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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 연재 [벗에게 시간을 묻다]
벗에게 시간을 묻다 23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박형진, 이현배(2022-12-13 13:23:52)


벗에게 시간을 묻다

옹기장이 이현배와 시인 박형진이 주고받는 손편지 23


손내골 현배 선생님!




이제 가을의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그간도 평안하셨는지요? 진안은 고원이라 이곳 바닷 쪽보다는 가을이 더 빨리 왔다 갔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곳도 산봉우리께에 머물러있던 단풍이 슬금슬금 중턱으로 내려오는가 하더니 어느새 계곡을 타고 집 뒤안까지 와버렸습니다. 저희 집 뒤 숲속에 화장실이 있는데 하루에 한 번 그곳에 가서 문을 열어놓고 있노라면 단풍에 취해 그만 일어나 올 일을 잊기 일쑤였습니다. 올해는 특히 가을에 비가 오지 않아서 그렇게 단풍을 열흘 넘게 보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 바람이 불지 않아도 성긴 빗방울 떨어지듯 하나씩 떨어지고 이제는 눈송이처럼 날립니다. 바람없는 속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보노라니 이 또한 마음이 조금 요동치는군요. 하여 어제는 자전거를 끌고 길을 나섰습니다. 참! 자전거 산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군요. 집에 있던 낡은 자전거를 고칠 겸, 여차하면 하나 사던지 하려고 자전거 가게를 찾아갔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따져보니 짐작했던대로 헌 것을 고치느니 새로 하나 사는 게 나아보였습니다. 헌 것은 동네 테 안에서만 슬슬 탈 수 있는 저가품이었으나 이번에는 조금 욕심을 내서 며칠씩 먼 거리를 갈 수 있는 자전거를 사기로 작정하고 가격을 물어보니 그런 용도의 자전거는 60만원대부터 있고 비싼 것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습니다. 그래 다 포기하고 다시 허름한거나 하나 살까하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데 주인이 은근히 하는 말이 60만원짜리를 꼭 사신다면 45만원까지 드리는데 그냥 아무 이문없어도 물건 하나 팔려고 그런다는 것이었습니다.


솔깃했지요. 그러나 직감적으로다가(!) 생각해보니 1~2만원이 아닌 저가 자전거 한 대값을 깎아 준다고 하니 조금 의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보고 다시 오마‘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물론 한 번 더 자전거를 꼼꼼히 살펴본 다음에요. 집에 와서 아들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검색했지요. 제가 확인하고 온 60만원짜리 모델은 정확하게 인터넷에 올라 온 가격이 29만 8천원이었습니다. 두 말 않고 주문했지요. 자전거 가게 주인은 저를 더 생각해 주려다가 본인은 그만 아무 손해도 입지 않고 저 또한 덕분에 15만원이나 이익을 보았습니다. 두루두루 잘한 자전거입니다.


타이어 공기압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헬멧 쓰고 배낭속에는 막걸리를 한 병 넣었답니다. 어느 시인의 시에서처럼 퇴근 후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차고 시인의 집을 찾아가는 대통령의 기분을 흉내내어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동네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막걸리 한 잔을 나눌 생각에서였습니다. 어떻습니까? 괜찮나요? 사실 거금 30만원을 들여 자전거를 산 것은 제가 도보로 했던 일주를 자전거로 한 번 찬찬히 다시 해보고 싶어서였답니다. 바둑 복기하듯 곳곳을 대체 그때 왜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 끄집어내어 들여다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전거 타는 근육을 키우기 위하여 이미 여러 차례 우리 고장의 이곳저곳을 자전거로 돌아보았고요, 어제는 면소재지에 있는 농협에 가서 일을 보고 오는 게 목적이었지요. 농협일 보고 자전거 근육 키우고 단풍 구경하고 막걸리 한잔하고 어떻습니까. 괜찮나요? 앞으로는 가능하면 면 소재지까지는 자전거로 왔다갔다해야겠단 생각도 굳혔습니다. 거리는 왕복 35km. 차를 끌고 다니자니 비록 1톤이지만 트럭을 혼자 달랑 탄다는 게 마음이 결코 편하지 않았어요. 기름값 비싸진 요즈음은 더더욱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긴 있지요. 가을엔 보내야 할 택배가 많아지는데 그럴 때는 차에 싣고 나갈 수 밖에요. 그리고 밤에 나가야 할 때, 바쁜 일이 생겼을 때 말이지요.


