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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3 | 칼럼·시평 [문화칼럼]
후쿠시마를 머리에 이고 비틀거리며 나아가기
글 정주하 사진가·완주자연지킴이연대 대표(2023-03-15 15:37:05)

후쿠시마를 머리에 이고 비틀거리며 나아가기

글 정주하 사진가·완주자연지킴이연대 대표



일본 정부가 다가오는 봄, 사월부터 후쿠시마 앞바다에 12년 동안 수조 통에 모아놓은 핵-오염수를 방출한다고 한다. 아직 정확한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은 듯한데 사월쯤이라고 하니, 봄이 오고 그 따스한 기운이 온통 우리를 감싸고 있을 때 시작하는가 보다.

전 세계인 모두가 함께 경험한 후쿠시마 도쿄전력 제1 원전 1, 2, 3, 4호기가 폭발한 것은 2011년 3월 12일부터다. 그 전날 진도 9로 확인되는 지진이 있었고, 그 여파가 쓰나미로 이어져 일본의 동쪽 해안을 덮쳤다. 시작은 쓰나미였으나, ‘우리/세계인’에게 공동으로 다가온 ‘고통의 중심’은 ‘핵/방사능’에 의한 ‘것’이었다. 쓰나미로 인한 고통 역시 간과할 수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자연재해로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일 터이다. 이는 일본만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사전대비가 너무도 어렵기에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핵발전소의 폭발과 더불어 일어나는 사태는 사뭇 다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발전소 주변 방파제 높이의 설계 미숙과, 낮은 지면에 설치되었던 비상 발전기 문제는 인간의 오만과 연계된 ‘과학/인간’적 실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과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성장한 일본의 경제는 바로, 이 기술/과학에 근거하고 있다. 아시아의 맹주 혹은 탈아시아를 주창할 만큼 성장했다고 하는 일본은 그 바탕에 기술/과학을 두고 있었으며, ‘안전신화’라고 하는 오만한 자신감을 대내외에 표방하기에 이른다.

현재, 후쿠시마 도쿄전력 주변에 모집된 오염수는 180만 톤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숫자는 의미가 없다. 이미 12년 동안 땅속으로 스며든 오염수는 그 양을 계량할 수 없으며, 방사능 오염 농도를 ‘계측/추측’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폭발한 발전소 주변에 동토 차수 벽을 설치하여 오염수 방출을 막겠다고 하였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폭발 당시 원자로 안의 온도는 1,200도까지 올랐으며, 이에 따라 녹아버린 핵 물질은 액체 상태로 땅속으로 파고들었고, 이를 식히기 위해 쏟아부은 바닷물은 곧 핵물질과 뒤섞여 땅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정확한 계량은 어렵지만, 지금도 폭발한 원전으로부터 방출되는 오염수는 상당할 터이다. 비와 눈 나아가 바람이 이 지역을 불특정하게 흐르면서 퍼 나르는 방사성 물질은 인간의 과오로 부터 형성된 형벌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곧, 돌아오는 사월에 오염수를 방출하는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계획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를 공공연하게 발표하면서, 알프스(ALPS, 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의 존재를 앞세웠다. 그러나 오염수로부터 방사성 핵종을 제거한다는 이 장치가 완벽하지 않음은 이미 여러 매체와 연구소 등에서 밝힌 바 있다. 특히, 삼중수소로 알려진 트리튬(Tritium)은 제거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일반 수소보다 3배나 무거운 질량의 이 핵종이 수소폭탄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아가 최근에는 알프스가 제거할 수 있는 핵종이 62가지인데, 이중 절반이 넘는 핵종에 대해 처리를 철회했다고 한다. 무슨 이유일까? 시간과 돈을 아끼자는 것일까?

