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전북의 현주소 ① 웹툰
시대를 이끄는 K-콘텐츠,
지역에서는 안녕하신가요
글 고다인 기자·류나윤 인턴
콘텐츠의 시대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지는 ‘콘텐츠 홍수’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당당하게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은 ‘K-콘텐츠’다. 최근만 해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오징어게임>이나 케이팝을 대표하는 그룹 BTS가 ‘K-콘텐츠’의 열풍을 이끌었다. ‘K-콘텐츠’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춤, 영화, 웹툰, 게임, 애니메이션, 메타버스까지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한민국의 콘텐츠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성공한 콘텐츠들의 인기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두드러진다. 그렇다. K-콘텐츠는 대부분 ‘글로벌’로 먹고 사는 편이다. 하지만 그 중심을 ‘지역’으로 옮기면 현실은 어떨까? MZ세대가 열광하는 콘텐츠들을 지역에 대입했을 때도 그 영향력은 과연 같을까?
지역 명소를 소재로 한 웹드라마 등을 예로 들어보자.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각 도시에는 저마다 풍부한 문화자원이 존재한다. 이는 그 지역의 콘텐츠 경쟁력으로 이어지지만 지역 콘텐츠는 여전히 성공하기 어렵고 제작 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
문화저널은 우리 지역이 주목하고 있는 K-콘텐츠는 무엇인지, 그 활용 방향과 다양한 콘텐츠 산업의 이면을 조명해보았다. 지역의 좋은 문화콘텐츠와 기획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이다. 첫 번째 주제는 대표적인 한류 콘텐츠로 자리 잡고 있는 웹툰이다.
“잘 만든 웹툰 하나
열 콘텐츠 안 부럽다”
<이태원 클라쓰>, <스위트홈>, <유미의 세포들>까지. 웹툰 원작 드라마들의 인기는 뜨거워진지 오래다. 올해 공개를 앞두고 있는 드라마 라인업을 봐도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웹툰’에서 출발한다. 웹툰이 콘텐츠로서 갖는 경쟁력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 Use)'. 하나의 소재를 다른 장르에 적용해 파급효과를 노리는 전략으로,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콘텐츠 소비방식 중 하나다. 웹툰은 그 역할을 가장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콘텐츠다. 다른 매체로의 확장성을 무기로 2020년 웹툰 시장의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선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해외에서도 웹툰은 ‘하드캐리’(팀워크가 중요한 게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carry) 플레이어를 뜻함)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인기 작품들이 번역되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최근 5년 사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본 다음으로 큰 만화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현지 웹툰 시장 상위권에 모두 국내 플랫폼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같은 분위기는 유럽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방구석 작가들을 불러 모은
웹툰캠퍼스
국내외 웹툰 시장이 커진 만큼 ‘네이버웹툰’, ‘카카오웹툰’ 등의 대표 플랫폼들은 콘텐츠 제작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작가들은 매주 마감과 싸우며 경쟁한다.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키워드가 바로 이들이다. 웹툰 작가들의 업무 강도는 흔히 별 다섯 개로 매겨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컴퓨터 앞에서 컷을 그리고 있을 이들이 웹툰 작가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지역에서도 작가 발굴과 지원 등 웹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관련 사업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역별로 시행하고 있는 웹툰캠퍼스가 대표적이다. 전북도 2021년부터 ‘전북웹툰캠퍼스’를 운영 중이다. 개인 작업공간과 장비 대여, 어시스턴트 지원, 교육 등을 진행한다.
집에서 조용히 작업에만 몰두하던 작가들에게 이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8명의 작가로 시작해 현재까지 23명이 이곳의 입주작가가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숫자 아닌가? 실제 다른 지역에 비해 전북에 거주하는 연재 작가 비율은 높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는 물론 작가들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연결고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웹툰 좀 본다’ 하면 알만한 이름의 작가들도 알고 보면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철저한 분업화로 돌아가는 웹툰 공장
웹툰 작가 권혜련(필명 ‘퀀퀀’)은 국내외로 많은 사랑을 받은 대표작 <감비서가 고장났다>를 네이버웹툰에서 연재했다. 10여 년 전 공모전에 당선되며 웹툰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해 웹툰 외에도 웹소설 삽화와 표지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을 ‘그림작가’라 칭했다. 더 이상 온전한 1인 창작이 어려운 웹툰 시장에서 그는 많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그림’에 집중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권혜련ㅣ퀀퀀
요즘은 웹툰 퀄리티가 전체적으로 높아졌고 정해진 시간 안에 연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 작업하는 건 ‘불가능’이에요. 저는 스토리 각색과 콘티를 담당하는 작가님이 따로 계시고, 그걸 토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배경과 밑색, 명암 등의 작업을 어시스턴트(보조 작가)분들이 해주시면 최종 보정은 제가 마무리해요. 웹툰 한 편 한 편이 생각보다 여러 명의 손을 거쳐 완성되죠.