조금 다른 말이지만 이웃에 사는 80 가까운 어르신 내외가 벌써 김장한다고 도와달라고 오늘 아침 제 아내를 불러갔습니다. 이곳의 김장은 아직 한달이나 더 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실까요? 할 일 없으니 추워지기 전에 미리 하시겠다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김치 냉장고를 믿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시어 터져서 아무짝에도 못쓸 것을 냉장고는 막아주지 않습니까?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 한없이 급박한데 우리는 이렇게 편리함을 쫓아서 생각없이 몸에 배인 생활을 한다고 아내와 함께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자동차도 본질은 같은 것이겠지요. 자전거를 타고 지난번에 선유도에 갔었는데 그때 쓴 시 한편 동봉합니다. 가을을 내내 단풍처럼 곱게 보내시길 빕니다. 크고 작은 일들로 나라가 시끌시끌 하지만서도 편지를 쓰면서 저는 막걸리 한 잔을 마셨다오!!


2022.11.16. 

박형진 드림



*선유도에서


살아오면서

그렇게 많은 가창오리를

가까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새만금 방조제의 그 아스라한 수직 앞에서

사는 일의 막막함을 되새기고 있을 때

비행대형을 풀지도 않은 채

낮게 낮게 날아오는 수만의 오리들


그들도 멀고 먼 북방에서

날아가야 하는 길의 막막함에

몸을 맡기며 왔을까

퍼덕이는 날개 짓 소리를

꿈인 듯 머리위에서 들으며

아침밥상 앞에서

까닭없이 생의 소실점을 생각했던 걸

나는 다시 떠올려야했다

하여 무엇에 홀린 듯

자전거를 끌고 선유도로 가던 길


시베리아의 차가운 상승기류가

문신처럼 날개에 새겨졌을 그들에게

이곳은 내려앉고 싶은 낙원일까

그러나 정작 선유는

세상의 소란스러움을 뒤로한 채

또 다른 선유를 향해 날아오르고

갑작스레 밀려드는 안개에 갇혀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그 어디쯤에서

나는 길을 잃고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고군산군도의 한 섬으로 경치가 뛰어나 신선이 놀았다고 한다.






모항 박형진 시인께




가마에 불을 지핀 지 사흘째, 옹기점 대문 옆 느티나무 세 그루가 떨군 낙엽들을 기왕지사 가마에다 태울까 했는데 비가 온다하여 비설거지 하다가 우체부아저씨를 맞이했습니다. 아직은 가마의 습기를 먼저 빼야 해서 연기를 피우는 정도라 부르르 타는 낙엽을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마도 비를 맞고나면 낙엽들이 불땀도 없어지고, 모양도 추리해지겠지요. 하여간 가마에 불을 지폈다 하면 어김없이 비가 지나갑니다. 전에 같이 일했던 영감님 말씀이 옹기집에 용띠가 있어서 그렇다고.


요새는 김장김치를 먹는 재미가 좋습니다. 셋집이 옹기점에서 같이 김장을 했는데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김치가 아니라 김장문화가 등재된 것이라 하니 우리가 그 정신을 구현하는 듯 뿌듯했습니다. 또 이집 저집 나누면서 다른 맛을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본래 옹기점 성수기가 장담는 철하고 김장철인데 그야말로 옛날 말이고 김치냉장고가 이 옹기장이한테는 웬수입니다. 그래 김장을 해놓고 가마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이 달이 벌써 반이 넘어갔는데 저는 아직 까지도 지난 시월이 묘하답니다. 그러니까 지난 시월에 오랫동안 소원했던 같은 성씨에 이름이 비슷한 공호, 광호 두 사람과의 접속이 그렇습니다. 그것도 한 사람은 초하룻날, 다른 한 사람은 말일날 이었기에 더 묘했습니다. 


