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회 마당기행 도시 재생, 도시의 미래가 되다① 인천
하늘과 바다의 길목 인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다
글 신동하 기자 / 사진 김경기
마당의 도시기행이 다시 시작됐다. 여러해째 물음을 던져온 ‘도시 재생’이 주제다. 오래된 도시의 구도심이 늘어나면서 도시 재생은 오래전부터 과제가 됐다. 전국적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재생 사업이 성공해 지속적인 발전 동력을 얻은 도시는 많지 않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코로나 시기 중단되었던 마당의 도시기행이 4월 8일 인천에서 길을 열었다.
인천은 한국의 대표적인 항구 도시로 예로부터 산업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공장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신도시로 이동하며 도심은 낙후되기 시작했다. 이번 기행은 '개항로 프로젝트', '포디움126', '코스모40', '주식회사 빌드' 등 네 곳을 답사하고 황폐해진 도시를 재생시키기 위한 인천의 여정을 마주했다.
개항로의 오래된 이야기가 모인 곳 <개항로 프로젝트>
조선 말기 제물포가 개항한 이래 개항로 일대는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인천의 번화가를 담당했다. 하지만 신도심이 개발되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과거의 추억만이 남아있던 개항로를 다시 활성화하고자 2018년 시작된 것이 '개항로 프로젝트'이다. 쓰임이 다한 공간을 대체 불가능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개항로 가게들은 저마다의 서사가 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찾은 '파랑새 방앗간'은 방앗간과 식당을 겸하는 곳이다. 1층에서는 어머니가 기름을 짜고, 딸은 그 기름으로 2층에서 비빔밥을 만든다. 방앗간의 이름은 손주가 그려준 파랑새 그림에서 가져왔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듣자 비빔밥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서사의 힘이다.
개항로에는 가치 있는 근대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라이트 하우스'는 이러한 근대적 특징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카페이다. 조명회사 '일광전구'에서 운영하는 이곳은 오래전 문을 닫은 산부인과 병원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다. 병원에 남아있던 의료기기들과 명패, 일광전구의 장점을 살린 조명 인테리어는 마치 하나의 전시를 관람하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기존의 노포들과 상생하고자 했던 점도 눈에 띄었다. 라이트 하우스를 비롯한 다양한 가게에서 팔고 있는 '개항로 맥주'는 인천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이다. 맥주병의 '개항로' 글씨는 개항로에서 60년 된 목간판집 사장님이 썼다. 또한 면 종류의 음식을 팔고 있는 '개항면'의 면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쫄면을 만든 역사가 있는 '광신제면'의 것을 쓰고 있다.
이외에도 개항로 1호 가게인 카페 '브라운핸즈', 방치되어있던 창고를 개조해 만든 '잇다 스페이스1 갤러리', 작은 잡화 백화점인 '개항백화' 등 20여 개의 가게들이 개항로 프로젝트와 함께하고 있다. 참여 중인 가게들을 모은 '개항로 지도' 또한 SNS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동인천 길잡이 편집샵 <포디움 126>
'포디움126'은 인천의 로컬 콘텐츠를 바탕으로한 다양한 굿즈를 통해 동인천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안내인 역할을 하는 편집샵이다. 포디움126이라는 이름 또한 건축물의 기단부를 뜻하는 단어 포디움(Podium)과 인천의 경도를 가리키는 숫자 '126˚42’18”E‘ 에서 126을 따왔다.
건물 1층에서는 인천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엽서, 마스킹테이프, 포스터부터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는 지도까지 다양한 굿즈를 직접 큐레이션하여 판매하고 있다. 함께 운영 중인 카페에서는 인천 지역 유명 과자점인 '인천당'과 협업한 특별한 메뉴들도 선보인다. 음료를 주문하고 나면 벽면의 '여행자가 여행자에게'라는 작은 펜팔 코너가 보인다. 티켓 모양의 엽서에 인천을 여행하며 느낀 점들을 적어 꽂아두면, 그 다음의 여행자가 읽고 자신의 기록을 남긴다.
