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예술가 정신에 대한 본질을 고민하다
판소리부터 디지털 콘텐츠까지 열흘 동안의 소리 여행
‘더늠(20th+1)’을 주제로 9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열흘동안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올해 축제는 전통 판소리부터 실감형 콘텐츠를 활용한 뮤지컬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올해는 5일이었던 축제 기간을 10일로 늘리고 프로그램 수를 대폭 줄였다. 기존 놀이마당에서 펼쳐진 릴레이 야외공연도 과감히 없앴다. 대신 모악광장 앞 소리 정원을 조성해 푸드트럭과 플리마켓을 운영하고 주말 저녁에는 소규모 버스킹을 운영해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예년보다 새로워진 공간의 구성도 특별했다. 특히 지역명소의 시너지를 확장하는 명소공연이 눈에 띄었다. 정해진 공연장을 벗어나 부안 채석강, 치명자성지 평화의전당, 덕진공원 연화루 등으로 장소를 넓혔으며 부안 채석강에서는 왕기석 명창의 수궁가 현장 공연과 함께 실황을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등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2년 연속 겪어야 했던 코로나 시기의 위협을 과감한 실험과 도전으로 극복한 결실이다.
개막공연 <백년의서사>는 전통예술을 오롯이 지켜내면서 현대에 접목하고 변형할 과제를 풀어나가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무대. 임진왜란 시기 ‘빅터 레코드’에 기록된 우리 전통의 기록을 꺼내 함께 고민해보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기획한 개막무대는 100년의 세월 동안 시대를 풍미한 ‘국창’이라 불렸던 5명창에게 딥 페이크, 디지털 음향 기술을 접목해 소환, 만남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열흘동안의 축제 동안 곳곳에서 실현되었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축제를 펼친 전주세계소리축제의 특별했던 여정을 뒤돌아 보았다.
본질에 가치를 더하다 _Focus on 더늠
올해 소리축제의 주제인 ‘더늠’을 잘 드러낸 섹션이었다. ‘더늠’은 고도의 수련 과정을 넘어 ‘자기화’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의미.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무대 위 일곱 개의 옴니버스식 콜라보 공연이 펼쳐진 개막공연은 상징적인 무대였다.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명창의 목소리를 지역의 젊은 소리꾼, 호남 우도 장단과 고깔춤, 시나위 연주, 탈출과 접목해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냈다.
그에 비해 폐막공연 <전북청년열전-In C>는 전북 지역 음악가들을 주축으로 30여 명을 선정해 미니멀 음악의 창시자 ‘테리 라일리- In C’를 연주했다. 미니멀 음악은 작은 변화와 움직임을 지속, 반복적으로 이어가는 것. 판단과 해석을 앞세우기 보다는 자신만의 느낌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공연이란 평가였다. KBS교향악단과의 <접점>, 지난해 <춘향가>를 통해 ‘트리오 판소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방수미, 박애리, 정상희가 다시 뭉친 <심청 패러독스>, 현대 무용수와 파두 뮤지션이 함께 선보이는 <바트 파두>, 끊임없는 재창조의 과정 속에 변화하는 <플라멩코 리:본>은 예술가와 예술가 정신에 대한 본질과 가치를 생각하게 해준 무대였다.
시간을 품은 전통음악의 가치 _오래된 결 : 전통
왕기석 명창의 <수궁가>, 박지윤 명창의<춘향가>, 김도현의 <적벽가>, 유태평양의 <흥보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소리 기량을 감상할 수 있었던 무대다. 여덟 명의 젊은 명창들이 전주대사습청에서 소리를 겨루는 판소리 명창 대첩 <광대전> 또한 오늘의 판소리를 만날 수 있었던 자리.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연화루에서 이어진 판소리 분야의 명창 및 전문가들의 강의는 판소리 전공자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족했다. 이동훈 명인과 원완철 명인의 <산조의 밤>은 산조가 지닌 음악적 가치를 전했으며 풍물 굿 개인 놀이의 꽃 설장구에 주목한 <광대의 노래>는 축제의 신명을 더했다.
