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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 기획 [송년기획]
지역문화에 의미와 가치를 더하다 ②
지역문화를 돌아보다 : 문화와 사람
성륜지, 신동하 기자(2022-12-13 13:15:57)


송년 기획 ㅣ 지역문화를 돌아보다 : 문화와 사람



코로나바이러스는 사회 곳곳에 침투했다. 많은 자영업자의 입에서 곡소리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문화 예술계는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경제적·사회적 활동이 줄며 향유층이 줄어들었고,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지자 문화시설들이 폐업했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도 기획자들은 꿈 하나로 버텨내며 행사를 유치해냈다. 올해 유난히 많았던 행사 속에서 특히 기획력이 돋보였던 행사를 기획자들의 입을 통해 소개한다.




‘우리도 화가’, 어르신들의 나라

이랑고랑 대표 황유진





올해 특별한 관심을 모은 농촌 프로젝트가 있다. 김제의 예비사회적기업 이랑고랑이 기획한  프로젝트 ‘오늘은 그림 안그리려고’다. 이 프로젝트는 김제 광활면에 위치한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아트상품으로 개발하여 판매하는 형식이다. 20, 30대 젊은 강사들이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교육을 진행하고 70, 80대들이 첫사랑의 추억, 출산 기억 등 자신의 삶을 그려서 자수 제품이나 노트, 달력 등을 제작했다.


이랑고랑의 대표는 지역의 여러 레지던시를 거치며 이름을 알려온 조각가 황유진 씨다. 그는 전북대학교 조소과 3학년에 재학하던 시절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처음 접했다. 이후 2015년에는 문화예술교육을 직접 기획해보자는 취지로 스터디모임을 진행했다. 그렇게 2019년, 5년간의 공부 끝에 김제에 터를 잡고 문화예술교육 단체 ‘이랑고랑’을 만들었다.


그러나 창업 후 모두들 겪는다는 마의 3년을 넘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예비사회적 기업으로 인증까지 받은 이랑고랑도 마찬가지였다. 황유진 씨는 그동안 재단예술지원사업의 보조금으로 단체를 운영했으나, 올해는 그것에 선정되지 못한 것이다. 막막하던 시기 떠올랐던 것은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 할머니들의 자유분방한 드로잉이 담긴 여러 상품들을 업로드했고, 많은 사람들이 SNS로 이랑고랑과 할머니들의 사연을 공유했다. 그 결과 펀딩은 계획한 금액의 220%의 금액을 달성했다.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현재 이랑고랑은 펀딩으로 예산을 만들어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평범한 동네 할머니들이 늦깍이 작가로 거듭남과 동시에 이랑고랑’의 자립 가능성도 확인 받은 셈이다.





무형유산의 가치로 공감하다

프롬히어 대표 설지희





무형유산의 의미에 쓰임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설지희 씨는 올해 지역 공예품을 상품화하여 일상생활로 들여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우산장 윤규상 보유자의 종이우산을 절단한 <조각우산>으로 펀딩률 490%를 달성했다. 고급 인테리어 소품으로 브랜딩하여 가격이나 퀄리티를 낮추지 않고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 그는 앞서 <전주 솟대 디퓨저>, <싱잉볼, 그리고 콘서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었다.


장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지역에 있는 무형문화재를 널리 알리는 것이 그의 목표이자 지향점이다. 낯선 무형유산 분야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공연도 기획했다. 전주세계무형유산대상 특별공연 ‘장인의발걸음’이 그것. 설지희 씨는 “그동안 생각해온 가설들이 증명되는 공연”이라고 말하며, “천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전통 기술 보유자 선생님들이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이라 느끼고, 작업에 대해 존중받는 느낌을 받은 것 같아 보람이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프롬히어는 전라도·제주도의 공예품과 책을 전시하여 일 년을 회고하는 ‘전라감영, 일 년 읽다’ 를 진행하고 있다. 무형유산 큐레이터 그룹 ‘프롬히어’의 대표인 설 씨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를 졸업, 무형유산학 박사를 수료했다. 2019년 썰지연구소를 시작하고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이걸로 먹고 살 수 있겠냐’였고 2022년은 그것을 증명하는 한해였다.