다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원점에서 생각해보면, 왜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세워 발전된 전기를 모두 도쿄로 송전하였는가? 나아가, 도쿄 주변 해안에는 왜 핵발전소를 건설하지 않는가로 의문이 모여진다. 다른 산업재와는 달리 에너지 문제는 생산의 대가가 월등 일반적이다. 모든 국민은 혜택과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 작은 가정이든 큰 산업체든 사용하는 에너지양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소비하고 있으며, 그 대가 역시 비례하여 지출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그 에너지 생산으로 말미암은 피해와 처리의 대가는 형평이 맞지 않는다. 도쿄에서 소비하는 전기 에너지 생산을 후쿠시마에서 감당하고, 그에 따른 피해를 후쿠시마 주민들이 떠안는 지금의 구조 근간에 있는, 생산과 소비의 지역적 불균형 문제는 매우 심각한 인권 유린이 아닌가 싶다. 일본에서, 그리고 세계인들이 후쿠시마를 ‘에너지 식민지’라고 부른다면 무리한 일일까? 혹은, 이러한 지적이 타당하다면 지금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은폐하고자 하는 핵 오염수 방류의 이유와 변명은 그저 처리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꼼수만이 아니라, 아예 이를 희석해 모두의 식탁에 올려놓음으로써 없었던 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



#풍경 1 도쿄전력 제1 원전에서 북서쪽으로 14km 쯤 떨어진 나미에 마을에는 “희망목장”이 있다. 이곳에는 아직도 약 200여 마리의 소들이 살고 있다. 핵발전소 폭발 당시 정부에 의해 ‘살처분’이 내려진 것에 저항하며 당시 목부로 일하고 있던, 요시자와 마사미씨가 12년째 돌보고 있다. 몇 년 전 요시자와씨를 만나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을 지속해서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 소들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저 엄청난 사건의 증언자이기에 죽일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풍경 2 지금 우리가 방류를 우려하고 있는 오염수 수조통은, 후쿠시마현에 광범위하게 걸쳐있는 료젠 산맥 계곡 요소요소에 산재한 오염토 더미와 매우 닮아있다. 이 오염토는 검은색 1톤 백에 담겨 마치 피라미드처럼 혹은 제방을 쌓아 올린 모습처럼 거기에 그렇게 있다. 때론 초록색 비닐로 덮여 있기도 하고 때론 그대로 방치되어있기도 하다. 그곳을 순례하다 보면, 가끔 주변 주민들이 걸어놓은 “오염토 재사용 반대”라는 깃발이 애처롭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만난다.

#풍경 3 이미 많은 매체에서 도쿄 제1 원전 부지 주변에 있는 오염수 수조 통을 보여주고 있다. 그 통의 숫자를 헤아리기 싫은 이유는, 그 오염수의 합이 120만 톤이든 180만 톤이든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나아가 그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방류된 오염물질과 앞으로 방류될 오염물질은 시간을 품고 우리를 공격해 올 대오를 정렬하고 있을 뿐이다. 공중에서 찍은 수조 통의 정연한 정렬은 합리적 사고의 잔인한 모습이다. 얼핏 멋지게도 보이는 군대 열병과 닮아있다.

이 세 가지 풍경이 지금의 후쿠시마다. 희망목장의 요시자와씨가 작은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이곳 후쿠시마에는 증언자가 필요하다. 증언과 기억은 모두 ‘봄’을 ‘기억/경험’ 하면서 성립된다. 그 형성된 풍경을 흔적없이 지우고자 하는 것이, 살처분이고, 오염제거이며, 방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있었던’ 풍경은 ‘기원’(가라타니 고진)을 머금은 채 시간 속으로 방류되고 우리의 기억과 증언은 녹처럼 슬어져 갈 것이다. 따라서, 이 세 개의 풍경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이유는 우리의 기억이 미래를 향한 증언으로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오염토를 재사용하여 그 흔적을 지우고,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여 모두에게 분배함으로써 고통이 시작된 기원의 이유를 흐리게 하고, 피폭된 소를 살해하여 기원 이전으로 돌리고자 하는 시도는 모두 ‘증언 불능’과 이어진다.

일본 정부는 이번 오염수 방류를 철회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안이한 대처에 힘입어 경제적 대가를 적게 치르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이러한 의지에 대안적 제안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방류 ‘오염수’를 ‘처리수’로 바꾸어 부르면서, 심지어는 마실 수도 있다고 주창(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하는 그들의 의견을 ‘받들어’ 하고 싶은 제안이 있다. 1,400만 명이 사는 도쿄 중심부에 호수를 만들어 이처럼 잘 처리되어 마실 수 있는 물을 가두고 멋진 공원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자유롭게 산책하거나 수영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경제적이며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말이다. 이 제안은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핵을 기반으로 에너지를 얻고자 하는 모든 나라에 전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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