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가야사,
앞으로 더
'가야'
합니다
성륜지 기자
“일어나시오. 세상에 나가야 전북에도 가야가 있다는 걸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지 않겠소.”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주인공은 수천년 간 풀리지 않은 마야 문명의 비밀이자 고고학 사상 최고의 발견이 될 유물을 찾아 떠난다. 전북에도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전북 가야사를 밝히기 위해 유물과 유적을 찾아 장수로 떠난(?) 사람이 있다.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장 곽장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로부터 인디아나 존스 처럼 흥미진진한 가야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쓴 가야 역사
강산이 네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을 전북 가야사 연구에 바쳐온 그는 가야사를 두고 ‘유적과 유물로 쓰이는 역사’라고 말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를 다룬 삼국사기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가야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가야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혹독한 일이었다.
곽 교수는 배낭을 메고 두 발로 뛰어다니며 40년간 잠들어있던 가야를 깨웠다. 잠꾸러기 가야를 깨우고 보니 가야를 상징하는 으뜸 유적들이 이곳 바로 전북에 있었다. 긴 시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가야사를 연구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바로 그 유적들이었다. 곽 교수는 오래 잠들어있던 가야를 깨웠으니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영남지방에만 몰려있던 가야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 것이다.
“가야에 대한 무관심이 생각보다 심각해 고단했습니다. 가야 이야기를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요. 다만, 처음에 생각했던 그 다짐은 40년 동안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습니다. 재밌고 즐겁고 신명 나게 가야를 연구했죠”
유적을 찾고 알리는 지표조사는 돈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역사의 생명력을 불어넣는 발굴조사는 예산 지원 없이는 할 수 없다. 발굴 조사를 통해 가야의 유적과 유물을 검증받아야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아 역사로 평가받기 어려웠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 복원을 포함하면서 예산 지원이 시작됐고, 곽 교수는 5년 동안 하루를 일 년처럼 발굴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가 시작되면서 흥미로운 빅데이터가 발표됐다. 유물은 영남에 있는 반면에 유적은 전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북 가야사의 핵심, 봉화와 제철유적
“배낭을 메고 전북 동부 산하를 누벼 보니 곳곳이 봉화산이었습니다. 지명은 그 지역의 역사라는 격언이 있어요. 이 봉화산 자체는 전북 동부의 역사인 거죠. 전북 동부 봉화산에 역사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는데 검증 보증이 안 되면 역사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 무엇보다 발굴이 중요했죠. 문재인 대통령과 송하진 지사님이 가야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발굴이 시작됐습니다.”
전북가야사의 정체성은 봉화다. 이는 곧 반파 가야의 결정적 증거이기도 하다. ‘일본서기’에는 반파 가야가 봉화를 이용해서 백제와 3년 전쟁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야 봉화가 어디에서 발견되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전북 동부 이외의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봉화는 변방의 위급한 정보를 중앙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던 시설이므로 봉화가 있다는 것은 곧 나라가 있다는 고고학적인 증거다. 봉화망을 연결하면 그 나라의 영역을 알 수 있는데 봉화로를 복원해보니 여덟 갈래가 복원됐고, 그 여덟 갈래의 봉화로의 최종 종착지는 장수군 장계 분지였다. 변방의 정보를 취합하는 종착지는 왕이 있는 곳이다. 결론적으로 장수군 장계 분지가 왕이 있던 정치의 핵심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봉화로의 최종 종착지에는 국가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대형고분이 있어야 한다. 장수군 장계뿐지 동남쪽 백화산에서 뻗어 내린 산자락 정상부에 가야고총 120여 기가 무리지어 있었다. 왕과 왕비가 잠들어있는 무덤을 ‘릉’이라고 하고 주인을 모르면 ‘총’이라고 부른다.
곽 교수는 장수에서 240개의 가야 고총을 발견했고, 그것을 30여년을 바쳐 학문화(?) 시켰다. 예산이 지원된 지난 5년 동안 검증하고 고증하기 위한 발굴조사를 해보니 모두 가야 유물이었다. 방사선을 이용해 유물·유적의 절대 연대를 측정하는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 의뢰에서도 존속기간, 운영주체, 발견했던 유물들이 모두 일치했다. 첨단과학이 가야 봉화 연대를 확정해준 순간이다.
철을 생산하던 철산지는 세상의 중심이자 거점이었다. 영남 학자들은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고 평가했다. 철의 왕국이라면 철광석을 녹여 철을 생산하는 제철 유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아직까지 영남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으나 전북 동부는 전체가 제철 유적이다.
남북을 통틀어 한국 고고학계에 보고된 제철 유적이 약 600개인데 그중 250개가 전북 동부에 있다. 물론 제철 유적이 있다고 가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발굴이 시작되었고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른다. 다만 영남에서는 제철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철의 왕국이라 불리는데 전북은 유적이 있음에도 가야 문화에서 배제되는 것이 곽교수는 안타깝다고 말한다.
가야 중에 가야가 전북에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활용하기 위한 길을 찾고 있다. 전북가야는 백두대간 품속에 있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잠재력이 엄청나다. 이를 활용해 역사 문화 관광 자원화 한다면 관광산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
가야 봉화는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나오는 아몬딘 봉화와 신호방식이 흡사하다. 레이저 아트를 활용하거나 전북가야 박물관을 지어 수장고에서 잠만 자는 유물을 전시에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은퇴를 준비 중인 곽장근 교수는 지난 9월에 출간한 <백두대간 품속 가야 이야기>를 시작으로 남은 4년 동안 1년에 한 권씩 대중서를 출간할 목표를 갖고 있다. 40년 동안 가야만 보고 직진해온 그는 친구들과 막걸리도 한잔하고, 좋은 경치를 보며 딸과 둘레길 거니는 시간을 고대하고 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전북가야사는 이제 첫걸음마를 뗐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던 발굴을 통해 실체를 밝혔으니 앞으로가 더 중요합니다. 전북 가야는 꼭 기억되고 알려져야 할 우리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