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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 | 연재 [이휘현의 숨은 책 좋은 책]
나로 시작하는 글쓰기
오윤,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
이휘현 KBS전주 PD(2023-02-14 14:42:46)



'나'로 시작하는 글쓰기

이휘현 KBS 전주 PD







손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독자엽서를 우체통에 넣으려 할 때 여자친구가 갑자기 내 팔을 잡았다.
“오빠 잠깐만!”
여자친구는 내 손에서 엽서를 가져가더니 입술로 쪽 소리 나게 키스를 날렸다.
“이건 행운의 뽀뽀야.”
내 가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휴, 이 요물!” 우체통에 엽서를 집어넣은 나는 여자친구의 손을 붙들고 곧장 비디오방으로 달려갔다.
두 달 후 아파트 우편함에 소포가 하나 배달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뜯어보니 계간 <창작과비평>이 들어있었다. ‘와! 내 독자엽서가 뽑혔구나!’
책 속에는 간단한 편지가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되어 있었다. 소정의 원고료는 없고 대신 1년 동안 계간지를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행운의 키스 덕분이야.’ 여자친구에게 삐삐치기 전 우선 책 뒤편의 독자투고란을 뒤져보았다. 내 이름 세 글자와 독자엽서에 썼던 내용이 토씨 하나 빠지지 않고 그대로 박혀있었다. 생애 처음 종이에 인쇄된 내 글을 보게 된 순간! 아, 그 경이로운 감정을 잊을 수 있을까. 1998년 7월은 그렇게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그해 여름 이후 나는 운 좋게도 여기저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는 행운을 누렸다. 독자투고로 시작한 원고는 대학 신문과 잡지로 이어지고, 학과 교수님의 지도하에 책 집필로 연결되었다. 2003년 11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1년간 쟁쟁한 필진들과 함께 <한겨레>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건 내 글쓰기 커리어의 정점을 이룰 것이다. 그 사이 자유기고가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매체에 글을 제법 팔았다.
2005년 1월 방송국 입사라는 현실적인 선택이 없었다면, 내 집필 경력은 좀 더 고조되고 확장되었을까, 아니면 훅 사그라들었을까. 알 수 없다. 다행으로 생각하는 건 방송국 생활이 내 글쓰기의 생명을 끝장내버릴 것이란 우려와 달리, 십수년 피디 경력의 대중적 감각이 내 글과 만나 나름의 상승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내 글이 처음 인쇄된 걸 보았던 그 짜릿한 순간으로부터 사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내 곁에서 멀어져 추억으로 박제되었다. 혈육이 몇 명 떠났고, 내 청춘을 빛내주던 책들은 먼지가 쌓여 서재 한 귀퉁이에서 바래가고 있다. 그 시절 만났던 여자친구는 이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삐삐도 사라졌다. 대신 내 주변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겨나고 또 새로 읽는 책들이 쌓여간다. 일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리하여 어쩌면 추억은 현재진행형으로 달려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앞만 보고 질주하는 시간을 붙들 재간이 나에겐 없다. 그 누구도 없다. 지나가 버린 시간은 기억이라는 매개체로 연명하지만, 그 저장고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다는 게 흠이다. 뇌가 아닌 다른 저장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의 금고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글’을 떠올린다. 영상매체는 시각의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추억을 꺼내 들었을 때 마음을 다치기 쉽다. “아! 나 이때는 정말 젊었었는데….”
반면, 글은 아련하다. 희미하지만 포근하게 다가온다. 마음 다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어릴 때 어른들이 그렇게 일기를 쓰라고 우리 어린이들을 닦달했던 것일까. 정작 자신들은 쓰지도 않았으면서…. 오랜 시간 일기를 써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정도의 근면성실함은 비범함을 동반해야 가능하다. 대신, 살면서 한두 번 정도 글쓰기 이벤트를 뻑적지근하게 벌여보는 것은 어떨까? “나 이번에 내 인생을 글로 한 번 정리해 볼란다. 내가 정말 잘 살았나? 어디 보자. 그러니까… 내가 세 살 때 말이야….”

오윤이라는 사람이 서른을 넘긴 나이에 처음 자신의 삶을 글로 기록해야겠다는 마음먹었을 때, 어쩌면 그는 인생의 큰 위기에 봉착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정을 찾지 못한 직장 문제, 결혼 여부를 둘러싼 여자친구와의 갈등 등등. 기성세대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여러 진통으로 그는 산고를 겪어야 했을 것이다. 한 모임을 통해 ‘나’로부터 시작하는 글쓰기를 제안받은 그는, 어쩌면 처음에는 자신의 우울을 달랠 심산으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예상보다 글이 술술 잘 풀려나왔나 보다. 그가 쓴 원고를 모임에서 발표하자 좋은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는 용기가 생겨 글을 좀 더 길게 써보기로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기억은 힘이 셌다. 개인사는 자연스레 시대와 엮였다. 1976년생인 그의 인생 궤적 속에도 5·18 광주와 6월 항쟁, 88올림픽과 서태지, IMF 사태, 2002년 월드컵, 그리고 여러 차례의 대통령 선거 등이 흔적을 남겼다.
기억은 뿌리 찾기로 이어졌다. 아버지의 역사와 어머니의 역사. 아내와 그 아내의 가족사로 뻗어 나갔다. 격동의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그의 아버지가 겪었던 ‘전라도인으로서의 자의식’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던 듯싶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가 공무원인 아버지의 발령 문제로 학창시절 전라도 목포와 광주를 오가며 겪어야 했던 심적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전라도 차별’이라는 벽 앞에서 매번 좌절했던 공무원 아버지는 아들에게만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주홍글씨를 씻어내 주기 위해 무던 애를 썼다. 결과적으로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성인이 된 아들은 ‘전라도 출신’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폭로했던 것이다. 오윤은 그렇게 몇 년간 스스로의 삶과 기억을 더듬어 써내려간 원고를 묶어 책으로 냈다. <내 아버지로부터의 전라도>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나는 이 책을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우선 제목이 내 시선을 끌었다. 타이틀에 경상도나 충청도가 박혀있었다면 나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전라도’라는 세 글자가 내 가슴에 콕 박혔다는 걸 고백하는 바이다.
그날 나는 속는 셈 치고 이 책을 바로 사서 읽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이 책에 금세 빨려들고 말았다. 웬만한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다. 그러면서 자꾸 내 인생이 책 속 내용과 겹쳐 보이는 흥미로운 체험을 덤으로 얻었다.
결국 나 혼자 읽고 버려두기 아까워 이 지면에 소개한다. 다만, 한국 현대사 속 ‘전라도’ 그리고 ‘전라도인’의 의미를 읽어내는 시선이 다소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자그마한(?) 흠만 걷어내면 이 책은 여러분에게 다양한 감정들을 선사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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