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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6 | 연재 [이휘현의 숨은 책 좋은 책]
그리하여 그들은 떨치고 일어났다
코바야시 타끼지, 게 가공선
이휘현 KBS전주 PD(2023-06-28 16:13:21)


코바야시 타끼지, '게 가공선'


“그리하여 그들은 떨치고 일어났다”


글 이휘현 KBS전주 PD





1933년 2월 어느 일본 일간지에 게재된 기사문.

“노상을 배회하던 코바야시는 쯔끼지 지서의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도주 생활로 인해 쇠약이 심하여 취조를 견디지 못하고 병원으로 옮겨져 ‘심장마비’로 사망.”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최전선 기수로 활동하던 한 젊은 작가의 석연찮은 죽음. 당국의 철저한 은폐로 실체는 규명되지 못하고,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주검 앞에서 망자의 어머니는 통곡한다. 


“얘야, 다시 한 번 일어나야지. 다들 보는 앞에서 한 번 더 일어나라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대신 서른 해의 짧은 생을 통해 그가 남긴 글이 남았다. 시대는 암흑천지. 도저히 희망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의 시대를 그의 글이 환하게 비춰줄 수 있을까?

그로부터 75년 후 일본 출판계가 술렁인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잊혀 문학사의 몇 줄로 남은 요절 작가의 책 한 권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것이다.


“너 그 소설 읽어봤어?” 

“요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이 책 내용과 비슷하지 않아?” 

“이번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이 마치 그 소설처럼 끔찍하군.”


2008년 한 해에만 일본에서 50만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의외의 열풍. 21세기의 일본 사회는 왜 난데없이 지난 세기의 요절작가 소설을 소환한 것일까. 혹여, “다시 한 번 일어서!”라던 작가 어머니의 한 맺힌 절규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이 시대 일본 젊은이들에게 메아리친 것은 아닐까.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우리는 코바야시 타끼지의 <게 가공선>을 손에 쥐어야 할 것이다.


일본 북부 홋까이도 항구 하꼬다떼에 일군의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농부, 광부, 학생, 날품팔이 등등. 출신은 다양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딱 하나다. 지독하게 가난하다는 것. 오로지 살기 위한 목적으로 이들은 게 가공선에 올라 넉달 넘게 고된 노동에 시달려야 한다. 러시아와 맞댄 캄찻까 앞바다는 거친 파도와 차가운 공기로 게 가공선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언제 목숨을 거두어갈지 모르는 검푸른 바다.


하지만 무자비한 풍경은 그 넘실대는 바다가 아니라 게 가공선 안에서 펼쳐진다. 선박의 아랫칸 노동자들의 숙소는 좁고 지저분하다. 식량은 아사를 견딜만큼만 배급된다. 더욱 참기 힘든 건 ‘감독’이라는 완장을 두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명 십장 아사까와의 횡포다. 게 가공선 안에서 그는 법이고 권력이며 신이다. 오로지 넉달 동안 기업주에게 통조림 최대 생산량을 갖다 바치겠다는 일념 하나로 감독은 일꾼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권총으로 위협한다. 그 공포보다 더 괴로운 건 무기력함이다. “여기서 죽는 건 그냥 죽는 게 아니야. ‘살해당하는 것’이지!” 


저 아래 똥통이라 불리는 숙소에서 수많은 일꾼들이 누렇게 뜬 얼굴로 시름시름 앓아갈 때, 감독과 선장을 비롯한 극소수의 사람들은 윗칸에서 과식으로 음식을 토해내는 기가 막힌 현실. 아랫칸에서는 분노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여기는 바다 위야. 그들은 열 명에 불과해. 하지만 우리는 사백 명이 넘어. 

아랫칸이 힘을 합하면 윗칸을 무릎 꿇게 할 수 있어. 우리가 믿을 건 그저 ‘우리’ 뿐이야.”


일꾼들은 파업을 결의하고 윗칸 선실로 향한다. 캄찻까 바다 위 낡은 게 가공선에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러시아혁명의 열기가 일본 내 사회주의 운동에 불을 붙인 건 1920년대의 일이다. 그후 일본에서 프롤레타리아 문학 사조가 크게 대두되었다. 이 시기 걸출한 계급문학의 기수들이 등장하는데, 코바야시 타끼지(1903~1933)도 그중 한 명이었다. 러시아의 막심 고리끼를 동경했던 그는 문학이 민중의 계급성을 자각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1928년부터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 이후 경찰서에 잡혀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까지 5년간 <1928년 3월 15일>, <부재지주>, <공장생활>, <당 생활자> 등 다양한 소설을 발표했다.


그 중 1929년에 쓴 <게 가공선>이 그의 대표작으로 남게 되었는데, 짧지만 묵직한 서사와 선명한 주제의식이 ‘코바야시 문학’의 절정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게 가공선>은 암울한 현실에 놓인 민중들이 어떤 고난을 통해 계급적으로 각성하고, 그 자각을 행동으로 어떻게 옮기는지 매우 밀도 있게, 그러면서도 시각적 이미지의 탁월함을 통해 구현해 낸 작품이다.

게 가공선 노동자들의 파업(봉기)는 제국 함대의 개입으로 좌절되면서 끝을 맺는다. 이를 통해 일본 기업(재벌)과 제국(국가)가 한 몸이라는 걸 작가는 폭로한다. 작품 내내 악역을 도맡아하던 ‘아사까와 감독’은 사실 소소한 빌런이었던 셈이다. 진짜 악당은 거대 자본과 정부였다는 걸 게 가공선 노동자들이 깨달으며 마지막장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만으로는 문학으로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코바야시의 야심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일까? 마지막 장 다음 페이지에 아주 짧은 <부기>란을 통해 일련의 희망적 메시지가 전달되는데, 그건 좀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찻까 바다 위 게 가공선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당대 계급 문제를 탁월한 스토리텔링으로 성취해낸 것은 코바야시 타끼지의 업적으로 기록될 만하다. 그 위업이 어쩌면 그의 사후 75년에 새로운 세기 젊은이들의 각성으로 연결된 것은 아닐까. 1970-80년대 최대 호황의 광휘에 홀려 흥청망청하던 일본 버블경제의 붕괴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저성장기의 ‘하류화’에 직격탄을 맞은 21세기 일본 청년들에게 <게 가공선>은 계급 각성의 신선한 촉매제가 되어주었던 듯하다.


“우리는 죽는 게 아니라 살해당하고 있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우리’ 뿐이야.”


2008년 코바야시 타끼지의 극적 귀환은, 그로부터 15년 후 일본의 전철을 잰걸음으로 따라가는 이 시대 한반도의 젊은이들에게 어떤 경종을 울려줄까. <게 가공선>은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떨치고 일어났다 ―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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