말하자면 웹툰 제작은 철저한 ‘분업화’가 보장되어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여기서 수익구조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워라벨’은 고사하고 24시간 작품에 매달리는 작가들은 모두 그만큼의 수익을 보장받고 있을까? 권 작가는 웹툰 작가도 자영업자와 같다고 말한다. 대박 난 식당은 그만큼 매출이 오르고 돌아오는 게 많은 반면 폐업 직전의 식당은 남는 게 없는 것처럼. 이러한 이면에는 에이전시와 플랫폼의 복잡한 수익구조도 한몫한다.
현재 네이버웹툰에 <시월드가 내게 집착한다>를 연재하고 있는 작가 문아람(필명 ‘승우’)은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고 연재 작가로 데뷔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작품 별로 계약하면 에이전시가 50% 이상을 가져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10~20% 정도다.
문아람ㅣ승우
대학에서 만화학과를 전공했는데, 학과 교수님께서 에이전시를 만드셨어요. 운 좋게 그 에이전시에 들어가며 데뷔를 했죠. 한 작품을 끝내고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둬야지!’했는데, 친구랑 공모전에 나가게 되고, 또 ‘그만둬야지!’ 결심했을 때 네이버웹툰의 직계 작가로 들어가게 됐어요. 늘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에이전시를 거치지 않으니 수익은 조금 나아졌지만, 일주일 꼬박 일하는 양에 비하면 여전히 열악한 상황이죠.
전북웹툰캠퍼스는 어시스턴트 인프라와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급할 땐 동생에게 무작정 ‘이것 좀 채색해줘’하고 부탁했다는 문 작가에겐 이런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이제 막 시작한 예비 작가는 어떨까? 김동희 작가(필명 ‘소마’)는 20대 때 게임회사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에 회사를 나오고 지금은 작은 카페를 차렸다. 본업은 바리스타지만 동시에 작가다. 카페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 인스타툰 <소마의 소소한 일상일기>를 SNS에 연재하고 있다. 웹툰캠퍼스의 초창기 멤버인 그는 다시 그림을 시작하는데 있어 이곳을 발판으로 삼고 있다.
김동희ㅣ소마
낮에는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작업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요. 저녁에라도 웹툰캠퍼스 작업실에 오는데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죠. 또, 웹툰 관련 공모전이나 지원사업, 교육 같은 소식을 미리 안내받는 것도 도움이 많이 돼요. 지역에 작가가 많다고 해도 만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다른 작가님들과 소통하고 친해지면서 작품에도 좋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권혜련ㅣ퀀퀀
맞아요. 저도 이곳에 입주하면서 ‘전주에 작가님이 이렇게 많았구나!’ 처음 알게 됐어요. 제가 있는 8호실은 네 명이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같이 밥도 먹고, 고민이 생기면 언제든 나눌 수 있다는 게 큰 장점 같습니다. 평소 혼자서 작업을 하다보면 나만 홀로 고통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여기 오면 같은 직업군이라 그런지 다른 분들 작업하시는 모습만 봐도 이상하게 힐링이 돼요.
권혜련(퀀퀀) 작가의 웹툰 <감비서가 고장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짠단짠한 웹툰의 매력
작가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부지런히 그린다. 웹툰 산업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지만, 시장 내부의 경쟁도 과열되며 부담은 날로 부풀고 있다. 조회 수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연재 주기를 늦출 수 없고, 드라마나 영화처럼 사전제작을 할 수도 없다.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며 작품 연재에 대비하려는 플랫폼들의 요구 때문이다. 작가에게 공공의 적인 ‘마감’의 압박은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 문제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현실에도 여전히 수백 편의 웹툰이 매주 약속한 시간에 올라온다. 이들이 웹툰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감과 싸우는 한 주 한 주가 힘겹더라도 작품을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를 위해. 또, 독자들의 댓글 하나에 나아갈 힘을 얻기 때문이다.