옛것으로 더 새로워진 무대 _온고이지신
덕진공원 연화정도서관 연화루에서 이어진 젊은 소리꾼들의 판소리 다섯바탕은 소리축제의 정체성을 더해준 무대였다. 바탕별로 60분씩 해설을 더한 릴레이 공연으로 열려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시나위 본연의 의미를 가지고 연주하는 ‘project. 여운’과 현재성과 자유성을 기반으로 즉흥연주 하는 ‘방울성’의 공연으로 구성된 오늘의 시나위는 코로나19 확진으로 출연진이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기획력이 돋보였다. 소리 프론티어 <판소리 드라마 ‘다시 쓴 엽서’>, <도채비SSUL 적벽대전>, <사계의 사잇곡>, <로큰롤 심봉사뎐>도 판소리에 대한 실험정신과 색다른 시선이 돋보였다.
협연의 묘미로 소리를 돋보이다 _너머의 감각: 컨템포러리
한국 재즈의 새로운 트렌드를 꿈꾸는 ‘고니아’의 <장단 위의 선율>은 직선적인 격렬한 장구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전북의 민요를 소재로 한 국악 X 재즈선율 X 시각예술의 콜라보 <덩기두밥 프로젝트>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느낌을 살려냈으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신비로운 곡을 연주하는 국악밴드 더튠의 <월담>과 한국의 휘모리 장단과 자메이카 장단의 스카가 만나 즐거움을 선사하는 유희스카 <니나노 콘서트>는 특유의 에너지로 무대를 이끌었다. 재즈와 슬로바키아 민속 음악의 절묘함이 돋보이는 <파코라 트리오>와 철현금 연주자 류경화와의 협연은 한국적 색채를 담은 새로운 사운드와 음악으로 관심을 모았다.
이밖에도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기획무대가 소리축제를 빛냈다. 정명훈이 피아니스트로 선 무대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 비올리스트 김사라, 첼리스트 송영훈, 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가 앙상블로 참여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와 집시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Two Guitars>는 하모니스트 박종성이 합류해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특별한 분위기의 음악을 선사했으며 민속적인 보이스를 가진 안예은 콘서트 <전주 상사화>는 지역의 젊은 국악인들과 함께하는 협업 무대로 주목을 끌었다.
가족 나들이에 즐거움을 더해준 <헬로우! 패밀리> 섹션도 올해 특히 새로웠던 기획이었다.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 행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실감형 콘텐츠와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입체적인 경험을 하는 이머씨브 가족뮤지컬 <알피ALPI>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어낸 공연으로 가족 단위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웠다.
여러 단체들이 참여한 <글로컬 랩>은 함께 하는 축제의 의미를 더해주었던 기획. 전주판소리합창단 <소리로 노래하다>는 판소리와 민요를 기반으로 창작한 곡을 합창, 국악 칸타타, 아카펠라 등으로 선보였다. <듣,보,고>풍류를 비롯해 <싱잉볼, 재즈트리오를 만나다>, <힙한 광대들>등은 지역 예술가들이 역량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특히 전주대학교 산학협력단,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공동으로 기획한 <기계학습데이터 맵핑 Sori N>은 국내 최초로 국악과 인공지능이 합작해 인간-기계의 상호작용을 실험하는 실험예술의 무대였다.
예술과 예술가 정신에 대한 본질을 고민했던 올해 축제는 양보다 질적 가치를 우선으로 삼고 공연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했던 노력이 돋보였다. 많은 공연과 볼거리가 넘쳐나던 축제의 그림이 다소 희미해졌으나 예술제로서의 그림이 선명해진 것은 그 결실이다. 그러나 예술제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이어나갈 방법은 아직 과제로 남았다.
성륜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