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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 | 기획 [도시의 유산]
장수의 가야문화, 고대사의 바로미터를 다시 세우다 ①
장수에서 깨어난 미지의 왕국, 반파국
신동하 기자(2023-02-14 11:14:55)

고대사의 '바로미터'를 다시 세우다




백두대간의 품 속에 자리한 장수군은 전국에서 세 번째로 작은 지자체다. 이 작은 산골에서 근 몇 년 동안 어마어마한 규모의 가야문화유산이 모습을 드러내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표조사 결과 봉화 140여 개소, 고총 240여 기, 거대 규모의 성곽과 제철유적이 발견되었고, 이들을 심층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발굴 또한 진행 중이다. 이 유적과 유물들은 장수를 고문헌 속 미지의 왕국이었던 반파국으로 지목하기에 더욱 의미 있다. 학자들은 한반도의 가야사 전체를 다시 써야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현장을 저널이 안내한다.

글 성륜지·신동하 기자






장수에서 깨어난 미지의 왕국, 반파국
최근 출간된 '전라도 천년사'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전라도오천년사 바로잡기 전라도시민연대’가 식민사관에 근거한 내용이 수록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하며 현 집필진을 배제한 재검증위원회의 설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역의 옛 지명을 ‘일본서기’를 참고하여 표기했고, ‘일본서기’는 과거 일제가 식민사관을 주입하기 위해 만들어낸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할 때 쓰이는 자료이기에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장수 지역을 반파국이라고 표기한 것이 대표적 왜곡이란 것이다.

그러나 주류학계와 편찬위원들은 임나일본부설은 한국과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 사실상 폐기된 학설이며, ‘반파’라는 표현은 일본서기 외에 중국의 ‘양직공도’에도 명시되어 있어 식민사관에 기초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여기에 ‘전라도 천년사’ 편찬 작업을 주관한 전라북도는 봉정식을 하루 앞두고 잠정 연기해 논란을 가중했다. 반파국은 어떤 나라였기에 계속해서 이런 논란을 빚는 것일까?


자료에 따르면, 가야소국인 반파국이 513년부터 515년까지 기문국을 두고 백제와 3년 전쟁을 치룰 때 봉후제를 운영했다고 한다. 다만, 이에 대한 기록은 우리나라 문헌에서 찾아볼 수 없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결국 강국인 셋에 밀려나 삼국사기에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파국의 경우 중국의 자료인 ‘양직공도’와 일본의 자료인 ‘일본서기’에 기록되었다. ‘양직공도’는 중국 양나라 원제 소역이 양나라에 파견된 외국 사절을 그림으로 그리고 해설한 자료이며, ‘일본서기’는 일본 최초의 정사로 신대부터 지토천황까지 편년체로 기록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 반파가야의 위치로 거론된 곳은 세곳이다. 성주와 고령, 그리고 장수. 가장 먼저 반파가야의 위치로 주목받은 곳은 성주다. 신라시대, 성주의 이름은 본피현이었고, ‘본피’라는 지명이 ‘반파’라는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굴 조사 결과 신라의 토기만이 출토되어 가야의 영역이 아니란 결론이 났다. 같은 시기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에서도 ‘본피’란 이름이 그대로 표기되어있다.

두 번째로 주목받은 곳은 고령이다. 반파라는 이름은 당시 고령에서 세력을 떨치던 대가야의 멸칭이라는 설이다. 이는 일본서기와 양직공도에 등장하는 ‘반파국’이 ‘삼국지 동이전’에 등장하는 ‘반로국’의 오기라는 추측에서 출발한다. 이때, 일본서기와 양직공도의 ‘반파’는 각각 ‘절룩거리며 의지하다’와 ‘배반하여 발버둥치다’라는 뜻이므로 반로국을 비꼬는 말이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를 중심으로 새로운 주장이 대두되었다. 반파국이 우리 지역의 장수라는 주장이다. 백제 때, 장수를 가리키는 행정지명은 백해군이었다. 문헌에 따르면 당시 ‘백’의 음은 ‘파’였고 따라서 지명은 ‘파해’라고 발음되었다. 이는 일본서기의 ‘반파’를 일본어로 발음한 ‘하헤’와 매우 유사하다. 장수가 영남과 호남의 접경에 위치하고 육로와 수로를 이어주는 교통편에 있다는 사실은 주장에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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