지역의 변화 이끈 주민들의 연대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팀장 전성호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팀장 전성호공동체 문화활동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에 불티나게 뛰어다닌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전성호 팀장. 올해는 더 열린 마음으로 공동체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관점을 공유했다. 그는 13개의 읍면을 직접 찾아다니며 주민들과 문화도시에 대한 상상력들을 모으는 작업을 진행했다. 기존의 자문을 받기 위해 방문하는 방식이나, 설문지를 준비해서 가는 방식 대신 본인이 하고 싶은 활동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을 자원 이야기, 지역 설화 등 더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다.


전 팀장은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동체를 발굴하고, 성장을 지원하며 공동체들이 하고 있는 사회혁신체계가 지역 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활동들을 지속해왔다. 이러한 활동들은 과거 생활문화센터에서 근무하며 동아리 지원 사업을 했던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주민들과 연대하여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업들을 해오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과정이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이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완주는 농번기라고 불리는 봄,여름, 가을에는 문화적 접근이 어렵다. 겨울철을 이용해 ‘문화로 농번기를 만들자(문번기)’ 문화활동을 확장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 팀장의 최종 목표는 문화도시 사업이 없어지더라도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지역에서 스스로 지역문제를 해결하며 지속적으로 활동해 나갈 수 있는 사회 혁신 주체가 되는 것이다.





지역의 재즈 문화를 꽃피우다

더바인홀 대표 김주환





7월부터 11월까지 전주 삼천동 소재 공연장 더바인홀에서는 ‘전주미니재즈페스티벌’이 열렸다. ‘재즈인물대백과사전’을 주제로 재즈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음악가들을 소개한 후 오은하, 박종훈, 장영광 재즈피아니스트와 탁경주 재즈기타리스트를 초청하여 관련 음악을 들어보는 행사였다. 행사기간 동안 총 30회의 공연이 치러졌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도 이례적인 규모였다.


행사를 기획한 이는 김주환 재즈 싱어.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그는 ‘한국의 토니베넷’이라 불리며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더바인홀은 고향인 전주에 내려와 자신이 어릴적부터 그리던 꿈의 공간을 재현한 곳. 그래선지 무대 디자인부터 세부 사운드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김 대표는 재즈가 단순히 분위기 좋은 BGM으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과 전주를 부지런히 오가면서도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닌 제대로 된 재즈페스티벌을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다. 지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지역에서 재즈에 대해 진지하고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사비를 털어가면서 버텼다고.


무모해 보였던 믿음은 현실이 되었다. 처음에는 저조하던 참여율이 회차를 거듭할 수록 늘어났던 것. 특히 한 번 공연을 보고 간 관객들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아 더욱 의미가 있었다. 그는 행사를 진행하며 미니재즈페스티벌을 마치고 지역에서 만나기 힘든 좋은 행사를 기획해줘서 감사하다는 팬레터를 받았던 순간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다가올 12월에는 매주 금요일 양질의 공연을 올리는 윈터 재즈 데이즈를 기획 중이다.





‘군산항’의 의미 일깨운 무용축제

퍼포밍아트 몸 대표 최재희





9월 20일부터 24일까지 군산국제무용축제가 열렸다. 지난 해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 군산지부가 발족되며 처음 시작된 행사가 올해 더 큰 규모로 돌아온 것이다. 코로나 규제로 인해 대부분의 행사가 비대면으로 치러졌던 예년과는 달리 인문학 라운딩 테이블부터 버스킹, 커뮤니티 댄스까지 모두 대면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지역의 유산인 ‘군산항’을 무용으로서 재조명했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퍼포밍아트 몸의 최재희 대표가 다시 한 번 기획을 맡았다. 군산에서 태어난 최 대표는 전북대학교 무용학과에 진학한 이후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전북대학교 현대무용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그룹인 ‘CDP’를 창단하고 이끌며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서울무용제를 연출하고 평론가가 뽑은 젊은 안무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군산항은 지역을 대표하는 훌륭한 랜드마크이자 문화적 자원이지만 정작 지역 내에서는 단순히 일상적인 공간으로 치부되어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이번 행사의 주제로 삼았다.


