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 서학동예술마을 갤러리의 전시
추운 계절을 따뜻하게 밝혀내다
이번 겨울 서학동예술마을은 유난히 춥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눈이 내리고 서학동의 소담한 골목들은 꽁꽁 얼기 일쑤다. 더군다나 서학동의 초입에서는 도로 정비를 위한 큰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공사 소음은 고사하더라도 당장 통행조차 힘들어 건물 사이의 좁은 새실로 진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문화예술을 향유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던 시민들도, 한옥마을에 방문했다가 들렀다가던 관광객들도 발길이 끊겼다. 그러나 이런 힘든 시기에도 예술인들은 새로운 작업을 발표하며 창작혼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 ‘따뜻한 그늘’의 현장을 들여다 보았다.
서학동의 입구에 서있는 주황색 건물은 ‘서학아트스페이스’다. 갤러리와 카페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를 겸하고 있는 이곳에서는 12월 8일부터 21일까지 ‘김하윤 개인전, 울퉁불퉁 간다’가 진행되었다. 전시장은 생명력 넘치는 초록들로 가득찼다. 파프리카, 아보카도, 포도 등 건강해지는 열매들이 몽땅 열린 식물 위로 나비와 벌이 모여들고, 나무늘보 한 마리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며 무해한 숨결로 그들과 호흡했다. 진정한 관계를 향한 작가의 열망이 엿보이는 듯하다. 전시장의 한켠에는 작가의 작업실도 재현되어 전통 안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완성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옆 건물인 ‘전주 아트갤러리’에서는 김누리 개인전 ‘상점의 초상’이 이어졌다. 상실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상점의 초상’은 그와 관련된 것이었다. 김누리 작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울고 한탄하기 보다는 사라질 것들을 팝아트으로 그려 영원히 기록하는 편을 택했다. 김 작가는 그 중에서도 상점에 주목했다. 상점은 그 속에 많은 이들의 삶을 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빠르게 대체되어 잊혀지기 때문이라고. 전시는 12월 7일부터 12월 18일까지 계속되었다.
서학동사진미술관과 서학예술마을갤러리에서는 예술마을에 적을 두고 있는 작가들의 전시가 마련되었다. 이적요 작가는 개인전 38회, 국내전 104회, 국제전 11회를 치루어 낸 베테랑 서양화가이다. 서학동에서 ‘적요, 숨 쉬다’에서 커피를 내리는 카페지기이기도 하다. 그의 서른 아홉 번째 개인전이 12월 6일부터 18일까지 서학동 사진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회색의 본능’이었다. 여러 색의 감정이 뒤섞인 삶은 검정이고, 죽음이 흰색이라면 그 중간쯤에 위치한 고독은 회색일 것이라는 작가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었다. 전시실에는 캔버스 위에 실과 단추를 꿰어내어 완성된 초상화들이 전시되어 손님들을 맞이했다. 작가가 올해 처음 발표한 ‘소년이 있다’와 ‘소녀가 있다’ 또한 만나볼 수 있었다. 이후에는 크리스마스까지 김지연 관장의 ‘따뜻한 그늘’의 출판기념 展이 이어져 이어지는 한파로 꽁꽁 언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냈다.
서학예술마을갤러리에서는 서학예술마을도서관의 개관전시 ‘서학, 12가지 색깔展’의 일환으로 한숙 개인전, ‘기도’가 진행되었다. 설치예술가인 한숙 작가는 2011년 서학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후 공방 ‘초록장화’를 운영하며 여러 활동을 펼쳐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색색깔의 유리조각을 알맞게 배치하여 이어 붙이고 800도의 가마에 구워낸 공예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12월 10일에 전시실에서 있었던 와인 파티에서 ‘유리공예는 예술가인생에서 처음이라 많이 찔리고 다쳤지만 주변의 많은 예술가들의 도움 덕분에 완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는 1월 3일부터 30일까지 양순실 개인전 ‘사적 언어’가 막을 연다. 양순실 작가는 그동안 일상과 시선 사이의 공간을 주목해왔다. 오로지 시선만이 교차되는 고요한 공간 속에서 작가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것들을 그려낸다. 특히 작가가 가장 최근에 작업한 10여 점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더욱 뜻깊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서학예술마을의 김소형 팀장은 “산중 은자처럼 고요하게 칩거하면서 작품에만 열중하고 있는 작가의 진지하고 치열한 작품세계를 대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만큼 새해 첫 전시로 강력 추천한다”고 전했다.
신동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