동 무릉도원길,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얼얼한 아픔을 느껴온 정동 역사길, 조선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개화의 열망이 가득 담긴 북촌 개화길, 선비들이 시를 읊고 진경산수화를 그리던 서촌 조선중화길, 한양을 등지고 문화재를 보호하며 힘든 시간을 견뎌낸 동촌 문화보국길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피며, 익숙했던 서울을 다각적으로 검토한다.
숲속 인생 산책
김서정 저 | 동연출판사 | 2022년 08월
전국 37군데의 숲과 공원의 식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저자는 꽃과 나무도 구분하지 못하는 나무맹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 우연한 기회로 KBS 라디오에서 ‘숲으로 가는 길’을 진행하게 되었고, 매주 전국을 돌아다니며 나무와 꽃을 소개했다. 여수 영취산 진달래가 산성 토양에서도 꿋꿋이 삶을 피워내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삶의 의지를 배우고, 문래근린공원의 살구나무를 보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삶의 의지를 다지기도 한다. 식물에 다가가 소통하다보면 언젠가는 마음도 아름답고 울창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저자는 오늘도 길을 나선다.
간판 없는 맛집
안병익 | 이가서 | 2022년 03월 10일
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있다. 음식의 플레이팅이나 외관보다는 맛이 중요하단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영업해 온 ‘노포 맛집’은 이미 누군가로부터 한 차례 인증을 받은 셈이다. 노포 맛집에 관한 책을 소개한다. 푸드테크 기업인 식신의 안병익 대표가 쓴 ‘간판 없는 맛집’이다. 책의 표지는 촌스럽지만 내용은 실하다.식신은 300만 유저가 즐겨 찾는 맛집 정보 서비스다. 책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노포 맛집을 모아 엮어 만들었기 때문. 여행과 식욕의 계절인 가을 골목에 있는 허름한 가게들을 방문하며 맛 기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