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이 깊을수록 문화가 중요하다
글 장세길 전북연구원 연구위원
문화, 경제적 가치에서 사회적 가치로
198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말이 있다. 창조산업이다. 무형의 자산에 창의적 아이디어를 더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게 기본 개념이다. 한국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깊이 개입한 2000년대부터 우리 생활에서도 창조산업이 붐처럼 일었다. 이때부터 문화는 생활양식이 아니라 ‘돈’이 되었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중요한 문화였던 제의적 축제는 관광축제라는 이름으로 외지 관광객을 유인하는 상품이 되었다. 문화콘텐츠라는 분야가 새로 만들어진 뒤로 문화는 중요한 미래산업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빈곤과 범죄, 지역 불균형 등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드러나며, 경제주의적 시각과 신념을 대체할 만한 사회적 가치가 고민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물려 문화계에서도 경제성을 너무 강조한 결과 문화가 도구화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창조산업의 산파였던 영국조차 사회통합의 기능을 문화로 해결하려고 시도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인데, 정신·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에게 약물적 치료보다 커뮤니티 참여와 문화 활동 등 비약물적 도움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게 하는 의료적 행위를 말한다. 이처럼 문화는 경제적 가치가 강조되던 시대를 지나 사회적 가치가 강조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문화치유, 문화적 재생, 문화돌봄 등이 문화의 사회적 가치를 보여주는 활동이다.
현대사회의 위험과 문화의 역할
현대사회를 진단하는 많은 사회학자에 따르면 현대사회의 위험은 이전 사회와 다르다. 개인은 파편화되었다. 사회적 신뢰나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는 토대는 무너졌다. 개인에게 문제가 생기면 공동체가 보호해주던 공인된 장치도 사라졌다. 파편화되고 공동체적 토대와 보호망이 사라진 현대인 각자는 쉼 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며, 예전보다 더, 자주 불안해하며 살아간다. 존재론적 안전에 대한 불안정성 속에서 개인은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을 형성하지 못한 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성과달성에 매달린다. 현대사회를 “피로사회”로 부르는 이유이다.
죽도록 일을 하나 다른 이와 경쟁에서 밀려난 현대인은 늘 정신·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정신과 진료가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도 무관하지 않다. 공동체 토대가 무너져 개인이 파편화된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이뤄지는 의료행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물론 문화가 존재론적 안전에 대한 불안정성으로 힘들어하는 현대인의 정신·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의료행위보다 앞서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현대사회의 위험이 깊을수록 문화가 더 중요하며, 그래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서 문화의 공적 기능에 주목하자는 게 말하고 싶은 바다. 실업과 빈곤 같은 자본주의 위기에 대응하여 사회복지가 공적으로 등장하였듯 말이다.
문화(활동)가 공동체를 만들게 하고, 공동체에서 문화(활동)가 파편화된 개인을 새로이 묶는다. 이러한 과정이 쌓여 현대사회의 위험에 대응하는 공동체성이 되살아날 수 있다. 익명의 관계가 지배하더라도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친밀한 관계를 원한다. 친밀공동체는 사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공공 영역과 연결되기도 하고 사회적 공공성을 확장하기도 한다. 현대인이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사회적 연대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문화에 있다.
하위문화인 예술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예술 활동은 창의성이 기반이고, 그래서 예술 행위자는 창의적인 방법으로 정체성을 발현하는 개인이다. 예술 행위자의 창의적 활동인 작품(객체, 대상)을 관객(개인, 시민)이 관람하는 행위는 개인의 정체성이 투영된 미적 특성에 대한 가치판단(비평)이다. 시민의 연대는 가치의 공유와 공통의 기억에서 비롯된다. 자기 정체성을 발현한 예술작품을 관람하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통의 감각(감정)이 발생하고, 이러한 감각이 쌓여 사회적 연대로 이어진다. 문화에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소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걸음마를 뗐으나, 갈 길이 먼
걸음마를 뗀 문화의 사회적 기능, 갈 길이 멀다. 기초연구부터 현장에서의 실천까지 모든 게 부족하다. 문화 활동이 사회적 연대로 나아간다고 말하나 이를 증명하는 데이터를 얻기 어렵다. 현장에서는 문화 활동으로 사회적 관계망이 만들어졌다고 늘 말하지만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ESG 등 사회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문화 현장이 움직이지만. 주류가 되지 못한다.
예술치료·치유라는 분야가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나 여전히 개념은 혼란스럽고 법적 기반도 미약하다. 예술치료·치유보다 훨씬 뒤에 시작하였지만, 치유농업, 산림치유, 해양치유 등을 법에 명시하고 국가 지도자 자격증을 부여하면서 활동 분야를 넓히는 다른 분야와 비교된다. ‘문화키움’, ‘문화돌봄’이라는 개념도 새로이 만들어졌으나 독자 영역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통합돌봄이라는 이름으로 문화를 접목하여 돌봄을 실천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돌봄은 수단으로서 문화의 활용이다. 문화활동가도 사회복지에서 말하는 돌봄과 문화에서 말하는 돌봄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지 못한 채, 사회복지에 예술을 접목한 데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사회는 빈곤, 범죄, 기후 위기, 정신·심리적 문제, 전쟁, 사회적 배제 등 다양한 문제가 있다. 문화에는 문화적 소통, 사회적 연대의 힘, 맥락적 이해 등 다른 분야와 다른 특징이 있다. 이는 다른 분야가 해결하지 못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위험을 해소하는 힘이 된다. 도시재생에서 문화적으로 접근하여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예가 대표적이다. 문화의 사회적 기능을 실천하고 효과를 증명하는 일, 현대사회의 위험을 해소하는 문화의 무한한 힘을 인정받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