문아람ㅣ승우
저는 콘텐츠가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행동에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윤리적인 범위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형태로 인물을 표현하려고 해요. 작품 안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독자분들이 인물의 행동을 이해하고 여러 의견을 낼 수 있는 게 좋은 작품 같아요. 제 가치관이 들어가지 않을 순 없겠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표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동희ㅣ소마
인스타툰은 SNS에서 누구나 쉽고 가볍게 접하기 때문에 공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 소재를 찾다 보니 ‘내 이야기 같다’고만 해주셔도 보람을 느낍니다. 제 그림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공감하셨으면 좋겠어요.
권혜련ㅣ퀀퀀
웹툰 작가로서 뿌듯한 점은 저희 엄마가 좋아하세요.(웃음) 친구들한테 내 딸 웹툰 작가라고 하면 다들 ‘우와~’한다는 거예요. 웹툰에 대한 인식이 어른들에게도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의미라 반갑죠. 예전에는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했는데, 지금은 출퇴근길이나 쉬는 동안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다른 말보다도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들의 눈은 유독 빛났다. 전북웹툰캠퍼스는 작가를 꿈꾸는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는 등 웹툰 작가 발굴에도 힘쓸 예정이다. 전북이 주최하는 웹툰 공모전도 계획 과정에 있다. 담당자 최민선 씨는 입주 작가의 참여도나 관련 사업들이 전주 위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앞으로는 타 시군에 있는 작가 발굴에 힘쓰고 찾아가는 교육 등도 진행한다고도 전했다. 반가운 변화를 토대로 지역 내 웹툰 산업 활성화와 창작자가 자생력을 갖추고 좋은 콘텐츠를 전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시도가 계속되길 기대한다.
자치단체부터 대학까지,
웹툰을 향한 움직임
전주대와 도교육청, 웹툰 교육 시작
웹툰 작가 양성을 위한 대학의 움직임도 있다. 전주대학교는 웹툰만화콘텐츠학과를 신설해 오는 2024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한다. 도내 유일의 웹툰 관련 학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인문대학에 소속된 웹툰 학과라는 것이 특징이다. 어학, 문학, 역사 관련 지식 정보를 연계하여 인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웹툰 작가를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이다.
전주대는 6월 10일, <리얼 웹툰 잡!카데미> 행사를 열었다. 고용노동부와 함께 주최한 이 행사는 예비 웹툰 산업 종사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행사가 열린 전주대학교 스타센터에는 130명이 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전라북도교육청도 웹툰 교육에 뛰어든다. 도교육청은 올해 말까지 전주교육문화회관 2층 상상예술실에 웹툰전용교육실을 완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북글로컬특성화고' 사업으로 선정된 특성화고등학교에는 웹툰 등 콘텐츠 개발 교육에 재정과 행정적인 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 도내 웹툰 교육에 대한 실정은 아직 열악하다. 웹툰 산업이 발달하고 관련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이 늘어난 만큼, 교육계의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MZ세대를 겨냥한 홍보·마케팅, 브랜드웹툰
브랜드웹툰이란 기업, 단체, 공공기관 등의 후원을 받아 홍보용으로 제작된 웹툰을 말한다.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만들어진 브랜드웹툰만 200여개이다. 삼성전자, 요기요, DB손해보험, 한화이글스, 어도비 등 여러 분야의 기업과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통계청 등 공공기관까지 다양하다. 해외 기업인 마블 스튜디오와 DC코믹스도 영화 개봉에 맞춰 오리지널 코믹스를 네이버에 연재했다. 브랜드웹툰의 장점은 비교적 저렴한 제작비로 MZ세대에게 큰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들도 브랜드웹툰을 만들어 지역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그 중 경기도와 경기도관광공사의 브랜드 웹툰인 <경기딸>은 네이버 브랜드 웹툰 인기도 1위를 차지했다. 유명 웹툰 <좀비딸>의 스핀오프 형식으로 삼봉기념관, 행주산성, 수원화성 등 경기도의 역사 유적을 여행하는 내용이다. 이외에도 가스파드 작가의 충남혁신도시 브랜드 웹툰 <혁신적 얼간이들>, 주호민 작가의 경상북도 브랜드 웹툰 <제비원 이야기> 등이 인기를 끌었다.
전주시도 이런 흐름에 맞춰 브랜드웹툰을 제작했다. <전주이씨네게스트하우스>는 전주시 관광 웹툰이다. 작년 7월 중국 최대 웹툰 플랫폼인 콰이칸에 연재했다. 전주 한옥마을을 배경으로 한중 남녀의 삼각 로맨스를 그린 작품으로, 웹툰을 통해 중국 MZ세대 관광객들을 공략하겠다는 것이 전주시의 의도다.