공호선생은 몇 년 전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 글을 써 주셨는데 그 글의 의미가 커서 오랫동안 마음속으로 공굴려 왔더랬습니다. 이제 겨우 지역적 삶에서 그 단초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업으로 답변을 기대하셨을 것인데 오랜 시간을 기다려 주신 듯하여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광호선생은 사진작가인데 처음 뵌 것은 1994년도였습니다. 그렇지만 1983년도에 열심히 봤던 인문지리지 ‘한국의 발견/ 한반도와 한국사람’ [전라북도]편의 주요 사진을 찍은 사람이니 사진으로 먼저 뵈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어린아이가 토란잎을 우산처럼 쓴 모습의 표지사진(순창읍 귀래정)에서부터 일상을 그냥 그대로 담아 오히려 별났습니다. 


사진작업이 아주 독특해서 죽음마저도 즉각적으로 다루는 작가답게 옹관작업을 흥미롭게 보시더군요. 그래 또 즉각적으로 협업을 하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크게 기대되는 협업입니다. 


‘한국의 발견/ 한반도와 한국사람’ [전라북도]편을 맞이한 것은 전주의 민중서관이었습니다. 그때가 고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본다고 엿장사를 하며 폐간된 [뿌리깊은나무]를 볼 때였는데, 동아일보에 [한국의 발견] 발간 광고가 있었습니다. 그 광고에 전라북도는 총판이 민중서관이라고 해서 전주 민중서관엘 갔는데 책이 비쌌습니다. 그래 보급판으로 전라북도 편과 제주도편 두 권만 구입(1983,09,17)했더랬습니다. 전주지리를 잘 몰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민중서관까지 물어물어 걸어서 다녀왔던 기억이 납니다. 시내버스를 타라고들 하는데 정차지점을 몰라 마음을 졸이는 것보다 차라리 걷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이후 지리적으로 상상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엿장사도 처음에는 창피해서 멀리 다녔는데 지리적으로 상상하며 다니는 것이 좋았습니다. 향토방위병으로 소집되던 첫날 선임이 지도 그리는 것을 어려워하기에 방법을 제시했더니 저더러 그려보라고 해서 바로 그려냈다가 그 이후 군사작전지도 그리는 것은 저의 일이 되었습니다. 다시 서울생활이 시작되었을 때도 서울에서 잘 살아보려고 아주 큰 종이에다 서울지도를 그리는 것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울지도니까 서울이면 한강인데 그 서울지도에다 신동엽시인의 시 [금강]을 써 넣었더랬습니다. 결국 서울에서 살지 못했던 것이지요.


옹기일로 자리를 잡을 때도 서울사는 처조카에게 무진장을 다 볼 수 있는 오만분의 일 지도를 사서 보내 달라고 하여 몇 날 며칠 지리적으로 상상했다가 자리를 보러 다녔습니다. 이렇듯 지리적 상상력은 저의 삶에서 주요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이렇게 체질화 된 탓인지 전라북도 문화판에서 전주 중심의 고답적인 담론이 갑갑했습니다. 갑갑한 것은 창출이 미약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결과 중심적 사고로 지리적 상상력이 부족하기에 과정에 대한 이해, 해석이 미미하니 창출이 어려운 것이려니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모항 박선생님을 그리워해 왔던 배경에도 이 지리적 상상력이 작용했겠다 싶습니다. 땅의 마음이 인문지리라면, 마음에도 땅이 있을 것입니다. 땅을 일구는 농부, 마음을 일구는 시. 농부시인으로서의 박선생님을 경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박선생님과 다르게 저는 오토바이를 욕망해왔습니다. 심장박동 소리가 나는 할리를 폼나게 타고 싶지만 그게 어림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체부아저씨들이 타는 정도를 소망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가족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못해보고 있습니다. 차라리 자전거를 타라고 하는데 고갯길을 피할 수 없는 산악지형이라 자전거로는 일상적인 나들이가 엄두가 나지 않아 어째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 그리 어렵냐고 하지만 이런 한계가 저는 좋습니다. 세상에 한계없는 삶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한계가 없는 듯 사는 삶’이 망쳐놓은 일들을 보면 차라리 한계가 좋습니다. 그래 선생님께 가보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언제 우체부아저씨 오토바이 소리에 편지말고 이 옹기장이가 짠하고 나타날 수도 있겠습니다. 가/죽/바/지/입/고. 


2022. 11. 22.

옹기장이 이현배 드림. 





*

23개월간 연재했던 '벗에게 시간을 묻다'는 이번 호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긴 시간동안 함께 해주신 이현배 옹기장, 박형진 시인, 그리고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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