지역민들과 함께 해야만 진정한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 올해는 폐막식에서 즉흥잼 자리를 마련하여 작게나마 그 뜻을 실현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판을 더 키워 시민들이 직접 안무를 짜서 무대에 오르는 경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 대표는 무용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시민들, 연극무대에 서다

하형래 PD





지난 10월 전문 연극인이 아닌 시민들이 연극 무대에 올랐다. ‘전주시민연극제’를 기획한 진북생활문화센터 하형래 팀장은 평소에도 시민들이 연극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시민들이 연극에 관심을 가져야 관객이 늘고, 더 나아가 연극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에 젊은 연극인이 없다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있다. 젊은 연극인들을 키울 터전을 만들기 위해 청소년·청년을 대상으로 한 연극 동아리를 준비중이다. 동아리 활동으로 연극 경험을 키우고 프로 극단으로 입단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것이 그가 생각한 해결책. 지역에서 생소한 PD라는 직함을 고집하는 이유도 제작 PD라는 말을 상용화 해 지역 기획자를 더 늘리려는 것이다. 기획자에 대한 인지도가 낮으니 지원자가 없어 기획자가 크기 어렵다는 것. 하형래 씨는 지역에서 연극인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로 3년간 묵혀왔던 행사들이 쏟아져 가장 바쁜 한해를 보냈다던 그는 <햄릿:THE 부러진 검>, <사의 찬미를 듣는 모던보이>, <그대는 봄>, <우리 여기 잇다> 공연 제작 PD로, <왕과의 산책>, <고물은 없다> 배우로 활동하며 생생축제, 시민연극제를 기획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개그맨을 하려면 연기가 중요하다”는 친구의 말에 극단에 입단한 하형래 씨는 14년 동안 쉬지 않고 연극인의 길을 걸어오며 연극협회에서 기획실장,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시선을 달리하면 우리 동네도 여행지

로잇스페이스 대표 김애림





‘동네를 여행하는 새로운 접근법’. 익산의 중앙동을 아카이빙한 전시 ‘어라운드 트립’의 카피로 사용된 이 말은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여행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평범했던 우리 동네도 일본이나 베트남 뺨치는 여행지가 된다는 의미다. 전시의 기획자는 로잇스페이스의 김애림씨. 익산에서 나고 자란 그는 서울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며 지역재생이나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취업을 하는 대신 그동안 배운 것을 지역에서 펼치고자 마음먹었단다. 


최근 김 대표는 시장을 통해 익산 전체를 잇는 작업을 진행했다. 전통시장 매거진 ‘Be mike’는 그 결과물이다. 그는 앞선 활동을 통해 중앙시장의 상인들과 친해졌는데 그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와 공동체를 발견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매력을 알려주고 싶어 기획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잡지에는 산책하기 좋은 금마시장, 청년창업자들이 많은 남부시장 등이 함께 실렸다.


김 대표는 익산은 지역의 토박이, 다양한 목적을 위해 지역에 전입한 사람등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사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지역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좋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김 대표의 목표다. 다가올 2023년에는 한때는 도시의 중심이었으나 도시가 점점 확장되며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되어버린 원도심을 잇는 작업인 ‘중앙동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다.




지역의 이야기로 빛난 연극무대

극작가 송지희





전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극작가 송지희 씨가 올해는 김제, 익산, 완주 등 지역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는 한 해를 보냈다. 익산 한옥 상설공연 <허균 함라에 날아들다>, 김제시 금구면 둔산마을 일대를 배경으로 한 <新콩쥐팥쥐>가 그 결실이다.


그는 2014년, 이웃 간 층간소음을 다룬 <심심한 이웃>으로 데뷔했다. 이후 사소하지만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문제들과 관련된 희곡을 주로 써왔다. 지난 11월 선보인 <고물은 없다>는 동네 약장수가 체포되자 할머니들이 잡아가지 말라는 탄원서를 썼다는 뉴스를 보고 쓴 것이다. 


내년에는 사회 고발성이 짙은 작품을 쓸 계획이라는 송 작가는 “예술가라면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며 “사회 복지의 경계에 있는 미혼모·한부모가정에 대한 이야기나 청소년 범죄가 아이들의 문제인가 사회 구조적 문제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밝혔다.


송 작가는 우석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가 곽병창 교수를 따라 창작극회에 입단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각색을 시작으로 극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근현대사를 살아온 3대의 이야기를 다룬 <아부조부>로 2019년 전북연극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지만 경기도에서 자고 나라 사투리가 어색해 대사 말맛을 살리는 것은 여전히 어렵단다. 


송 작가는 매주 화요일 물결서사 책방지기를 하면서 메일링 서비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희곡을 연재했으며 현재는 완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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