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영화 읽는 영화 | 인생은 아름다워
추상화된 죽음과
뒤늦은 깨달음으로 빚어낸 슬픈 멜로드라마
글 김경태 영화평론가
중년의 주부 ‘세연(염정아)’은 폐암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남편인 ‘진봉(류승룡)’은 걱정하거나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짜증을 내며 평소에 건강관리를 하지 않은 그녀를 탓한다. 다음날, 세연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챙긴다. 진봉 역시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그녀를 대한다. 세연은 그런 그에게 서러움을 폭발하고, 30년 전의 첫사랑 ‘정우’를 찾아 떠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진봉은 마지못해 그 여정에 동참하며 목포로 향한다. 정우의 발자취를 좇아가다 보니, 그들의 여행은 뜻하지 않게도 전국 일주가 돼버린다. 마침내 정우의 집에 당도하지만, 그는 이미 죽어서 떠난 뒤였다. 심지어 그가 사랑했던 사람은 세연이 아니라 그녀의 절친이었던 ‘현정’이었음이 밝혀진다.
사실 그들의 여행은 목적의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팍팍한 삶을 지탱해줬던 첫사랑의 추억은 산산조각 났지만, 그녀에게는 겉모습과 달리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진봉이 있다. 알고 보니, 그 여행은 그에 의해서 몰래 세연의 버킷리스트를 이뤄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이라는 판타지가 비워진 자리에 진봉은, 그리고 영화는 뮤지컬을 통해 죽음의 공포를 초월해내는 견고한 판타지의 세계를 구현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마지막으로 가족과 지인들을 모두 초대해 ‘오세연만을 위한 잔치’를 벌인다. 마치 결혼식을 올리듯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세연은 그들과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이별을 고한다. 그 잔치는 ‘생전에 하는 장례식’이라는 모순된 의례에 다름없다. 그것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이들, 그러니까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이들의 특권이다. 그러나 더 이상 추모와 애도라는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로 죽음의 정서를 환기시키거나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그 잔치이자 장례식은 ‘뜨거운 안녕’이라는 노래에 맞춰서 모두가 신나게 춤을 추면서 축제의 장으로 거듭난다. 다시 말해, 이 뮤지컬 시퀀스를 통해 죽음과 상실의 공포를 잊고, 죽음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즐거운 의식이 된다. 다만, ‘뜨거운 안녕’이 경쾌한 댄스곡에 이별을 담은 가사로 아이러니한 슬픔의 감정을 건네듯이, 이내 다가올 이별을 알기에 그 웃는 얼굴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더 슬프게 다가온다. 화려한 뮤지컬의 판타지 속에서 죽음은 미화되며 좀 더 편하게 애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잔치 장면이 끝난 후에는 세연이 하던 집안일을 진봉이 도맡아서 하는 분주한 일상이 펼쳐지며 세연의 부재를 넌지시 알린다. 세연이 병상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도, 그녀의 임종과 장례식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연이 죽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음을 짐작할 뿐이다. 영화는 시한부 삶의 고통과 두려움을 과소 재현하며 죽음의 민낯을 애써 외면한다. 어디에도 말기 암 환자의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도, 실제 장례식장에서의 과도한 눈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추상화된 죽음은 상실의 슬픔을 매끈하게 고양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행이 세연의 버킷리스트를 충족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영화는 세연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직후로 돌아가 세연과 관객이 보지 못했던, 그러니까 영화가 생략했던 진봉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당시 진봉이 겉으로는 무심한 척 했지만 속으로 얼마나 슬프고 겁이 나고 힘들어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된다. 물론 세연은 그가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끝내 알지 못한 채 떠났다. 그 지연과 어긋남은 멜로드라마의 비애감이 기원하는 정형화된 구조이다. 이처럼 <인생은 아름다워>는 관객의 눈물을 유도하기 위해 정교하게 구축된 슬픈 멜로드라마이다. 그리고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그 멜로드라마적 특징을 강화시켜주는 장치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