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23.4 | 연재 [이정현의 환경리포트]
삶과 죽음을 가르는 위험천만 도로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선임활동가(2023-04-10 15:35:35)



삶과 죽음을 가르는 '위험천만' 도로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선임활동가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3월 6일 경칩(驚蟄), 전주시 인후동 아중저수지에서 왜망실로 가는 수변 도로에서 산란지로 이동하던 두꺼비들이 자동차에 치여(로드킬-Road Kill) 죽었다. 사흘에 걸쳐 조사한 결과 기린봉과 저수지 사이 도로 300m 구간에서 250여 마리의 두꺼비가 압사당했다. 두꺼비는 물론 이 길을 지나는 운전자도 원치 않는 끔찍하고 처참한 죽음이다. 


산란장에 도착하기 전에 운 좋게 암컷을 선점한 수컷이 포접(등에 올라탄) 상태로 이동하다 죽은 쌍도 여럿이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뼈가 튀어나오고 핏빛이 선연한 개체도 많았다. 5m가 채 되지 않는 좁은 도로는 두꺼비의 삶과 죽음을 갈라놓았다. 운이 좋은 몇몇 마리는 회원의 도움으로 도로를 건넜다. 





수천만 년 이어진 귀소 본능에 따라 위험천만한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습지로 향하는 느린 걸음은 경이롭고 숙연했다. 3월 초 기온이 오르고 비가 내리자 두꺼비들은 모두 저수지와 맞닿은 기린봉 숲에서 짝짓기와 산란을 위해 도로 하나를 건너 저수지 상단 습지로 이동하던 두꺼비들이다.


어렵게 도로를 건너 습지에 안착한 두꺼비들은 짝을 찾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일주일가량 습지에서 머무르다 산란이 끝나면 하나둘씩 다시 도로를 건너서 산으로 돌아간다. 사흘 후 두꺼비들은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아중저수지 로드킬 구간 직전에 있는 무릉지는 두꺼비의 천국이었다. 아중저수지로 가는 도로를 건너도 되지 않기 때문에 헛된 죽음은 없었다. 작은 습지에는 어림잡아 100여 마리의 두꺼비들이 모여들어 치열한 짝짓기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암컷의 등에 오르기 위해 수컷 7∼8마리가 뒷다리로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암컷의 수가 수컷과 비교해 너무 적다. 일반적으로 두꺼비의 암수 비율이 1대 5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아중저수지 주변에서는 1대 10이 넘어 보인다. 수컷 여러 마리의 무게와 압박으로 배가 터진 채 죽어있는 암컷도 보인다. 암컷 두꺼비의 수난 시대다. 짝을 구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수컷도 불쌍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들은 암수의 균형이 크게 기울어진 것을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본다. 파충류의 경우 산란장 온도가 성별을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산란장 온도의 안정성이 무너지면 암컷이 태어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두 달 후, 이번에는 새끼 두꺼비의 위험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4월 말에서 5월 초순이면 올챙이의 다리가 나오고 꼬리가 사라지면서 새끼 두꺼비(1.5cm∼2cm)로 변한다. 이즈음, 비가 내리거나 습도가 높은 날에 무리를 지어 인근 산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엄지손톱만 한 새끼는 체구가 작고, 피부가 약하며, 느리게 움직인다. 무릉지 새끼 두꺼비는 천적의 자연적인 위험만 피하면 된다. 하지만 아중저수지 생태습지에서 태어난 새끼는 어미보다 더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


습지와 숲을 오가며 사는 양서류 두꺼비는 환경오염과 서식지 훼손에 매우 취약하다. 우리나라는 1998년 두꺼비를 멸종위기종에서 해제했으나,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개체군과 개체 수가 지속해서 감소하는 두꺼비를 멸종위기종 적색목록(Red List)에 관심 대상(LC)에 올려놨다. 


당장 안내표지판 하나 없는 도로에 현수막부터 걸었다. 일단 멈추고 확인하고 두꺼비가 보이면 지나간 후 차를 움직여달라고 부탁했다. 시 환경과, 구청 도로 담당과 공무원과 현장에서 세 번 만났다. 실효성이 크지는 않겠지만 몇 마리라도 살려보자고 생태이동 통로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린봉 숲 사면 빗물 통로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없고, 도로 경계턱도 없다는 점이다. 도로를 관통하는 기존 우수 관로를 개선하고 확장하는 방식으로 시설개선을 하면 작은 효과는 거둘 수 있다. 





로드킬 다발 구간임을 알리는 야광 반사 표지판과 과속 방지턱 등을 설치하고, 새끼 두꺼비가 이동할 때는 자원봉사자들이 차량을 관리하기로 했다. 생태습지와 무릉지 두 곳에서 두꺼비의 산란과 로드킬 현장을 함께 본 아이들도 새끼 두꺼비 순찰대에 함께하기로 했다. 로드킬 통계와 저감 대책을 세우고 있는 국립생태원에도 알려서 기본 조사를 마치고 갔다. 4월이 되면 올챙이가 얼마나 자랐는지 조사하면서 두꺼비 공부도 해볼 생각이다. 1월 초순, 일러도 너무 이른 산란을 한 도롱뇽의 안부도 궁금해 학산에 다녀왔다. 새끼 도롱뇽에 부화 직전의 알집까지 모두 무탈했다. 


아중저수지 둘레길과 수상 데크와 편의시설, 그리고 수변 도로 덕에 사람들은 편리해졌다. 여기에 케이블카까지 놓는다는데 안전한 두꺼비 이동통로 몇 개는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좀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두꺼비의 핵심 서식지인 기린봉 일대와 수달이 자리 잡은 아중저수지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수천만 년 이곳에서 살아온 터줏대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