전주시의 웹툰은 효과적인 해외 관광 마케팅이라는 긍정적 반응이 있는 한편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웹툰 제작을 관광 정보 웹툰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소재 대형 웹툰 스튜디오가 맡았기 때문이다. 지역 작가 발굴의 차원에서라도 '서울'의 스튜디오가 아닌 해당 지역을 잘 이해하고 역량 있는 지역 작가가 제작을 맡는 것이 바람직했다는 의견이 높다. 중국 플랫폼에 연재하는 만큼 해외 시장 관련 경험이 풍부한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마케팅이 아닌 제작이라는 특성상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전주시브랜드웹툰 <전주 이씨네 게스트하우스>
웹툰 산업 최근 이슈 톺아보기
AI웹툰의 등장, 독자들은 ‘보이콧’
지난 5월 22일 네이버웹툰 신작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 공개되자마자 수천개의 댓글이 달렸다. 논란의 발단은 AI 모델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렸다는 의혹이다. 제작을 맡은 '블루라인 스튜디오'는 그림 자체는 사람이 그렸고 후보정에 AI를 이용했다고 해명했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점 4점대에 이르며 혹평을 받고 있다. 심지어 네이버 도전만화에는 'AI웹툰 보이콧'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80개 넘게 게시되었다.
AI 모델을 이용한 웹툰 제작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반응은 매우 거세다. 웹툰 업계 내부에서는 AI를 이용한 웹툰 제작이 불가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플랫폼 입장에서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인공지능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만으로도 난리가 났는데, 실제로 쓰겠다고 발표하면 소비층의 반발이 매우 거셀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들이 AI모델 관련 많은 개발을 하고 있지만, 실제 콘텐츠에 적용하는 것은 한참 후라고 예측 중이다. 네이버 등 웹툰 플랫폼의 법무팀에서도 쓸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려 가이드라인을 검토 중이긴 하지만,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생성형 AI 모델의 저작권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일부 작가들이 인터넷에 자신의 그림을 올리며 'AI에 학습시키지 마세요.'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그림을 무단으로 AI에 학습시키는 경우가 생기면서부터다. 현행법상 그림체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기 힘들어 작가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AI가 만들어낸 창작물의 저작권은 누가 소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한국을 비롯하여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는 AI 관련 법안 제정 준비에 들어갔다. AI는 미래 산업으로서 작업의 효율을 높이고 작가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산업에 적용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와 관련 법 규정이 이루어진 뒤에 행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K-웹툰은 거기서 거기? 공통 키워드 '빙의'와 '회귀'
현재 웹툰 업계를 주름잡는 이른바 '양산형' 웹툰의 줄거리는 이렇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여자가 읽고 있던 판타지 소설 속 백작 영애로 빙의한다. 또는 악의 세력과 싸우던 주인공이 죽기 직전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절대자의 목소리를 듣고 10년 전으로 회귀한다. 이러한 로맨스판타지와 게임판타지 장르의 웹툰이 쏟아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잘 팔리기 때문이다.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비슷비슷하다", "어디서 봤던 느낌이다", "어차피 클리셰는 정해져있다", "요즘 웹툰 다 똑같다" 독자들이 양산형 웹툰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과거의 웹툰 시장은 <마음의 소리>, <미생>, <신과 함께> 등 특별한 소재와 그림체를 가진 웹툰이 주를 이루었다. 이에 반해 장르성 웹툰들은 유행하는 소재와 클리셰 속에서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화려한 느낌의 그림체도 비슷하다보니 각각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 웹툰 시장에는 양산형 판타지 웹툰만 남아있는가? 아니다. 드라마, 개그,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의 웹툰들이 분명 있다. '장르 쏠림' 문제는 웹툰 플랫폼들의 '큐레이션'에 있다. 현재 대부분의 웹툰 플랫폼 UI는 요일별 '인기순', 혹은 '조회순'으로 보여지게 만들어져있다. 유행하는 장르들이 상위권에 고정되어 있으니 소비자들은 당연히 항상 같은 웹툰만 있다고 느끼게 된다. 2019년도를 기점으로 웹툰 시장이 성장하며 작품 수 또한 대폭 늘었다. 웹툰의 홍수 속에서 유행하는 양산형 웹툰을 제치고 좋아하는 장르의 웹툰을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웹툰 플랫폼들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