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3.2 | 연재 [백희정의 음식 이야기 2]
이별하는 시간
백희정(2023-02-14 14:28:31)



이별하는 시간

백희정



‘꺼 어-꺽, 꺼 어-꺽’



어둠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무엇인가를 게워내는 듯한 소리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분별할 새도 없이 나는 화들짝 놀라 공이 튕겨 올라오듯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더듬더듬 스위치를 찾아 방에 불을 켜고, 본능처럼 엄마에게로 향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의 입가에 흥건하게 흘러내린 이물질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누운 채로 몸을 비틀어 침대 난간을 붙잡고 구역질하는 엄마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나는 서둘러 엄마의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한 손으로는 등을 두드렸다.



‘엄마 괜찮아? 엄마 괜찮아?’
‘......’



다급한 마음에 혼잣말을 허공에 토해낸다. 나는 석션기로 가래를 흡인하고, 체위를 고쳐주고, 창백해진 얼굴을 매만지며 엄마가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좀처럼 눈을 뜨지 않는 엄마를 바라보며, 잠시만이라도 나를 바라보기를 원했다. 그저 눈빛으로라도 괜찮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내게 말해주었으면 했다. 아니, 그저 바라만 보아도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침대 위에 축 늘어진 작은 몸,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엄마는 텅 빈 허깨비 같다.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엄마의 신음이 내 마음을 자꾸만 불안하게 만든다. 다시 엄마 이마를 짚어보고 손을 잡아본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한참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바라보고 눈을 감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눈을 떠보니 창밖이 훤하다. 날이 밝고 간밤에 확인하지 못한 흔적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코피가 흘러내린 자국, 자장면 색처럼 검은 배설물, 발등에 생긴 수포들, 침대 시트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아직 마르지 않는 진물 자국.

새벽 6시가 지나서야 엄마의 숨은 조금 편안해졌다. 손에서도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켠 후 지난밤의 흔적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지워나갔다.

며칠 동안 긴장한 탓인지 오전 내내 머리가 묵직하고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머릿속은 멍하고, 목덜미와 어깨, 등에 뻐근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 좀 정신이 들려나 싶어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거실 탁자에 앉았다. 노트북을 켜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연달아 메시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인터넷 접속을 뒤로하고 메시지를 먼저 확인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부고(訃告)였다.

그녀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가 신호가 가고 있는데 전화를 끊었다. 지금 누구보다 경황없을 그녀에게 전화라니, 나는 나의 경솔함을 탓했다.

지난 겨울 그녀는 췌장암이었던 어머니를 진안에서 전주로 모시고 왔었다. 수술과 항암을 포기한 터라 몇 개월이라도 곁에 모시고 자신이 보살펴드리고 싶다고 했다. 작년 여름, 그녀는 어머니의 암이 다른 장기로까지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내게 몇 번의 전화를 했다. 물김치를 어떻게 담가야 맛있는지? 녹두죽은 어떻게 끓이는지? 소화가 잘 안되는 노인의 경우 식사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아마도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입맛이 당겨 하는 음식을 이것저것 해드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녀와 나의 처지가 비슷한 상황인지라 우리는 서로 어머니에 대한 애달픈 마음을 나누며 긴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나는 그녀의 수고로 조금이나마 어머니가 기력을 회복하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했다.

나에게도 최근 몇 년 사이 이별의 문 앞에서 돌아선 순간들이 있었다. 엄마 고관절이 골절되었을 때,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의사는 번번이 내게 으름장을 놓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와 함께였다가 혼자가 되는 나를 상상했다. 혼자 마주하는 밥상, 혼자 자는 잠, 살아가면서 혼자 마주하게 될 엄마의 흔적들 앞에서 나는 괜찮을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가 혼자가 되는 상실감을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실과 마주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제까지 비혼으로 나는 별다른 두려움 없이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비혼 친구들이 있었고, 소소한 나의 욕망을 실현하며 사느라 비혼으로도 외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와 이별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이별하는 시간!
그 시간이 저녁이 될지, 새벽녘이 될지, 평일이 될지, 주말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이별을 혼자 맞이할지 다른 형제들과 함께 맞이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갑자기 엄마가 열이 오르거나, 토하거나, 의식이 희미해지는 날이면, 그 고비고비를 넘길 때마다 노심초사하면서 이별이 익숙해지길, 아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요 며칠 엄마 상태는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손에서는 여전히 냉기가 돈다. 언젠가는 내게도 엄마 손을 놓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술렁였던 마음을 달래며 저녁에 조문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