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로 사회적 가치를 나누다
사회적기업 '사각사각' 권순표 대표
글 고다인 기자
‘목공방’ 간판이 걸린 익산의 한 건물에 들어서면 나무 깎는 소리와 함께 수상한 ‘작당모의’ 소리가 들린다. 목공 전문 사회적 기업 ‘사각사각’의 이야기다. 명목상 주로 하는 일은 수제가구 제작이지만 매년 꾸준히 사회 공헌 활동을 실천하며 스스로 일 벌이기를 자처하는 곳. 그 중심에는 대표 권순표 씨가 있다. 지역사회 문제부터 취약계층, 역사, 문화, 교육, 환경까지 활동 영역도 그야말로 다양하다. 공방의 앙증맞은 이름 속에도 선한 바람이 숨어있다. 나무를 깎을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을 돌아보자는 의미이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세상에 따뜻한 가치를 전하는 권순표 대표를 만났다.
버려진 자투리에서 발견한 가치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서울에 있는 금융회사에 들어갔다. 직장 생활은 안정적이었지만, 조금 불안정할지라도 재밌는 일이 하고 싶었다. 늘 창업에 대한 꿈을 품고 있던 그는 오랜 시간 취미로 해오던 목공예에 주목하게 된다. 2016년, 그렇게 서른 중반의 나이에 ‘사각사각’의 문을 열며 전공분야도 아닌 목공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작은 목공방이 살아남기란 녹록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죽지 않은 이유는 돈 버는 일보다 사회에 도움 될 만한 좋은 일부터 하고 싶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목공 제품을 만들고 나면 항상 30% 정도는 버려진다. 그는 대부분 쓸 만한 ‘제품’ 만들기에 집중할 때 버려지는 ‘자투리’에 집중했다. 활용 방법을 고민하던 중 우연히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대해 알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은 매년 8월 14일,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2017년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자투리 나무를 정성껏 다듬어 단발머리에 노란 나비를 가슴에 품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었다. 무작정 거리로 나가 시민들에게 소녀상을 무료로 나누며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이 캠페인이 공헌 활동의 영역을 하나둘 넓혀가는 시작이 됐다.
“뉴스를 보다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 제정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어느 날 직원들에게 이 날에 대해 아는지 물었더니 아무도 모르더라고요. 그럼 우리가 사람들에게 알려보자는 생각에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죠. 4~5년 정도 매년 소녀상 캠페인을 이어오다 최근에는 MZ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요즘은 국경일마다 태극기 거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요즘’ 방식으로 태극기 게양을 실천해보자 생각했어요. 태극기 모양대로 구멍이 뚫린 작은 원목 태극기를 제작해서 보내드리면 일상의 색으로 자유롭게 그 안을 채워 인증샷을 찍는 거예요. SNS에서 나름 반응이 핫했어요.”
‘나무공방에서 무슨 이런 일을 할까?’ 싶은 행보에도 이 모든 일이 가능한 이유는 동료들 덕분이다. 목공업이 아닌 다른 업무가 추가되는 반갑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라면 서로 두발 벗고 나선다. 주체적으로 좋은 일에 뛰어들었을 때의 보람과 선행은 곧 자신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이러한 힘의 원동력이다. 환경단체에서 근무를 했던 어느 직원은 이곳에 입사하자마자 한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익산에는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전문 매장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나서서 해보자는 말에 역시나 다함께 뛰어들었다. 그렇게 익산의 1호 제로웨이스트샵이 탄생했다. 공방 1층에 ‘게스트 지구인’이라는 이름으로 2년 전 문을 열었다. 지구의 주인은 지구, 사람들은 지구에 온 손님이란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자투리 나무를 활용하며 작게 실천해오던 리사이클 운동이 누군가의 제안으로 확장되고, 서로의 열정으로 실현될 수 있었다.
“어제도 공방 7주년을 맞아서 사내 단합대회를 하고 왔어요. 직원들이 비슷한 또래이다 보니 즐거운 일도 많이 만들고,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아이디어도 많이 얻어요. 이곳이 가구만 만드는 회사였다면 아마 벌써 다 그만뒀을 거예요. 제로웨이스트샵은 늘 적자지만 주 사업을 따로 두고 부가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유지가 가능합니다. 열심히 유지해나가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오늘의 할 일은 ‘청년마을’ 만들기
이곳에 따끈따끈한 소식이 또 들려온다. 이번엔 마을 만들기에 나선다고 한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2023년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그는 내부적으로만 다뤄왔던 여러 문제들을 지역 시민, 청년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 꿈과 맞닿아 공동체적 의미를 지닌 청년마을을 조성해나갈 계획이다. 먼저 제로웨이스트에 이어 그가 꾸준히 고민하고 있는 환경문제에서 출발했다.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서식지 파괴 등의 이유로 사라지고 있는 야생벌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대부분의 농작물은 벌이 꽃가루를 수분해 열매와 씨를 맺는다. 야생벌은 사람이 관리하는 꿀벌보다 몇 배 높은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 수가 급격히 줄면서 식량 위기와 직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청년들과 모여 함께 논의하고 알리며 청년마을의 뼈대를 만들었다.
다음 단계는 환경을 생각한 음식을 청년들이 직접 요리해 마을 식당을 여는 것이다. 그 옆에는 작은 카페를 짓고, 수유 시설도 만든다. 차근차근 청년들이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 그가 꿈꾸는 청년마을인 것이다. 그들과 사회문제를 공유하는 동시에 주거나 취업 등 청년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개선하는 역할까지 함께한다.
“이전에는 모든 일들을 자비로 해오다가 올해 처음 공모사업을 진행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목공업과 관련된 사업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해 좋은 결과를 얻어서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지원 예산을 통해 더 나은 환경에서 청년들과 의미 있는 활동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무와 사람이 함께 성장하도록
주변에서는 돈 되는 일도 해야 한다면 종종 쓴소리를 한다. 당연히 돈 버는 일에도 관심은 많다. 그 외에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게 문제일 뿐이다.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책상 기부와 청소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목공 교육 등 무엇이든 이웃과 나누는 일이 곧 그의 일상이다. 나무와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처럼 그는 여전히 성장하기를 꿈꾼다.
“아직은 막연한 계획이긴 하지만 요즘 캄보디아에 가끔 다녀오고 있어요. 한 3년 후에는 캄보디아를 비롯한 해외에서 한국 문화와 관련된 가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어요.”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그를 보니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그는 앞으로 또 어떤 일을 꾸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