2층으로 올라가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나온다. 테이블에서 함께 작업 중인 지역 작가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작가는 경제적인 이유로 개인 작업실을 갖지 못한다. 그런 작가들에게 이러한 코워킹스페이스는 좋은 작업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은 포디움126을 통해 자신의 작업물을 판매할 수 있는 거래처를 확보하고, 같은 지역 작가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작업할 수 있는 공간도 갖게 됐다.
무디지 않게, 날이 서도록 <코스모40>
인천 서구 가좌동은 코스모 화학의 대규모 공장 단지가 있던 곳이다. 2016년 회사가 공장을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남겨진 건물 중 하나인 40동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것이 복합문화공간 '코스모40'이다. 1층과 2층에서는 전시, 공연, 인문학 강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이루어지고, 3층과 4층의 카페에서는 수준급의 베이커리와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사실 코스모40은 기행을 준비할 때 기대가 없던 공간이었다. 전주에도 이미 공장형 대형 카페들이 많이 있고,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컨셉도 어딘가 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물에 들어서고 코스모40 측의 설명을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먼저 보이는 것은 흔한 공장형 카페들과는 다른 독특한 건물 구조다. 고리 모양으로 된 신관이 본관에 삽입된 특이한 구조는 '인천시 건축상 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또한 화학 공장의 구조물과 기계들을 제거하지 않고 최대한 남겨두어 공장이 주는 특이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건물의 이미지와 걸맞게 진행되는 전시와 공연들도 도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한국의 신예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진행하고, 실험적인 장르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의 공연이 이루어진다. 이날 안내를 맡은 코스모40의 이슬기 팀장은 코스모40의 지향을 "장르의 구분을 따로 하지 않지만 어디서도 품을 수 없는, 날카롭고 날이 서 있는 작업을 담아낸다"고 소개했다.
지역 주민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25일에 연 바자회나 4월 중순에 연 식물을 판매하는 팝업스토어 같은 것들이다. 건물 2층에는 탁구대를 놓아 주변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나 이곳을 찾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지역 주민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개방된 공간이라는 느낌이 코스모40에 대한 호감을 높인다.
예스키즈존, 공존의 도시 만들기 <주식회사 빌드>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 그 시절 어른들은 우리의 미성숙함을 이해해주고, 사회의 규칙들에 익숙해지기까지 천천히 기다려주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다르다. 그러다보니 상업 공간에도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있다. 소란을 피우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좀더 자유로운 공간은 없을까. 주식회사 빌드의 우영승 대표는 도시의 이런 문제에 주목했다. 경기도 시흥의 월곶에 있는 빌드의 '예스키즈존'는 그 결실이다.
월곶은 바다를 매립해 만든 신도시로, 본래 관광지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퇴적된 축적물로 인해 포구의 기능을 상실하자 관광지 개발은 무산되고 인근 상권의 공실은 점점 늘어났다. 빈 부지에는 모텔과 유흥업소들이 들어섰고 종국에는 아파트 단지 사이에 모텔이 있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되었다. 월곶의 사람들은 아이들과의 외출을 위해 먼 인천까지 향해야 했다.
이런 월곶에 스페인 레스토랑 '바오앤밥스'와 아이들을 위한 실내 놀이터 '바이아이'가 문을 열어두고 있다. 바오앤밥스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과 수유실, 기저귀 갈이대가 있다. 덕분에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도 마음 놓고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바이아이는 일반적인 키즈카페와는 다르게 디지털화된 장난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마을의 지형을 형상화한 구조물에서 뛰어놀고, 수수깡이나 신문지 같은 재료들로 직접 장난감을 만드는 활동을 한다.
빌드는 제철 식재료샵인 '월곶식탁', 꽃집과 서점, 카페가 함께 있는 '월곶동 책한송이'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최근에 문을 닫았다. 빌드의 공간들은 전부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바오앤밥스에서 식사하고, 월곶동 책한송이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월곶식탁에서 장을 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하지만 최근의 빌드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앞선 두 공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재정비 시간을 갖고 있다.
우 대표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얻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의미있는 사업을 실험해온 빌드에게는 또 하나의 도전이다. 그동안의 경험이 빌드에게 좀더 의미 있는 길을 열어주지 않을까. 오래된 개항도시 인천의 변화가 앞으로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